조선 제22대 왕으로 1777년부터 1800년까지 재위했다. 휘는 성?, 자는 형운亨運, 호는 홍재弘齋. 본래의 묘호는 정종正宗이었는데, 1899년 대한제국 수립 후 황제로 추존되면서 정조正祖로 바뀌었다. 영조의 손자로 아버지는 사도세자로 더 알려진 장헌세자莊獻世子이며, 어머니는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의 딸 혜경궁惠慶宮 홍씨洪氏, 비는 좌참찬 김시묵金時默의 딸 효의왕후孝懿王后다.
영조 승하 후 즉위한 정조는 규장각을 설치해 문운을 융성시켰고, 당쟁을 혁파하기 위해 탕평책을 실시하여 당색에 구애받지 않고 인물 본위로 관리를 등용하려 했으며, 북학파를 중시하고 농업 생산력 발달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는 중인 이하 평민에게까지 큰 영향을 미쳐 정조 시대에는 양반은 물론 중인, 서얼, 평민층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문화를 크게 꽃피운 조선 후기의 문화적 황금시대를 이룩했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 개혁에 착수했으나 1800년 음력 6월 49세에 병이 악화되어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가 추진해온 개혁은 대부분 무산되고 말았다.
정조는 서적 편찬에도 힘을 기울여 ≪증보동국문헌비고≫, ≪국조보감≫, ≪대전통편≫, ≪문원보불文苑??≫, ≪동문휘고同文彙考≫, ≪규장전운奎章全韻≫, ≪오륜행실五輪行實≫ 등을 간행했고, 정조 자신의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도 완성했다.
문학박사. 1968년 중국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과 졸업 후 전문대학 교원, 방송국 편집 기자로 근무했다. 중국소수민족작가협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회원, 한국번역가협회 1급 번역가, 한국어문회?한국어문교육연구회 회원, 현재 연변 잡지 「예술세계」 편집위원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조선 후기 신운론 수용 연구」, 「추사 김정희의 예술관과 불교의 영향」, 「초정 박제가의 미론시학과 무미론」 등이, 번역서로는 ≪수당연의≫(전 5권), ≪혜경전≫ 등 다수가 있다.
어문각語文閣에서 15년간 기획과 편집 일을 했으며 ≪가나다 활용 옥편≫, ≪新 1800 한자교본漢字敎本≫, ≪정통 한자교본正統 漢字敎本≫, ≪한자 능력 검정시험≫, ≪초·중·고급편 급수별 한자≫, ≪고사성어 숙어 대백과≫ 등의 책을 쓰고 엮었다.
1933년 경남 합천에서 태생으로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한 뒤 성균관대 대학원 국문학과를 마쳤다. 성균관대 유학대 교수로 유학대학장, 유학대학원장, 유교회 중앙회장을 거쳐 현재 성균관장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논어 인간학≫, ≪이야기 소학≫, ≪한국유학사상 연구≫, ≪고사성어 백과사전≫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식민지≫, ≪반역≫(전 7권), ≪화우도≫(전 7권), ≪정한산하情恨山河≫(전 7권), ≪여로≫, ≪흙불≫, ≪서동태자≫, ≪초한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