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완전히 멍해져서 앉아 있었다. 그가 눈물을 떨구고 그의 어머니가 소리를 내 울기 시작하자마자 서둘러 탁자 위의 휴지를 한 움큼 찢어내기는 했지만 그 휴지를 그에게 건네야 할지 그의 어머니게에, 아니면 그의 어린 동생에게 건네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한겨울의 면회소에서 석탄 난로가 끝없이 타닥타닥 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소리는 그후로도 오랫동안 내 기억에서 사라지지를 않았다. 그라는 사람을 향해서 가지게 된 그 순간의 생소한 감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미래를 위해 투자할 것이라고는 공부밖에 없던, 나와 같은 과의 친구이거나, 혹은 한 집안의 가장이며 누군가의 유일한 아들이기 전에 그저 '아이'에 불과했다. 우람한 체격에 푸른 제복을 입고 있었음에도, 그는 남자도 청년도 아니었고, 그가 살아온 세월을 고스란히 퇴행해서 마침내 도달한 아주 작은 아이처럼만 보였다. 눈물을 닦아주고 코를 풀어주어야 할 것 같은, 그리고 걱정하지 말라, 고 등을 토닥거려주어야 할 것 같은…… 대체 그러한 감정은 무엇인가, 나는 그 감정에 당황했고, 불쾌감을 가졌으나, 또한 그 낯선 감정이 나를 매혹시키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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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왕나비가 바다를 건너가는 순간이 카메라에 포착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보십시오. 저 작은 나비가 쉬지도 않고 수백 킬로미터의 바다횡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리모컨의 음소거 버튼을 눌렀고, 그리고 생각했다. 나비가 바다를 건너다니…… 세상에는 저런 거짓말도 있구나. 그러자, 내가 같이 살고 있는, 그리고 내 아이의 아빠라는 남자가, 내게 기생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별것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세상에 존재하는 위대한 거짓말들 중에, 내가 꿈꾸었던 행복이라는 이름의 거짓쯤은 별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도 가능하지 않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누군가를, 그리고 바로 나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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