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대학교 로열 할러웨이 칼리지의 역사학과 부교수로 재직중이다(유럽 고대사 담당). 다수의 저서를 냈으며, 대표작으로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 주교, 신학자, 금욕주의자, 교부Athanasius of Alexandria: Bishop, Theologian, Ascetic, Father』(Oxford Univ. Press, 2012)가 있다.
역자 : 신미숙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고대사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스사와 로마사를 강의하고 있다. 주요 관심 분야는 로마 공화정기의 제국주의와 헬레니즘 세계 등이다. 논문으로 「기원전 2세기 전반 로마의 제국주의」(박사학위논문, 1995), 「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의 원인」 등이 있고, 저서로 『서양고대사 강의』(공저, 한울) 등이 있다.
강가에 버려진 쌍둥이 로물루스와 레무스에게 암늑대가 젖을 물렸고, 이를 발견한 왕의 목동이 그들을 데려다 키웠다. 성인이 되자, 쌍둥이 형제는 아물리우스를 몰아내고 자신들의 할아버지에게 지배권을 되찾아주었다. 그러고 나서 자신들이 버려졌던 테베레 강가로 돌아가, 팔라티누스 언덕에 새로운 정착지를 건설했다. 형제의 우애는 경쟁심 때문에 빠르게 곪아갔다.... --- p.15
엘리트들 사이에서 관직 경쟁은 치열했으며, 탁월한 개인들은 여러 차례 기존 규정에 도전했다. 그러나 공화정의 마지막 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최고 관직들을 압도하고 공화정 체제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가진 개인들이 등장했다. --- p.47
역사는 승자가 쓴다. 고대 카르타고는 거의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로마와 벌인 기나긴 투쟁에 관한 카르타고 쪽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 p.90
빈손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이러한 함대를 창설했다는 것은 공화정 역사상 가장 눈부신 업적 중의 하나이며, 조직화라는 점에 있어 로마의 천재성을 증거한다. 해상에서 카르타고인의 우월한 기술과 경험을 상쇄하기 위하여, 로마인은 전함에 ‘까마귀(corvus)’라는 장치를 부착했다. ‘까마귀’는 끝 쪽에 쇠갈고리가 달린 승강대였다. 이것으로 두 척의 배를 한데 묶어 고정된 승강단을 만들고 백병전을 치를 수 있었다. --- p.94
로마의 지배는 궁극적으로 동지중해 세계에 평화와 안정, 그리고 번영을 가져다주었다. 몇세기 후에 그리스어를 말하는 콘스탄티노플의 비잔틴 제국은 스스로 로마의 계승자임을 자랑스럽게 선포했다. 그리스인 쪽에서는 로마에, 항상 기꺼이 그러진 않았지만, 자신들의 문학과 예술을 전해주었고, 로마인의 생활에 세련미와 새로운 자극을 안겨주었다. --- p.129
약 한 세기가 지난 후, 네로 황제 시대의 시인 루카누스는 당시를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표현했다. “카이사르는 우월한 자를, 폼페이우스는 동등한 자를 용납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