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인가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느끼게 되는 시기가 있다. 그 시기는 아마도 주위를 보면 알게 된다. 직장이나 모임에서 주위에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 가면 그때가 된 것으로 본다. 그러면서 또 하나 아쉬운 것이 하나둘씩 생기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어떠한 이유에서든 내가 하지 못한 것에 대한 것들로 생각된다. 경제적인 이유로 못해본 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후회는 없다. 어쩌면 그 부분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으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나의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못해본 것에 대한 아쉬움은 상당히 크다.
나름대로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몇 년 동안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2000년 무렵에 내가 인터넷이란 것을 알게 되고 우연히 검색을 하다가 본 것이 산티아고 가는 길(Camino De Santiago)이다. 그냥 신기했다. 많은 사람들이 무작정 800㎞정도를 걸어서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순례길이라고 한다. 내가 종교를 갖고부터 더욱 더 희망하고 소망하는 것이 되었다. 지금은 한 달간의 시간을 낼 수 없지만 언젠가 한 달간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가장 먼저 하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마음에 준비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기가 어느 날 조용히 다가왔다. 직장에서 행정연수제도가 생긴 것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그 기회가 왔다, 그런데 막상 기회가 왔지만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랐다. 구체적인 계획은 아예 없었고 마음만 있었던 것이었다.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했다. 용기다. 처자식도 부모도 당분간 잊어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말을 했다. 떠나겠노라고 그랬더니 다녀오라고 한다. 차라리 가지 말라고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는 떠나야 한다. 그래서 떠났다. 그리고 부산을 왕복할 수 있는 거리를 걸었다. 걸으면 무언가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당시는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 몸무게가 거의 15㎏가 왔다 갔다 했고 후유증으로 약 2주간 몸살을 앓고 난 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인생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여러 장의 길에 관한 사진을 찍었지만 인생에도 여러 가지 길이 있고 필요 없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제일 늦게 출발한 것 같았는데 돌아보면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아주 빨리 출발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앞에 가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게 된다. 인생살이가 다 마찬가지다. 까미노를 걸으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쳤고 그 안에서 인연을 맺어 몇몇 친구들을 만났다. 때로는 곁에 있는 이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의지하기도 하지만, 다들 자신의 한계와 고독한 싸움을 벌이면서 묵묵히 자기 길을 계속해 나아간다. 까미노에서 나는 우리네 인간들의 삶을 한순간 스윽 통과하고 온 듯하다.
이 책은 그때, 그곳에서 겪은 소중한 경험들을 내가 다니는 연희동 성당의 소식지 한마음에 옮겨 게재하였던 글들을 정리하여 펴낸 것이다. 특별하지 않은 글 솜씨에 망설이기도 하였지만, 주위의 권유로 용기를 내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중에도 원고를 꼼꼼히 살펴준 아내 양현주의 도움이 컸다. 지난 세월을 묵묵히 같이 걸어왔고, 남은 세월도 계속 같이 걸어가야 할 아내의 건강이 쾌유되기를 두 손 모아 빌며 지면으로나마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