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족의 조그마한 소망을 이루는 과정을 정감어리게 묘사
--- 99/11/20 최훈(choih@cogsci@snu.ac.kr)
동화나라의 빛그림 이야기에서 몇 개 실패했던 작품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슬이의 첫 심부름>, <푸른개> 등 좋은 그림책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엄마의 의자>도 빛그림 이야기에서 알게 된 작품입니다. 벨라 윌리엄스는 캘리포니아 출신 작가로서 주로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가족, 이웃, 친구 이야기를 많이 그립니다. 그리고 히스패닉, 아시아인, 흑인 등 소수 민족을 즐겨 그립니다. 사회적 약자로 이루어진 공동체의 따뜻한 정신적 가치를 많이 강조하는 거죠. 그녀는 1982년에 나온 <엄마의 의자>로 칼뎃콧 아너 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엄마의 의자>는 나, 엄마, 할머니 세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그런 언급은 없지만 아마 아빠가 안 계신 것 같아요. '우리 엄마는 블루 타일 식당에서 일하십니다'로 그림책은 시작합니다. '나'는 학교가 파한 후 가끔 식당에 가서 일을 도와주고 주인 아줌마가 주는 돈을 커다란 유리병에 넣습니다. 이 유리병은 이 가족의 한 가지 목표를 달성하게 만드는 매개체입니다. 유리병에 동전이 가득 차면 푹신한 의자를 사려고 하는 거죠. 작년에 집이 불이 나서 세간살이가 온통 타버렸거든요. 이웃들의 도움으로 기본적인 세간살이는 장만했지만 엄마는 일이 끝난 후 편히 쉴 수 있는 의자를 갖고 싶어합니다. 그 목표를 위해 유리병에 돈을 모으는 거죠. '나'뿐만 아니라 엄마도 팁으로 받은 동전을 유리병에 넣고 할머니도 시장 보고 아낀 돈을 거기에 넣습니다. 드디어 돈이 다 모아진 후 가족들은 의자를 사러 갑니다. 몸을 완전히 푹 맡길 수 있는 푹신한 의자, 장미들이 그려져 있는 빨간 의자를 산 가족들은 행복에 잠깁니다.
한 가족의 조그마한 소망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 따뜻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은 마치 초등학생이 그린 그림같이 그려져 있는데 주인공인 '나'의 때묻지 않고 정감어린 시각을 보여줍니다. 색조는 마티스나 고갱을 연상시키는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의 원색이 주조를 이룹니다. 각 그림은 액자 테두리 같은 프레임으로 둘려 싸여 있는데 이 프레임은 각 장면에 어울리는 무늬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글씨가 쓰여져 있는 페이지에는 역시 그 장면에 맞는 소품 그림들이 조그만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 모든 게 이발소 그림이 되는 지름길인데 이 그림책은 전혀 촌스럽지 않습니다. 글이 많지는 않은 편인데 문장이 호흡이 긴 편이서 서경이보다 약간 큰 아이들이 제대로 소화해 낼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 가족의 조그마한 소망이며 이야기를 끌고 가는 대상이 되는 의자가 마루 생활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그 안락함이 아무래도 확 와닿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Cozycorner의 'cozy'라는 낱말이 딱 어울리는 의자인데 말입니다. 그런 문화적 격차를 제외한다면 상상력의 산물이 주종을 이루는 어린이 그림책 세계에서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수준 높은 그림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자를 사러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할머니는 이 의자 저 의자 앉아 보고는 <곰 세 마리>에 나오는 금발머리 소녀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작품인지 잘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