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하든지 궁극적으로 왕을 위해 하기 때문에 당신의 직업은 본래의 목적과 의미를 지닌다.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가 무엇을 하는가보다 더 중요하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일에서 성공을 거둘 때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하거나, 일이란 여가를 얻기 위한 필요악일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 식의 생각은 모두 거짓이다. 우리는 직장 상사 위에 계신 분, 바로 예수님을 위해 일한다. 이것이 일에 대한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우리가 주부든 은행원이든 정치인이든 건설 노동자든 바리스타든 혹은 회사 중역이든 예수님을 위해 일한다는 사실이 직업 그 자체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우리는 예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한다. 직업에 대해 경건한 관점을 유지하기보다 그릇된 생각으로 빠져들기가 훨씬 더 쉽다. 흔히 우리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불평하거나 게을리 한다. 반면 자신의 삶을 온통 일에 바치고 가족과 교회, 심지어 자신의 영적 건강마저 소홀히 하기도 한다. 직업에 대해 우리가 직면하는 죄악들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우리는 자신의 직업을 ‘우상’으로 섬길 수 있다. 일이 우리의 열정과 에너지와 사랑의 주요 대상이 될 수 있다. 반면 우리는 일에 대해 나태해질 수도 있다. 일 가운데서 하나님의 목적을 보지 못할 때 우리는 그것을 소홀히 하기 쉽다. 일에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거나 주를 섬기듯 해야 하는 책임을 무시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는 일을 삶의 중심에 두는 사람이나 혹은 자신의 삶에서 완전히 밀쳐내는 이들에게 찬사를 보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둘 다 함정이다. 나태함과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직업관에 대한 치명적인 오해다. ---「프롤로그」중에서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날 때 나누는 대화를 생각해 보라. 우리의 첫 질문 중 하나는 “직업이 뭐예요?”이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자신이 중요한 일을 하고 있으며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사회 분위기는 직업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도록 압박한다. 하지만 일을 우상화하는 것은 그저 나쁜 생각이 아니라 영적으로 치명적이다. 만일 우리가 기쁨과 만족, 그리고 어떤 의미를 얻기 위해 ‘자신의 직업과 성취’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 길의 끝에서 발견하는 건 공허함뿐일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만을 섬길 때 깊고 지속적인 만족을 발견할 수 있다. ---「1. 일이 열정과 숭배의 대상이 되진 않았는가?」중에서
우리의 일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무시하고서 단지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 견뎌내야 하는 직업 정도로만 여길 때 우리의 영적인 삶에 끔찍한 불균형이 초래된다. 가정과 교회에서 제자로서의 삶은 튼튼하나, 일터에서 제자로서의 삶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2. 생계 수단으로 전락해 마지못해 일하진 않는가?」중에서
직장에서 직면하는 많은 문제는 주로 자존감이나 확신과 관련된 것이다. 사람들은 직장에서 동료들보다 더 잘하려고 뼈 빠지게 일한다. 그렇게 해야만 가치 있는 사람으로 보일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지적에 지나치게 민감해지고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면 몹시 위축된다. 그럴 경우에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복음이 우리에게 새로운 ‘자존감’을 주는 건 아니다. 대신에 새로운 ‘확신’을 준다. 복음이 강조하는 것은 ‘나’의 위대함이 아니라 예수님의 위대하심이다. 또한 복음은 그의 위대하심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유익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가 자신의 허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음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존감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얻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