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저는 하일랜드의 황량한 들판과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동화 같은 풍경과 에든버러 성의 고독한 실루엣을 떠올립니다. 도버 해협을 건너고 칼레의 외로운 등대를 지나서 인상파 화가들이 사랑했던 노르망디 해변의 에메랄드빛 바다와 프로방스의 광활한 초원을 거친 뒤 오스트리아를 반환해 다시 도버 해협의 흰 절벽을 봤을 때는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은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저자 서문 - 글을 시작하며」중에서
베아트릭스가 유명해진 것은 『피터 래빗』이라는 동화 때문만은 아 닙니다. 그녀는 동화의 배경이 된 16제곱킬로미터(500만 평)에 이르는 땅과 농장과 집을 내셔널 트러스트에 기증하면서 딱 한마디 유언을 남깁니다. “자연 그대로 이 땅을 잘 보존해달라.”지금까지도 내셔널 트러스트는 포터가 남긴 유언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녀의 사후 3년 뒤인 1946년부터 공개된 힐탑의 저택은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됐습니다. 그 외에도 포터의 자취가 남은 곳은 많습니다. ---「제4장 - 해리 포터의 원조 베아트릭스 포터」중에서
우리가 근대화한다며 모든 걸 싹 밀어버릴 때 샬럿과 에밀리 브론테가 걷던 워더링 하이츠 가는 길 돌담에 이끼가 낄 때까지 기다렸으며, 우리가 눈 돌리면 잊는 사이버 잡담에 한눈팔 때 종이신문을 들췄던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바로 셜록 홈스와 스크루지와 햄릿과 피터 래빗과 해리 포터다.” ---「제4장 - 해리 포터의 원조 베아트릭스 포터」중에서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 시 당국의 ‘문화유산으로 돈 벌기’를 살펴보고 가겠습니다. 이곳에는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주택이 모두 다섯 채나 됩니다. 생가부터 아내가 홀로 산 집, 딸 부부의 집까지 셰익스피어라는 이름과 조금이라도 관련되면 어김없이 입장료가 붙습니다. 무덤이라고 돈벌이에 예외는 아니겠지요. 셰익스피어는 시내에 있는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 묻혔습니다. 여기에 들어서니 아니나 다를까, 묘비명이 보일락 말락 한 지점부터 누군가 손을 내미는 겁니다. 셰익스피어의 묘비를 보려면 돈을 내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곳곳을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죽은 이를 이용한 마케팅인 ‘요람에서 무덤까지’가 아닐까요? ---「제9장 - 인도와도 안 바꾼 셰익스피어의 자취를 찾아」중에서
길을 잃었다고 겁낼 필요는 없습니다. 엑상프로방스 어디서도 “세자안”이라고 하면 프랑스인들은 “오! 세자안?” 하며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가리킵니다. 손짓이 가리키는 곳만 따라가면 세잔의 아틀리에입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세잔’이 아닌 ‘세자안’이라는 것을……. ---「제13장 - 엑상 프로방스, 세잔의 아틀리에」중에서
작품 욕심만큼이나 그는 여자에 대한 열정과 탐욕도 남달랐습니다. 놀랍게도 그와 함께 살았던 여자들은 한결같이 “피카소와 지낸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라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평생 그가 사랑한 여자가 일곱 명인데, 두 명은 그를 잊지 못해 자살했고, 두 명은 정신이상이 됐으며, 한 명은 요절했습니다. 옴므 파탈, 위험할 정도로 매혹적인 남자라는 호칭이 무리 없이 어울린다는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