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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버린세계에서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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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버린세계에서살아가기

: 황규관 산문집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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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0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144*215*20mm
ISBN13 9788997090525
ISBN10 899709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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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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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천 냇물들, 장마철이면 돼지나 개집 같은 것들의 멱살을 잡고 질질 끌고 가던 그 거친 물살들. 끝내는 내 동생을 삼키고 멀리 바다로 흘러가 버려 젊은 어머니를 일주일 내내 통곡케 했던. 그러나 냇물은 내 작고 외로운 몸을 부드럽게 핥아주던 양수이기도 했다. 마치 돌멩이처럼 나는 구워지다가 식혀지고 식혀지다가 다시 굴러다녔다. 그렇게 유년을 지나면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아버지 없이 체득했다. - 15쪽

안전장구로 빈틈없이 몸을 감싼 채 별별 기능과 기관이 장착된 자전거를 타고 천변이나 강변을 달리는 현실은, 넘어지면 정강이가 긁히고 무릎에 피가 맺히다 못해 울음까지 터뜨리던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게 발전이라면 나는 할 말이 없다. 이게 ‘더 나은 삶’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혹 이 발전의 종착점에 강의 파괴가 놓여 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도대체 우리의 삶은, 왜 이리 즐거워진 것일까. 편안하지 못하면 왜 못 견디는 지경에 이른 것일까. --- p.23쪽

우리에게 어떤 근원적인 회심이 있어야 하는데, 그 회심의 추진력 중 하나가 바로 생명에 대한 성찰적 묵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p.58쪽

노동자들의 그치지 않는 투쟁을 지지하고 그것에 연대하는 일이 얼마만큼 필요하고 중요한지는 잘 알지만, 그 모든 활동들이 어떤 의미를 갖고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 묻는 일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딴에는 물음 없는 투쟁이야말로 언젠가는 우리를 니힐리즘에 이르게 할 것이라고 줄곧 우려해 왔다. 이를테면, 정리해고/비정규 노동자 투쟁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생산하는가? 그것은 우리의 삶에 어떤 인식을 제공하는가? 모두 정규직 노동자가 되고 나면 그 다음에 노동운동은 무엇을 주창할 것인가?
나는 이런 물음들이 투쟁의 동력을 깎아 먹거나 투쟁의 의미를 퇴색시킨다고 믿지 않는다. 정작 문제는 물음 없는 투쟁이고, 도그마화된 이념들이다. --- p.77

가장 강력한 저항은 ‘멈추라’는 구호를 넘어 다른 생명적 가치를 계발하고 공유하는 일이다. 그것의 효과들이 점점이 퍼져 나갈 때, 우리의 감수성과 내면은 변화될 수밖에 없다. ‘정지’ 이후, 경제 ‘성장’ 이후의 모습을 운동적 차원에서 제시해 주는 것, 부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이 현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내가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우선적으로 지급하자고 생뚱맞게 주장하는 진짜 이유이다. --- p.89

대지는 우리의 영혼에서 펄떡이고 있다. 거기에는 강물도 있고 나무도 있고 황조롱이도 있고 꾸구리도 있다. 모두가 대지에 각각 제 양태대로 속해 있으면서 함께 별을 보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이 모든 것들이 민중이다. --- p.120

백무산의 시적 인식은 근대가 강요한 모든 죽은 시간에 대한 거부였으며 그것에 대한 투쟁이었다. 그리고 그가 체험한 죽은 시간은 바로 노동의 시간이었다. 그가 얼마나 죽은 시간인 노동의 시간을 거부하고 산 시간인 생명의 시간을 갈구했는지를 이해하는 일은 그의 첫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로 우리를 다시 돌아가게 한다. 그는 말했다. “피가 도는 밥을 먹으리라”(「노동의 밥」)고. 이는 결국 ‘생명의 밥’을 먹겠다는, 그의 모든 시의 모태이다. --- p.232~233

신경숙 표절 사태 이후, 반권력적 비판도 중요하지만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안 된 문학의 세계가 있음을 밝혀주는 비평적 작업도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은 미문주의로 후퇴해서는 안 된다. 문학이 문장으로 환원된다면 차라리 문장 자체가 안 되는 민중의 현실은 무엇이 되는 걸까.
민중의 현실은 문장 이전이기도 하지만 문장을 집어삼키는 다이몬이기도 하고, 문장을 토해내는 사티로스이기도 하다. 문학이란, 해석되지 않는 세계에 대한 실패가 예정된 ‘맞섬’일 것이다. --- p.233~234

‘노동시’를 죽이든 살리든 그게 무슨 문제이겠는가. 시의 일은, 노예노동을 제 실존 조건으로 가지고 있는 오늘날의 시의 소명은 무엇일까.
노예노동의 해체가 우리가 가 닿아야 할 궁극적인 역사의 종점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렇잖아도 삶은 우글거리는 문제‘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정 문제에 대한 해解는 한시적 의미만 갖는다. 문제에 대한 해가 다시 다른 문제로 되돌려지는 이 지난한 과정이 연속된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울음 속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일이며 허무의 심장에서 빛나는 설렘을 발굴하는 일이다. 시가 삶의 복판에서 나타났다 다시 삶의 복판으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면 시는 존재 의미가 없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시는 삶을 쉬지 않고 약동시킨다. 지금처럼 노예노동에 옥죄인 채 몸부림치고 있는 삶을 말이다. --- p.252

작가는 더더욱 세계 속으로 나와야 한다. 세계와 관계하면서 더더욱 자신의 내면을 복잡하게 변이시켜야 한다. 작가의 내면이 단순하고 맥락이 단출할수록 꿈꾸는 힘은 저하되며, 꿈꾸는 힘의 저하는 곧바로 자본의 복판으로 추락하는 길과 연결되어 있다.
나는 지금 저 고색창연한 참여문학과 민중문학을 신원伸寃하자고 읍소하고 있는 게 아니다. 도리어 문학 자체를 집어던지자고 주창하는 쪽에 가깝다. 얼마 안 가서 예술이나 미학은 부르주아의 액세서리로 전락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에 대한 능동적인 반응은 문학을 갱신한다는 명목을 들어 언어로 개칠하는 것이 아니라, 오염되어 버린 언어를 혁신하거나 또는 언어가 생성되는 토대를 전복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문학을 버리고(?) 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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