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다니엘 페나크의 까모 시리즈 중 첫 번째 이야기이다. 아직 까모의 초상을 자세히 그려 보긴 어렵다. 독특한 이름을 가진 열네 살의 소년이며 엄마와 둘이 파리에 살고 있다는 것. 역사 과목을 좋아하고 영어는 싫어한다는 것. 그리고 아주 좋은 친구를 한 명 갖고 있다는 것 정도가 우리가 알 수 있는 전부다. 그런 까모가 펜팔을 통해 영어 공부를 하는 석 달 동안에 겪은 희한한 사건들이 바로 이 책의 줄거리이다.
그 사건들을 여기서 귀띔해 줄 순 없다. 혹시 책을 들자마자 제일 먼저 옮긴이의 글부터 읽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 책은 탐정 소설처럼 수수께끼로 가득 차 있다!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다니엘 페나크의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하기를 원한다면, 절대로 책을 거꾸로 읽어선 안 된다!
까모가 주고 받은 괴상한 편지들과 씨름하는 동안, 내게도 아주 오래 전의 추억들이 떠오르곤 해, 혼자서 미소를 짓곤 했다.
영어를 처음 배웠을 때, 파인애플 통조림에서 ‘pine-apple’이라는 낱말을 읽어 내고는 마치 세상에서 나 혼자만이 영어를 읽을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감격했던 일! 그러나 며칠 후, apple을 쓰기 위해선 a, p, p, l, e라는 철자를 순서대로 외워야 한다는 걸 알게 되고는 얼마나 난감해했던가. 억지로 철자를 외우면서부터, 영어는 더 이상 신선한 충격이 아니라 따분한 숙제일 뿐이었다.
또 한 장면이 떠오른다.
중학교 1학년 때던가? 『사랑스런 포리』라는 소설을 읽었던 것이…… 포리가 왜 그리도 불쌍했었는지 자세한 사연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책 표지에 그려져 있던 인형같이 예쁜 서양 소녀를 지독히 사랑해서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했던 기억은 생생하다. 지금 아무리 감동적인 소설을 읽는다 해도, 그 때처럼 온 마음을 다해 빠져드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는지.
두 살도 안 되어 억지로 한글을 배우고, 서너 살엔 영어까지 배우는 우리네 아이들의 현실을 생각할 때, 까모는 정말 행복한 아이이다. 그 아이의 영어 공부는 삶 그 자체였으니까. 영어를 배우며 첫사랑에도 빠져 봤고, 세상살이의 괴로움, 또 예술이 주는 감동까지도 다 경험해 본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혜로운 엄마가 있기에 까모는 행복하다. 아들의 힘겨운 성장 과정을 초조해하지 않고 지켜봐 주는 인내심 많은 엄마. 아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 거리를 만들어 준 까모의 엄마가, 못난 엄마인 나 자신에게 뼈아픈 반성을 하게 만든다.
사춘기의 가파른 언덕을 넘어 훌쩍 성숙해졌을 까모를 다른 작품들에서 또다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끝으로 다니엘 페나크의 짧고 재미난 인터뷰를 소개해 볼까 한다. 그의 개성을 엿보고,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역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