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69 이하~
자꾸만 가시고기가 생각납니다. 돌틈에 머리를 박고 죽어가는 아빠 가시고기 말예요. 내가 없어지면 아빠는 슬프고 또 슬퍼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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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의 머리는 동편에 두어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고집을 부려 선배의 머리를 북서쪽을 향하게 한 채로 매장을 했다. 선배의 머리가 가리키는 방향에,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워하며 눈물지으며 고통을 참아가며 부르던 아이가 있었다.
사흘 뒤, 무릎까지 차오른 눈을 헤치며 사락골을 떠났다. 서두르지 않았다. 아니, 나무 하나 바위 하나마더 찬찬히 마음속에 새겨두었다. 아, 훗날, 먼 훗날 아이와 함께 되짚어 와야 할 길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사락골이 마지막 산모퉁이에 가려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등뒤에서 메아리인 양 선배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선배의 발병 사실을 안 그날, 빙긋이 웃으며 들려준 이야기였다.
'진희 씨, 이런 말 알아? 사람은 말이야...... 그 아이를 세상에 남겨놓은 이상은, 죽어도 아주 죽는 게 아니래.'
--- p.285
아빠는 널 잊을 거다. 그러니 너도 아빠를 잊어버려라. 아예 아빠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라. 어서 가라. 절대로 돌아보지 말아라. 그냥 씩씩하게 엄마한테 달려가기만 해라
--- p.280
세상을 사랑하고,
또 세상으로부터 사랑받는 다움이가 되길바란다. -- 아빠가.
그는 막 세상에 나온 시집 내지에 그렇게 썼다.
그게 그의 전부였다.
--- p.272
그리 말하면서도 아이가 냉큼 돌아서길, 돌아서 자신의 품으로 달려와 안기길 필사적으로 원했다. 그러나 최후의 모진 말을 남기고 만 그였다.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그게 얼마나 아이를 위하는 일이라고.
'아빠는 널 잊을 거다. 그러니 너도 아빠를 잊어버려라. 아예 아빠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라. 어서 가라. 절대로 돌아보지 말아라. 그냥 씩씩하게 엄마한테 달려가기만 해라.'
아이는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울고 또 울면서, 아이는 조금씩 그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는 알고 있었다. 끝이었고, 그러므로 아이가 한번쯤 돌아보아도 된다는 사실을.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오랜 갈망과 안타까움과 애착의 띠를 이젠 풀어야 한다는 것을. 아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돌아보지 않았다. 아이가 소아병동을 돌아 완전히 사라진 다음, 그때까지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허리를 꼿꼿이 세워두었던 자세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벤치 위를 엉금엉금 기어 조각을 집어들었다. 그는 조각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잘 가라, 아들아.
잘 가라, 나의 아들아.
이젠 영영 너를 볼 날이 없겠지. 너의 목소리를 들을 길이 없겠지. 너의 따듯한 손을 어루만질 수 없겠지. 다시는 너를 가슴 가득 안아볼 수 없겠지. 하지만 아들아. 아아, 나의 전부인 아들아. 아빠는 죽어도 아주 죽는 데 아니란다. 세상에 널 남겨놓은 한 아빠는 네 속에 살아 있는 거란다. 너는 이 아빠를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없겠지. 하지만 아빠는 언제까지나 너와 함께 앞으로 걸어가는 거란다. 네가 지칠까봐, 네가 쓰러질까봐, 네가 가던 길 멈추고 돌아설까봐 마음 졸이면서 너와 동행하는 거란다. 영원히, 영원히...
--- p.280-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