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옆에는 발그레한 얼굴에 금발 머리, 그리고 짙은 눈을 가진 서너 살쯤 된 사내아이가 있었지요. 아이는 자기 가슴 높이까지 자란 잡초 속으로 후다닥 달려오더니 조용히 누워 있는 커다란 개를 꽤 심각한 눈길로 바라보며 서 있었어요. 이것이 어린 넬로와 커다란 파트라슈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 p.17
하지만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와 쥐의 이빨이 몸을 갉아먹는 것 같은 배고픔을 참고 계속 걸어갔습니다. 여윈 몸을 덜덜 떨며 그토록 사랑하던 발자국들을 끈질기게 따라간 파트라슈는 안트베르펜 중심부 대성당 계단 앞에 도착했습니다. --- p.100
그때 갑자기 어둠을 뚫고 텅 빈 복도를 가르며 하얀 빛이 쏟아졌습니다. 찰대로 찬 보름달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것이었어요. 눈은 어느새 그쳤고 하얗게 쌓인 눈밭 위로 달빛이 반사되어 사방은 새벽처럼 환해졌습니다. 그 빛은 둥근 천장과 함께 그림 두 점을 비추고 있었어요.
제항 다스 할아버지는 딸의 죽음으로 손자 넬로를 키우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철물상 주인에게 착취와 학대를 당해 만신창이가 된 채 길가에 버려진 개, 파트라슈를 만난다. 두 사람의 정성 어린 보살핌에 건강을 회복한 파트라슈는 그날부터 놋쇠 우유 통이 실린 초록 수레를 끌며 두 사람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한다. 가난해도 작은 것에 만족하고 행복해할 줄 아는 세 사람의 일상은 평화로웠으며, 넬로는 루벤스와 같이 위대한 화가가 되고자 하는 꿈을 갖게 된다. 하지만 풍차 방앗간 주인인 코제 씨의 딸 알로아의 그림을 그려 주다 들킨 이후, 코제 씨에게 미움을 사게 되어 걷잡을 수 없는 불행이 계속된다. 결국 돌아가 몸을 뉘일 낡은 집마저도 잃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그림 대회에 낙선하며 모든 것을 잃은 넬로는 대성당에서 루벤스의 그림을 보며 파트라슈와 부둥켜안은 채 얼어 죽고 만다.
왜 ‘다시’ 고전인가? 오랜 세월을 이겨 내고 살아남은 고전들은 세상이 바뀌어도 변치 않는 삶의 원형과 본질을 담고 있어, 우리가 찾아내고 간직해야 할 참된 가치와 길을 알려 준다. 고전은 허기진 영혼에게 꼭 필요한 마음의 양식이다. 이금이(『너도 하늘말나리야』의 작가, ‘보물창고 세계명작전집’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