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낳았으면 잘 키우고 싶은 거야 모든 부모의 마음이다. 그런데 그 ‘잘’이란 게 문제다. 너무 한 곳으로 쏠린다. ‘최고로’, ‘남부럽잖게’ 키워야만 잘 키운 거라는 믿음이 부모를 옥죈다. ‘쏟아 부은 만큼’ 자라는 게 아이라는 오해가 맹신을 넘어 광신으로까지 치닫는다. 그러니 아이 키우는 일이 기쁨일 리 만무. 육아는 어느새 전쟁이 되었다. (중략) 책을 다시 펴낸다니까 한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은 자식을 미국 명문대에 보낸 엄마들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때 아니에요?”라며. 글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건 어떤 대학을 보냈느냐가 아니라,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는 거니까. 아이들은 힘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부모는 충분히 행복하다. 잘 키우겠다고 너무 오버하지 말자.
- <개정판을 내면서> 중에서
*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의 양보다 정서적 안정감이 중요하다
엄마가 하루 종일 붙어서 아이를 키운다고 아이들이 모둔 문제 없이 크는 건 아니다. 오히려 요즘같이 여성의 사회 참여를 권하는 분위기에서는 전업 주부들이 훨씬 더 정서적 불안감에 시달리기 쉽고, 따라서 아이들에게도 그 여파가 더 크게 닥칠 수도 있다. 엄마가 취업을 했건 안 했건 아이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기 위해서는 부모들이 먼저 안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나는 내가 집에 들어앉아 아이들을 키웠기 때문이 아니라 부모가 워낙 조그만 일에 잘 휘둘리지 않는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아이들이 잔병치레 없이 정서적으로 안정된 성격으로 자랐다고 생각한다. - <둔하면 편하다> 중에서
* 모르는 건 끝까지 모른다고 해라
엄마는 아이를 내팽개쳐 길렀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아이들이 모두 공부를 잘하게 된 배경에는 무언가 그 엄마만의 특수한 교육이 있지 않을까 하고 사람들은 나름대로 추리한다. 내게서 아이들에게 지적 자극을 준 그 어떤 방법을 굳이 끌어낸다면, 그건 바로 훈이가 울며불며 엄마를 탓한 바로 그 말 한마디다. ‘모르는 건 끝까지 모른다고 해라.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는 사람처럼 바보는 없다.’ 아이들이 자신이 모르는 건 알 때까지 몇 번이고 질문하고 확실하게 알고 넘어가려는 의욕이 대단했기 때문에 당장의 성적은 좋지 않을지 몰라도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었다.
- <모르는 건 끝까지 모른다고 해라> 중에서
* 평균 90점이면 공부 잘 하는 애지, 반에서 몇 등이 무슨 상관이람
반 친구들이 하도 올백 올백 하니까 훈이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없었던지, 어느 날은 “나 같은 애는 죽어도 올백 못 받을 거야” 하며 한숨을 다 쉬었다. “올백 같은 거 좋은 거 아니야. 엄마는 네가 시험 때 괜히 떨려서 실수하지 말고 아는 것만 제대로 쓰면 더 바랄 게 없어.” 결국 세 아이들 모두 올백이라는 걸 한 번도 못 받아 봤다. 그런데 큰애가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상황이 달라졌다. “엄마, 중학교에 오니까 공부가 재미있어져요.” 친구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엄마에게 너무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는 잔소리를 들어서 ‘공부’라는 소리만 들어도 지겹다고들 하는데, 아마 자기는 그런 잔소리를 못 들어서 공부가 재미있게 느껴지나 보다고 제법 그럴듯한 풀이까지 했다. 아무튼 훈이는 그때 공부에 관한 한 제 길을 찾은 셈이다. 그것도 중학교 1학년 때 순전히 제 힘으로. - <자꾸만 공부가 재미있어져요> 중에서
* 스킨십처럼 친밀한 대화가 또 어디 있으랴
대화 부재의 경직된 문화 속에서 오래 살다 보니 실제로 우리는 대화가 아주 서툴다. 부모 자식 관계도 마찬가지여서 아이들이 어릴 때는 부모가 일방적인 명령과 지시만 하다가, 아이들이 크면 그때는 자식이 일방적으로 거부하는 게 기본 구도인 것 같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아이들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다 사춘기가 되면 갑자기 벽을 느끼고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대화란 무슨 남북한 고위회담을 하듯 격식을 갖추어야 되는 게 아니다. 내 생각으로는 부모 자식 간의 대화에서 말보다 더 중요하고 확실한 것이 바로 스킨십인 것 같다. 아이들이 지쳐 보일 때 나는 “너 무슨 일 있었니?”라고 묻는 대신, 아이들의 머리를 어루만지거나 어깨를 감싸 안으면서 말한다. “사는 게 힘들지?” 내가 우울해하면 아이들 역시 조용히 엄마를 안아 주며 말한다.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 <대화가 따로 있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