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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도 가는지 모르겠다. 땅굴견학. 우리나라의 분단상황을 체험하고 반공정신을 키운다는 이름하에 수학여행에서 빼놓지 않았던 땅굴견학. 그 곳에서 만난 지하세계는 습하고 어두운, 그리고 가도가도 똑같은 지루한 장소였다. 그 뒤로 난 '지하'라는 공간에 대해 완전히 무관심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유달리 가족여행을 많이 다녔던 나는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동굴'이라 이름 붙여진 곳을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성류굴이었던 것 같다. 철모같은 모자를 쓰고 할아버지 손을 꼭 잡고 들어간 그 곳은 내가 보았던 땅굴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 곳 하나 똑같지 않은 생김생김, 지하에 만들어진 호수, 조명을 받아 오묘하게 빛나는 종유석들... 그 뒤로 난 '동굴'에 대해 호기심과 동경을 가지게 되었다. 『반지의 제왕』을 읽으며 골룸이 산 동굴을 쉽게 상상해볼 수 있었던 것도, 그 때 내 손을 잡고 동굴구경을 시켜주신 우리 할아버지 덕분이리라.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 기억이 희미해질 때쯤 이 책을 만났다. 동굴전문사진가이자 저자인 석동일 선생님이 보여주는 동굴의 세계는 어릴 적 내 기억보다 더 아름다웠다. 가늠하기 어려운 태초의 순간부터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만들어낸 장관은 탄식조차도 잊게 만든다. 빨대 모양의 종유관, 15M에 이르는 폭포, 지하에서 자라는 나무 같은 석순, 석순과 종유석이 만나 만들어진 석주, 어찌 보면 공룡을 닮은 종유석, 성모마리아 모습을 만들어낸 유석, 동굴진주, 동굴포도를 비롯하여 4~5억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살아온 갈르와벌레 등은 마치 외계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들의 신기한 모습에 호기심을 느낄 때면 어김없이 자세한 설명이 곁들여진다.
"이 종유관의 길이는 무려 1미터 65센티미터나 된답니다. 이 정도 길이가 되면 부러지는 것이 보통인데 이 종유관은 아직도 말짱해 보이는 것이 신기하네요. 그렇다면 이 종유관만 유난히 길게 성장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그것은 이 종유관이 나무뿌리를 지팡이 삼아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이 곳에 지진이 일어났었나봐요. 그리고 그 때 나무뿌리 하나가 우연히 동굴 밑으로 길게 드리워졌고, 깍쟁이 점적수 하나가 그것을 독차지한 거지요. 그래서 이 종유관은 혼자 난쟁이 나라를 찾아간 걸리버처럼 키다리가 되어 버렸어요.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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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신기한 동굴의 구성원들을 만나고 그들을 이해하게 될 때쯤, 선생님은 우리나라 동굴을 석회동굴과 용암동굴로 나누어 설명해준다. 관음굴, 초당굴, 환선굴, 고씨굴, 천동굴, 만장굴, 당처물굴, 협재굴…. 정말 많기도 하다. 이들은 천연기념물, 혹은 지방기념물로 지정이 되어 보호받고 있지만 일반인들에게 공개 후 너무나 많이 훼손되어 일부 동굴은 비공개 동굴로 지정되었다 한다. 그러니 비공개동굴은 이 책으로 만나보는 수 밖에...
이쯤에서 아이들이 묻지 않을까 싶다.
'그 곳에도 생물이 사나요?' 대답은 '그렇다'이다.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수 억년 전의 생물이 그 모습 그대로 생명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땅 위에서는 오래 전에 멸종된 희귀한 동물을 만날 수도 있다. 이 역시 저자의 뛰어난 사진솜씨로 실물에 가까운 선명한 모습이 실려있다.
요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너무나 많은 것들을 접해왔기 때문에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 아주 특이한 것이 아니면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부모님들은 하나라도 아이의 학습에 도움이 되고자 박물관으로, 문화유적지로 그들을 데리고 가지만 아이의 눈을 초롱초롱하게 만들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다면 동굴로 눈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
『동굴전문사진가 석동일 아저씨가 보여주는 동굴의 비밀』은 아이가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세계이다. 그리고 그들의 눈을 먼저 번쩍 뜨이게 한 후, 그들이 알고자 하는 것을 설명해 줌으로써 공부가 아닌 듯 공부를 시켜준다.
더 늦기 전에 아이에게 이 책을 안겨주자. 그리고 한 번 반응을 살펴보라. 며칠 후 동굴에 데려가 달라고 조를 것이다. 어쩌면 인터넷으로 게임만 하던 아이가 동굴에 대한 정보를 찾아 신나는 서핑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 모른다.
이 책을 읽은 아이들 중, 미래의 위대한 지질학자가 나올지도...
--- 오혜원(kuchi@ye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