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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
중고도서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

: 사랑이거나 사랑이 아니어서 죽도록 쓸쓸한 서른두 편의 이야기

김종관 | | 2014년 08월 28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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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8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337g | 130*205*20mm
ISBN13 9788993928747
ISBN10 8993928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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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꽉 잡고 어둠을 가르는 연인들의 성욕은 항상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손을 꽉 잡고 비에 젖은 밤길을 걸으며, 음식물 냄새 나는 골목을 돌아서며, 인파들의 어깨를 부딪히며 아름다운 세계를 본다. 둘은 같은 공간을 보고 같은 추위를 느끼며 같이 아름답다 느낀다. 새벽이 다 되도록 잠이 오지 않는다. 술은 늦게까지 깨지 않으며 감각은 모두가 살아 있다. 그들은 걷는다. 사랑하기 위해서.---[단잠]

우리는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작은 배를 탔을 뿐이다. 문이 열릴 때 내리지 않으면 다시 오를 수 있지만 이미 보고 지난 것들을 다시 볼 의미가 없다.---[대관람차]

영혼의 교감도 길이가 있다. 천일야화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던 그들의 대화도 언젠가는 끝이 있고 소통은 줄어간다. 하잘것없어 보이는 취미의 공유는 은근히 오래갈 수 있다. 홍어를 좋아한다거나 스쿠버다이빙을 한다거나 혹은 경마 같은 위험한 기호를 공유하는 것도 영혼의 교감만큼 긴밀한 유대를 만들어낸다. 어느 날 홍어를 싫어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돈 떨어지고도 경마를 계속할 수는 없을 것이다. 취미의 유대도 언젠가는 끝이 난다. 그 이후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반대로 대화가 사라진 관계를 스쿠버다이빙으로 메워볼 수 있지 않을까.---[안드로메다]

너와 나의 문제 사이, 그와 그녀의 문제 사이, 어지러운 정으로 비롯되는 윤리적인 고민들은 세상의 법으로 묻는 윤리적 잣대와는 다르게 간다. 한 명의 정신을 추악하게 훼손하는 짓에 법적인 제재를 가할 수 없고,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일들이 벌어졌음에도 당사자들 사이에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는 경우가 있다. 또는 죄를 지었으나 그 죄를 받은 사람이 없는 경우.---[두 개의 몸]

모험의 기회가 생겼을 때, 그 모험에 가담하거나 옆길로 스쳐간다. 때로는 스쳐간 모험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녀와 그 좋은 분위기에서 왜 자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들면서 그 이후의 이야기를 상상해보고 진도를 나가보자면, 섹스는 재밌었던 것으로, 관계는 결국 안 되는 쪽으로.---[레드트리]

청춘은 거침없이 저질러지는 시기다.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인생을 걸었다. 잘못 가고 있는 것을 알아도 벼랑 위를 걸었다. 우리는 배웠다. 가지지 못하는 것을 가지는 법. 혹은 가지지 못하는 것을 견디는 법을. 자해와 살인과 광란으로. 파티는 생각보다 빨리 끝이 나고 그 짧은 파티에서 우리는 평생의 상처를 얻는다.---[파티]

시간은 흐르고 무수한 선택으로 우리는 현재를 만났다. 변한 것과 그대로인 것, 선택한 길과 선택하지 않은 길이 남았다. 어둠 속에 가둔 가능성들 속에서 다른 운명으로 흘러간 나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이야기들은 가끔 그곳에서 온다. 벽 너머 어둠 속에 잊혀진 기억 몇 개와 선택하지 않은 길들에 상상을 덧대어 다른 세계가 만들어지고, 그곳에서 나와 다르게 움직이는 거울 속의 나를 보게 되지만 그 환영들이 빛이 닿는 곳에 머물 수는 없다.---[도둑]

헤어지려고 백 번을 잔 커플이 있다. 다시 타오를 수 없는 불씨가 오래갔다. 그들은 증오의 침을 뱉고 발기하고 같이 자고 서로 다른 꿈을 안고 헤어진다. 어느 한쪽에서 불씨가 댕겨지고 둘은 주먹을 쥐고 만난다. 한 방 먹이고 싶은 서로의 얼굴을, 한 번 안기고 싶은 서로의 가슴을 본다. 그들은 헤어졌고 불씨는 겨우 꺼졌다. 고무를 태우는 것 같은 역한 냄새가 남았다.---[공격]

자신만만함보다 부끄러움이 섹시하다고 생각한다. 감추고자 노력했지만 실패했고 오갈 데가 없어진 너의 수치스러움에서 드러나는 관능들.
---[세번째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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