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의 개시곡인 알렉산더 라스카토프의 '모차르트 생애로부터의 5분(5 min. aus dem Leben von W. A. Mozart)'은 바이얼린 독주 와 현악기 및 타악기를 위한 곡으로 (본 음반에 최초로 녹취됨) 모차르트 스타일의 특징적인 몇 가지 질감인 매혹적이고, 순진무구한 면을 맨 앞에 보여 주고 있다. 타악기의 부드럽게 딸랑거리는 소리나 바이얼린 솔로의 멜로디에 붙여진 잔잔한 피치카토 반주는 크레머가 표현하듯 18 세기 말 비엔나 음악의 한 특징인 "단정함과 순수함"을 지닌 고도로 격식화된 세계로 우리를 옮겨다 놓은 듯 하다. 그러나, 아마도 모든 게 겉모양과는 사뭇 다른 법인 듯하다. "모차르트의 생애로부터" 낚아 챈, 금방 사라져 버릴 이 5분은 비엔나 황금시절의 전원적 무구함이 오늘날 세상에서도 다시금 얻어 질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을 던지는 것 같다. 인간사에서와 같이 음악에 있어서도 의미들이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모차르트의 세계를 듣고 있는 것은 오늘날의 귀를 통해서인 것이다. 친숙한 것도 낯설고, 다소 비현실적이 되고 마는 것이다.
야상곡(notturno)은 밤이 된 후 연주하도록 되어 있는 하나의 세레나데이다. 따라서, 스테판 손트하임이 정한 '하나의 작은 밤 음악(A Little Night Music)'과 관련되어 붙여진 오늘날의 표제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의 K.525의 타이틀인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Eine kleine Nachtmusik)'은 단순히 "하나의 짧은 세레나데"를 의미한다. 작품의 시기가 그의 비엔나 시절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 작품은 이 형식의 모차르트 작품들 중에서는 색다르다. 음악학자 폴 핸리 랭이 믿는 바로는, 모차르트가 1781년 잘츠부르크를 영영 떠났을 때에는 그가 "표상화 하였던 바의 음악에 대한 그의 믿음"을 점점 잃게 되었다고 하였다. 특히, "교향악적 집중화"에 대한 그의 관심이 높아 지면서 그는 세레나데 형식이 부적합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랭은 주장한다. 사실 1787년 8월 비엔나에서 작곡된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가 모차르트의 세레나데로 불리는 것으로서는 최후의 것이다. 모차르트가 그의 작품 중 가장 인기있는 이 작품을 무슨 행사용으로 만들었는지 우리는 확실하게는 알지 못한다. 기이하게도, 현재의 그 형식 속에 매우 완벽하게 균형 잡혀 있어 보이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원래는 5악장으로 되어 있었다. 미뉴엣/트리오는 본디 제 2악장이었으나 망실되었다. 남아 있는 4개의 악장은 알레그로, 로망스(안단테-몇몇 자료는 그 해 초에 당한 그의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고 믿고 있음), 메뉴에토, 그리고 피날레인 론도가 있다.
알프레드 슈니트케의 곡 '모차르트 아 라 하이든(Moz-Art a la Haydn (1977))'는 기돈 크레머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그의 몇 작품 중 하나다. 작곡자와 바이얼리니스트는 1970년대에 가까운 친구였었으며 크레머는 구소련 내외를 통 털어 슈니트케 음악을 정복한 가장 앞선 승리자에 속하였다. 슈니트케는 모차르트가 1783년 2월 비엔나에서 한 판토마임을 위해 작곡한 음악('Musik zu einer Faschingspantomime, K. 446)에 매혹되었는데, 그 중 바이얼린 파트의 악보만이 전해 내려 왔다. 슈니트케를 매혹시킨 것은, 음악적 소재 자체에 대한 천성적인 관심이었다기보다는(현존하고 있는 악보는 모차르트의 기준으로는 비교적 통상적인 것임), 그의 상상력을 고무시켰던 이 실용적 악보 속에 있는 여러 가능성에 대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다른 작곡가 음악의 미완성 작품 조각들에 몰두한 것이 이번 작품만이 아닌데, 예로 들면 1988년 작 피아노 4중주는 말러의 미완성 피아노 4중주에서 나온 소재를 포함하고 있다.) 1976년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기돈 크레머의 신년 제야 콘서트를 위하여, 슈니트케는 크레머의 요청에 따라 '모차르트(Moz-Art)'라 명명된 앙상블을 작곡하였는데, 이는 실용성 있는 모차르트 소재를 재작업한 것으로서, K.446 - 바이얼린 독주곡 -의 보존 돼 남아 있는 원작부분을 말 그대로 조각들로 쪼갠 다음 그 자신의 악보를 만들기 위해 다시 합쳐 놓은 것이었다. 이 작품의 다른 버전들이 뒤따라 나왔으며, 그리고는 뒤이어 같은 소재로 신작품 '모차르트 아 라 하이든'을 작곡하였는데, 이는 두 개의 바이얼린을 위한 곡이었으며 후에 실내 오케스트라도 덧붙였다. 이 작품에서는 모차르트의 작품 편린들을 푸드 프로세서와 같은 작곡 프로세서를 통과 시켰는데, 멜로디들이 하나씩 차곡차곡 쌓이고 나서 한데 혼합하고 다른 작품에서 약간 인용한 것들을 혼합기에 던져 넣으면 모차르트 원작의 의도와 유사한 축제 열기로 가득 찬 하나의 유쾌한 콜라주를 -여하히 불경한 슈니트케의 처리법이든지- 창조하게 된다. 기돈 크레머와 타티아나 그리덴코(크레머가 함께 이 작품과 슈니트케의 첫번째 '콘체르토 그롯소(Concerto Grosso)'를 초연함)는 1988년 베를린 페스티발에서 '모차르트 아 라 하이든'의 버전을 이태리 카니발 형식으로 된 가면극인 "음악과 함께하는 연극"으로 내놓았다. 음악이 암흑 속에서 시작되고 곡이 2분이 넘게 진행된 후 갑작스런 높은 트레몰로 화음소리와 함께 조명이 올라 간다. 지휘자가 보이지 않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베이스 주자만 남는 가운데 하이든의 '이별' 교향곡과 같은 방식으로 연주하면서 연주자들이 한 사람씩 떠나는 동안 제 2 바이얼린 독주자가 악기의 G 선을 타고 난 후 음악은 끝이 난다. (아니면 무너진다고나 할까)
본 음반의 세 번째 곡, 우크라이나 작곡가 발렌틴 실베스트로프의 '메신저(The Messenger)'를 감도는 것은 아마도 영원한 완벽성 상징으로서의 모차르트에 대한 감각일 것이다. 잊혀지지 않는 이 음악은 황량한 풍경을 넘어 머나 먼 곳으로부터 우리에게 온 듯하다. 마치 근처의 낯설은 곳에서 낯익은 물체가 나타나는 꿈과도 같다. (실베스트로프 스스로 우리에게 녹음재생 음량을 높이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이러한 지극히 가냘픈 음악의 효과와 의미를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모차르트 음악소재의 원곡이나 모방곡만으로 작곡된 것이지만, 이상한 혼란(disturbance) 즉, 멜로디가 나타났다가 불완전하게 잦아진다든가, 화음연결이 우리가 기대한 곳에서 리드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판에 박은 듯이 끝나버린다든가 하는 것 등이다. 원래 1996년에 피아노 독주곡으로 쓰여졌고 다음 해에 현악기와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재 작곡된 바 있는 ("바람" 역할로서는 신디사이저를 씀) '메신저'는 통렬하게 개인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바 이 곡은 작곡자의 부인인 라리사 본다렝코의 죽음 후에 쓰여 졌다. 저승세계의 무드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비극 앞에, 사별에 임하여 견딜 수 없는 현실의 평화와 위로를 바치던 모차르트 시절을 불러내어 전해 주는 듯하다. "그것은 마치 시간의 어떤 다른 차원에서 한 방문객이 하나의 메시지를 가지고 우리에게 온 것 같다" 라고 작곡자는 쓰고 있다. '메신저'는 "어쩌면 라리사 본인일 수 있고, 어쩌면 18세기 말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어떤 먼 곳의 뮤즈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고풍스럽지만 필수적으로 현대적인 언어는 심오하게 포스트모던적인 감성을 통과하여 여과된 것이다." 크레머의 말대로 "이 곡은 모차르트가 오늘날 살아 있다면 작곡했을 법 한 그런 종류의 애도곡"이며, 그 슬픔의 질감 측면에서 볼 때,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Eine kleine Nachtmusik)' 제 2악장의 감정세계와 가까운 곳에 깃들어 있다.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그의 특출한 아들의 출현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작곡가, 바이얼리니스트 및 교육자로서 음악 역사상에 수수하기는 하나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여 왔다. 또한 그의 작품들이 오늘날 상대적으로 자주 연주되고 있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가 "잘츠부르크에서 영광을 볼 수 있도록 신이 허락하여 주신 기적"이라고 부르는 아이인, 그의 아들의 성장과 교육을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기 위하여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그 자신의 인생과 경력을 바꿨다는 정도까지는 인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 한 편으로 거의 모든 분야의 교육에서 어린 볼프강의 주임 교사가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그 자신의 작곡 성과는 줄어 들었다. 어떤 학자는 레오폴트가 그 자신의 이루지 못한 약속이 실현되는 도구를 그의 아들로부터 찾은 것이었다고 주장하였다.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작품 중 오늘날 가장 많이 연주되는 C 장조의 '장난감 교향곡(Kinder-Symphonie: 간혹 비공식적으로 "Toy Symphony"로도 알려 짐)'은 즐겁고 착한 익살 가운데서도 그의 동시대 사람들이 작곡자에 대하여 남긴 인상으로부터 -가까이 하기 어렵고, 아마도 비꼬기 잘하는 비참한 꼴이 되어, 잘츠부르크 지방에서 그가 인정을 받지 못한 데 대하여 끝없이 불만이었던 - 나오는 기분을 더 이상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그는 몇 개의 실용적이고 유머러스한 기악곡들을 작곡하였는데, 그 중에는 '신포니아 부를레스카(Sinfonia Burlesca)', '음악의 썰매 타기(Schlittenfahrt)', '전원 교향곡(Pastoral Symphony)' 및 '시골의 혼례(Peasant Wedding)'이 있다. '장난감 교향곡'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들은 현실적이거나 모방적인 방안들을 자주 사용하며, 또한 흥미를 끄는 소박한 코미디 감각을 보여 준다. 그리하여 크레메라타 발티카가 연주시에 오늘날의 전자 장난감과 장치들을 사용하는 것이 맨 처음 보인 것보다는 덜 가식적이다. "마치 우리가 모차르트와 그의 아버지에게 스튜디오에 와서 우리와 함께 놀기 위해 초대한 것과도 같다"라고 기돈 크레머는 말한다. 이 음반이 충분히 보여 주듯이, 그들의 음악은 2세기도 더 되는 다리를 건너 아직까지도 기쁨을 주고 영감을 일으키는 비할 데 없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리하여 우리와 이 시대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