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명은 수만水萬으로 1932년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양정리 789번지에서 태어났다. 1947년 공검국민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함창중학교 재학시에 초등교원 채용시험에 합격한 후, 상주중학교부설 초등교원 사범과를 졸업하고 공검국민학교에 재직하였다. 1962년 30세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요절했다. 아버지의 일기를 펴낸 이윤한의 아버지다.
편자 : 이윤한
1979년 상주시청에서 공직을 시작하여, 수원시청 재직시에 만학의 꿈(40세)으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구조공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대구광역시 수성구청에 재직중이다. 6·25전쟁 상황, 사범과 재학중 열아홉 살이란 나이에 쓴 ‘아버지의 일기’를 어릴적부터 소중히 보관하여 왔으나, 혼자만 간직하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워 인터넷에 공개하기 시작했다. 65년 전의 생활상과 시대상황을 이해하고, 글, 글씨, 그림, 음악 등에 뛰어난 예술가로서, 시골학교 선생님으로서 짧은 삶을 살다 간, 한 지식인의 고뇌와 번뇌를 오늘의 우리들이 공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책으로 엮게 됐다. lyh6311@korea.k
앞 길가에는 피란민이 봇짐을 싸서 지고, 어린아이를 업고, 나라 없는 백성百姓처럼 따뜻한 고향故鄕을 떠나 오직 낯설은 타향他鄕에서, 추움과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여 근심과 눈물에 싸인 얼굴로 지나가고 있다. 또한 앞 학교學校에서 방위대원防衛隊員들 역시 따뜻하고 뜨거운 밥은 버리고 춥고 추운 교실敎室 속에서 오늘이라도, 후송령後送令 오기를 대기待期하고 있는 대한大韓의 청년들! 그들에게 무슨 죄와 무슨 잘못이 있는가? --- p.27
오늘의 일과日課도 어느덧 지나 벌써 서산西山에는 처녀의 눈썹 같은 반半달이 솟아 대지大地의 눈에 덮인 산천山川을 비취고 있다. 나는 석반을 마치고 달빛이 어리는 ‘어머니’ 무덤을 멀리서 보았다. 그 역시 달빛은 비취고 눈은 쌓여 더욱더 나의 마음을 외롭게 만들어 눈물과 울음이 저절로 하염없이 나오다. 고故로 나는 참지 못하여 ‘어머님’ 무덤에 가려고 한 걸음 두 걸음 옮겨 보았으나, 밤은 깊어 생전生前에 잘못한 죄는 울어도 소용없고 슬퍼하여 소용없다는 듯이, 찬바람이 나의 살을 에는 듯 때려와 권영달 댁에 들어가 몹시 울고 울었다. 높은 하늘에는 비단 같은 고운 반달을 옹호하는 작은 별들이 점점 이 밤을 점령하고 있다. ‘어머니’! ‘어머니’! 불효자不孝子는 웁니다. 하늘에서 내린 차고 찬 함박눈은 ‘어머님’ 무덤을 덮었습니다. --- p.28
오! 하느님이시여! 우리 삶의 길을 개척開拓하여 주소서. 정처 없이 가는 이 자者의 길, 정의正義의 길로 밝혀 주소서…. 인생행로人生行路는 무상無常의 길…. --- p.59
나는 걸음을 빨리 하여 집에 계시는 아버지 평안平安하시온지 초조한 마음으로 갔다. 여전如前히 아버지께서는 무사無事하시었다. 연然이나 밥 지어 주는 아이가 아파서 방에 드러누웠다. 즉시에 기가 막혀 아! 기가 막혔다. 7일 동안 타향에 있다가 마침 일요일을 통해 그리운 내 고향 나의 집을 찾아왔건만, 지금은 오직 눈물 흘러내리게 하는 서글픈 고향 우리 집이었다. 어느덧 저녁이다. 밥 먹지 못하고 뒷동산 잔디 위에 누워 지나간 ‘어머님’ 사랑에 다시금 잠기어 보았다. 생각한들 아무 소용 없는 뼈아픈 과거사過去事다. 흘러내리는 것이 눈물뿐이요, 입에 나오는 것이 울음뿐이다. “모든 것이 모순 세상世上” 인생人生의 비관悲觀을 아니 느낄 수 없는 운명運命에 처處하고 있는 것이다.
오, 오, 비나이다. 하느님께 비나이다. 어리석고 불효자不孝子인 이 자者는 마땅한 죄를 달게 받으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