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거기 걸면 안 돼, 언니.” 엘렌이 경고했었다. “곤란한 일이 생길 거야.” 그는 그림에서 눈을 떼기가 힘들다는 듯이 겨우 나에게로 돌아섰다. 얼굴을 보고 다시 그림을 봤다. “남편이 그린 거예요.” 왜 그 말을 해야겠다고 느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것은 나의 분노가 정당하다는 확신에서 나왔는지 모른다. 그림 속의 여자와 그의 앞에 선 여자 사이의 명백한 차이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내 발치에 서서 울고 있는 금발머리 아이가 이유였는지 모른다. 아니면 이 점령 지역에 들어온 지 2년이 된 사령관조차 사소한 범행으로 우리를 들볶는 데 진력이 났을 수도 있다. --- p.17
그가 그리기 시작하자 나는 그를 관찰했다. 그는 내 몸을 엄청나게 집중하여 구석구석 샅샅이 훑었다. 그의 얼굴에 만족감이 번져가는 것을 보면서 내 얼굴에도 똑같은 만족감이 퍼져나갔다. 이제는 거칠 것이 없었다. 나는 미스탱게트였고 두려움 없는, 남의 눈 따위 의식하지 않는 피갈의 거리 여자였다. 그가 내 피부를, 내 목의 움푹 팬 곳들을, 머리카락 아래 비밀스러운 빛을 보아주었으면 했다. 그가 내 모든 부분을 보기를 원했다. --- p.77
“당신이 원하는 대로 했잖아요!” “내가 당신에게 원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소! 내가 원한 것은…….” 그가 좌절감에 손을 쳐들었다. “내가 원한 건 저거야! 그림 속의 저 소녀를 원했어!” 우리 둘 다 말없이 초상화를 쳐다봤다. --- p.171
“그래서 내가 너무 많이 갖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쉼터에 있었을 때 사람들이 늘 물건을 슬쩍했어. 어디에 두어도 소용없어. 침대 밑이건, 사물함 속이건. 나가기만 기다렸다가 가져가는 거야. 그러다 보면 자기 물건을 잃어버릴까 봐 겁이 나서 아예 밖으로 나갈 마음이 없어진단 말이야. 상상해보라고.” “뭘 상상해요?” “자기가 잃게 될 것. 그래봤자 별것도 아닌 것에 매달려서 말이야.” --- p.527
“제 전남편인 데이비드 할스턴도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정말로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가 소피의 초상화, 그가 아꼈던 그림에 이런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벌써 오래전에 돌려줬을 거라고 믿습니다. 이 소송을 하면서 그의 인생이고 꿈이었던 건물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졌습니다. 그 골드스타인 빌딩은 그의 기념비가 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에 저로서는 너무나도 통탄스럽습니다.” --- p.531
어느 날 예기치 못한 풍요로운 색채로 가득한 아름답고 기이한 그 모든 그림들이 어디서 나왔는지도 모르게 나타날 거라 믿어요. 그림들은 야자수 나무 그늘 아래에서, 혹은 노란 태양을 바라보는 붉은 머리 여인의 모습을 담고 있을 거예요. 그녀의 얼굴은 약간 더 나이 들고 머리카락은 좀 희끗희끗해졌을지 몰라도 여전히 애정이 가득한 눈으로 활짝 웃고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