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옮아간 세한도
세상 물건에는 모두 때에 따라 주인이 있는 법이다. 매일같이 쓰다듬고, 닦아 주고, 천하의 지인에게도 보여 주지 않던 고미술품도 세월의 냉혹함은 견디기 어렵다. 죽음을 무릅쓰고 갖은 고생 끝에 되찾아온 세한도(국보 제180호)도 그 후 너무나 어이없이 또 다른 주인을 찾아 방랑을 해야 했다. 해방이 되자, 손재형은 조선서화동연회를 조직해 초대 회장이 되더니, 1947년에는 진도중학교를 설립하고 1950년대 후반부터는 정치에 투신해 일약 정치가로 활약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간다. 1958년 민의원에 당선된 손재형은 한국예술원과 의원 활동을 병행하면서 자금이 쪼들리기 시작했다.
... 하루는 이근태에게 손재형이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세한도를 비롯한 고서화가 한 뭉치나 들려 있었다. 이근태는 손재형이 워낙 재력가로 소문나고 또 들고 온 고서화 모두가 국보급 미술품이라 남의 돈을 빌려다 주면서까지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때 함께 저당 잡힌 고서화는 단원의 군선도, 겸재의 인왕제색도 등 모두가 현재 국보로 지정된 것들이다.
... 이자와 원금을 갚을 길 없자, 이근태는 손재형의 양해를 구한 뒤 그가 맡긴 고서화를 팔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동안 갚지 못한 원금과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아무리 팔아도 소용이 없었다. 세한도는 결국 개성 갑부인 손세기에게로 넘어갔고, 지금은 그 아들인 손창근이 소장하고 있다. 이상적에 이어 후지즈카를 거쳐 손재형, 손세기로 바람처럼 옮겨 다닌 세한도는 1974년 12월 31일, 손창근을 소장가로 하여 국보 제180호로 지정되었다.
--- pp.34~35 중에서
오상고절, 청화백자양각진사철채난국초충문병
청화백자양각진사철채난국초충문병(국보 제294호). 큰 키에 균형 잡힌 아름다운 곡선이 동체를 휘감고, 희고 보드라운 살결에 마치 수를 놓듯, 들국화 몇 가지가 푸른 풀잎과 어우러진 백자병이다. 당시 백자 값으로 2천 원 이상 되는 물건은 없었다. 지방 군수의 월급이 70원이었고, 20칸짜리 기와집이 2천 원 정도였다.
... 와- 하는 탄성과 함께 모든 시선이 그쪽으로 몰려갔다. 야마나카였다. 경매장이 웅성거리며 새로운 맹장의 출현에 모두 손에 땀을 쥐고 숨을 죽였다. 이제 전형필 대 야마나카의 대결로 좁혀졌다. 오십이 넘은 세계 제일의 골동상과 이제 인생의 꽃봉오리를 맺는 신진 수집가의 창과 방패의 싸움이다. 심보의 이마에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전형필의 손에도 땀이 고였다.
"일만 사천 오백 십 원." 지친 야마나카의 목소리가 입안으로 잦아들었다. 십 원 단위로 경매 값이 좁혀 들자, 심보는 상대방을 읽었다.
"일만 사천 오백 팔십 원." 개미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 고히라가 몇 번 소리를 더 질러 댔다. 침묵. 드디어 경락봉이 '탕'하고 테이블을 힘껏 내리쳤다. 이 사건은 오랫동안 민족문화재수호의 교훈으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러나 하마터면 북괴군에게 빼앗겨 북쪽으로 옮아갈 뻔했다. 이 천하의 백자병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41호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간송미술관에 소장되다가, 1996년 11월 국보 제294호로 등급이 조정되었다. 1997년 《한국 고미술》에서 현재 가격을 추산했는데 최소 1백억 원에서 12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았다.
--- pp.170~178
나를 죽이고 가져가라, 금동여래입상
금동여래입상(보물 제401호).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머리에는 큼직한 육계(상투)에 짧은 머리카락이 꼬부라진 나발로 표시되어 있다.
1937년경이다. 금강산의 유점사 근처를 지나던 한 행락객이 장마로 무너진 흙더미 속에서 진흙에 묻힌 불상을 발견했다. 행락객이 불상을 주워 횡재를 했다는 소문은 곧 원산에 사는 미요시의 귀에 들어갔다. 미요시. 그는 일제의 침략과 함께 조선에 들어와 원산에 정착한 일본인으로 대단한 고미술품 수집가였다. 이 땅에 들어온 일본인은 이권을 독차지하면서 부를 쌓았는데, 그 또한 원산에서 가장 큰 어장을 경영하고 또 원산 명물인 운단을 독점 판매하는 공장도 가지고 있어 대단한 부자였다. 그의 소장품은 대개가 조선백자였고, 다수의 금속유물도 있었다. 그는 누구에게나 반말을 해댔다.
...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아픔이 너무도 급작스럽게 미요시를 덮쳐왔다. 미처 손을 쓸 겨를도 없이 북한에는 소련군이 들어오고, 자신은 패전국의 포로가 되어 언제 테러를 당할지 모르는 신세가 되었다. 알토란처럼 모았던 고미술품조차 일본으로 가져갈 수 없었고, 세상이 바뀌니 어장과 운단공장도 한국인에게로 넘어갔다. 작은 보따리 하나도 일본으로 가지고 갈 수 없는 소련 군정 치하였다.
... 미요시의 한이 서린 이 불상은 그러나 그 가치를 모르는 장석구의 소장으로 여러 해를 보냈다. 세상의 모든 물건에는 때에 따라 주인이 있는 법이다. 특히 고미술품은 자기를 더 사랑하고 아껴 주는 사람에게 기생처럼 옮아간다. 그것이 골동의 생리이다.
... 김동현 또한 호된 값을 치렀지만 마음만은 뿌듯했다. 천하의 보물이 자기 수중에 들어온 것이다. 김동현은 흙이 범벅이 된 불상을 집으로 가지고 가 먼지를 털고 초산으로 필요없는 녹을 벗겨냈다. 그러자 안에서 금빛이 찬란하게 빛났다. 마치 호미를 들고 금을 캐는 기분이었다. 그 후 미요시의 한이 서린 이 불상은 김동현을 수장자로 해서 1964년 9월 3일 보물 제401호로 지정받았다.
--- pp.266~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