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공주의 조건
--- 김미정(sbbonzi@yes24.com)
본 영화를 또 보거나, 읽은 책을 다시 읽거나, 한 번 들었던 얘기를 다시 듣는 일은 웬만한 애정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애정으로 시작된 '되풀이'는 알지 못했던 다른 사실을 알려줌으로, 시야가 넓어진 흐뭇한 기분이 들게 한다.
꼬마 때 읽었던 소공녀를 다시 손에 들면서, 어렸을 적 읽은 기억과는 다른 부분을 발견한 것은 어른이 동화를 읽는 차이인지, 아님 어릴 적 읽은 그 동화의 수준을 의심해 볼만한 지에 대한 명쾌한 판별은 어렵다. 다만, 다시 알게 된 소공녀는 명작동화 시리즈를 차례대로 다시 읽어야겠다는 각오를 갖게 했다.
줄거리에 대한 기억은 그대로다. 부유한 군인 아버지인 크루 대령과 그의 사랑을 잘 받고 자란 세어러. 비록 어머니의 사랑은 부족했지만 아버지의 친구 같은 사랑 덕에 어른스럽고, 남을 잘 배려할 줄 아는 세어러. 학교의 자랑거리였던 그녀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민친 선생의 구박을 받으며 배고픔과 가난 속에서 꿈을 잃지 않고 잘 지내다가, 종국에는 아버지의 친구를 만나 예전의 그 넉넉함을 다시 회복하게 된다는, 그 줄거리는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다만, 다시 읽게 되면서 새롭게 눈에 든 대목은 어린 세어러가 삶을 대하는 어떤 태도이다.
일곱 살 소녀로 등장한 그 순간부터, 그녀는 '특이한', 결코 흔하지 않은 캐릭터로 나타난다. 어른보다도 더 통찰력이 있고, 속 깊은 소리를 하는가 하면, 프랑스어에도 능통하고 춤도 잘 추고, 무엇보다도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상상력'의 마법을 타고 적까지도 내 편으로 끌어 들이는 힘을 발휘한다. 거기에 겸손하고 사랑이 많아서 학교의 하녀에게도 그 마음씀이 대단하다. 처음 대목이 이렇다 보니, 이야기가 다소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이후에 자신이 부유하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베풀 수 있는 아량이 아니라, 그녀의 어떤 성품이 그러하기 때문에 남을 위한 마음이나 지신을 꼿꼿하게 지키는 마음이었음을 보다 분명하게 알게 해주는 어떤 복선이 된다.
인형이나 좋아하고, 다락방에 가서도 쥐도 친구로 삼을 만큼 별난 아이로 치부해 버리고, '공주 세어러'라는 꼬리표를 달아 놓으면 그저 동화 속에 나오는, 뭐든 다 잘하고 예쁘게 생긴 아이가 그렇지 뭐 하고 말면 내가 그렇지 못하다는 괜한 열등의식만 심게 된다. 하지만 자신을 함부로 그런 구분 안에 넣지 못하게 하는 세어러의 자기 존중감은 분명, 삶을 대하는 다른 시각을 열어 보인다.
아버지를 잃은 아이를, 현실속에서 무방비로 내동댕이 치는 민친 선생과 어린 세어러가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대목 안에서 세어러는 분명, 다른 태도를 취한다. 자신에게 나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이라기 보다는 그 방향을 안으로 하여, 자신을 더욱 강건히 지켜 나가는 기술을 보여준다.
'분노는 정말 강하지만, 그걸 억누르는 것보다는 강하지 못하다'
어린 세어러의 분노에 대한 다짐은 사람을 대하는, 세상을 대하는 방법에만 급급했던 사람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모습으로 읽힌다. 작가가 소공녀를 통해 들려주고 싶었던 말도 어쩌면 이런 자신에 대한 자긍심이나 품위를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남을 변화시키는 일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의 백배쯤 되는 고통을 수반한다고 하면, 조금이라도 더 쉬운 길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일 것이다. 더구나, 함부로 구는 게 훨씬 쉽고, 하고 싶은 말을 뱉으면 그만하지 하는 마음으로 사는 일이 더 인생을 능숙하게 사는 사람의 그것처럼 보일 수 있는 요즘에, 명작의 고전은 다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일로 독자의 마음을 붙잡는다. 근본적으로 '고전'이 주는 매력이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어떤 흐름을 지켜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소공녀가 주는 흐름은 '자신을 치열하게 들여다 보는 일' 아닐까. 그래서 남의 이목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 안에 기준을 두고, 보다 곧게 살아 가는 일, 말이다. 어른도 함부로 지닐 수 없는 그녀의 품위가 현대의 우리들에게, 혹은 아이들에게 잘 스며들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