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과 경건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다. 더 높은 목표에 이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면 무가치한 것들이다. 그 목표는 반드시 영성을 넘어 의에 이르러야 한다. 물론 영적 훈련은 의롭게 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성경공부, 기도, 교회 출석, 전도는 그리스도인이 장성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하지만 그것이 최종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영성 없이 의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의에 도달하지 않은 채 표면상으로만 얼마든지 ‘영적’일 수 있다. --- p.33
그리스도인들은 전도와 선교사역에 부르심을 받지만 그런 사역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의가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낫다는 보증이 되지 못한다. 전도와 선교에 열심히 없다면 경각심을 가져야겠지만, 열심히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우리 믿음이 참되다는 증거는 아니다. --- p.48
하나님의 구속 무대는 이 세상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신 곳은 바로 이 세상이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이 두려워서 문을 걸어 잠근 채 다락방에 숨어 있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다. 변화산에 은둔처 짓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다. 우리는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예루살렘은 이 세상 안에 있다. 유대도 이 세상 안에 있다. 사마리아도 이 세상 안에 있다. 땅끝도 여전히 이 세상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으로부터 도피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도피를 꾀하고 있는가. 그렇게 하는 한 자기 백성이 세상에서 도피하지 않고 세상을 구속하는 데 참여하기 바라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을 것이다. --- p.64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우리의 흠 없는 삶을 보셨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로운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죄를 자각하는 건 틀림없이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를 사랑의 아버지 품으로 떠미는 고통이다. 유혹자 사탄의 소원과 달리 하나님의 품을 떠나지 않는 게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또한 죄를 범하더라도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고소자 사탄은 어떻게든 그것을 막으려 한다. 사탄이 신자에게 “이렇게 많은 죄를 가지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어!”라고 속삭일 때 신자는 “그럴지라도 나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원해.”라고 대답해야 한다. --- p.111
하나님이 명백히 금하시는 일을 행하면서도 하나님께서 마음에 ‘평안’을 주셨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간음을 범할 때 하나님이 마음의 평안을 주셨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런 말은 틀림없이 성령을 슬프시게 만든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값없이 죄 사함을 주신다. 마음껏 죄를 지을 수 있는 허가증을 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회개치 않는 자들에게 평안을 주시지 않는다. 그 평안은 잘못된 평안이요 거짓 평안이다. --- p.133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게 겨우 믿음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모든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핵심적인 주장은 우리가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게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롭다 함을 얻게 하는 믿음이 신자의 삶에 존재하는 순간부터 변화가 시작되며, 그 변화는 순종하는 삶으로 입증될 것이다. 선행은 참믿음에서 필연적으로 흘러나온다. 그 행위가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다. 그러나 선행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참믿음을 갖고 있지 않고, 여전히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 p.155
성화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참된 표식들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완전에 도달하기에 얼마나 부족한가를 갈수록 절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주의는 사실 변장한 반완전주의다. 즉 자신이 완전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완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 p.158
성령은 말씀으로 일하신다. 말씀을 거스르거나 말씀 없이 일하시지 않는다. 말씀과 성령은 동행한다. 교리와 삶도 동행한다. 의지와 정신도 동행한다. 그것을 구분하는 것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화를 좌절시키고 성령을 슬프시게 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총체적이고 헌신적인 삶을 살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 p.227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를 멸하시려는 게 아니라 고치시려는 데 목적이 있다. 징계는 한동안 고통스럽다. 그러나 아버지가 징계하시는 목적은 연단이다. 연단은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열매, 즉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는 노력해서 얻을 만한 가치가 있다. 투쟁해서 얻을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가 견디는 징계는 그 뒤에 기다리고 있는 열매와 감히 견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