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전리 각석의 암각화 중에 가장 재미있는 그림은 역시 인면수신상이 아닐까 싶다. 이 그림은 잘 들여다보면 탈을 쓴 것처럼 얼굴을 표현해 놓았고, 사슴같은 몸뚱이에 다리는 넷, 여기에다 짧은 꼬리까지 달아놓았다. 마치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의 사티로스(염소처럼 생긴 괴물)나 반인반마의 켄타우르스를 연상케하는 그림이다. 이를 사냥꾼이나 사람의 영혼을 지닌 동물, 더 많은 동물을 잡게 해 달라는 주술적 그림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어떤 해석도 걸맞지는 않다. 다만 대단히 실험적이고 인상적인 그림이 그 당시에도 있었다는 점에서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p.301
가천리 암수바위의 신령함은 알 길이 없지만, 마을에서 처음 만난 유복심 씨에 따르면, 한번은 마을에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옛날에 여 말께나 하는 김씨가 살았는데, 저 미륵을 미신이라꼬 불을 쳐질라논께, 그래 해를 입었능기라. 여기서는 저 가천미륵이 영검(영험)이 있어가꼬 저걸 모시능기라. 한번은 마을에 다리 저는 사람이 있는데, 그 집이서 논을 부치면서 똥오줌을 거기 부렀다케요. 그래 그 집이 부정을 타서 아덜이 병신이 됐어요. 여기 암수 미륵이 보면 저 앞에 보이는 소치섬의 암수 미륵을 마주 보고 있능기라. 거기도 여기처럼 암수가 있어가꼬, 그래 영검이 있능가봐."
--- pp.285~286
"아직도 초분이 있긴 있을 것이요. 멫 년 전에 고모님을 이장허는디, 그 아래께 초분이 멫 개 있습디다요. 말도 마시요, 옛날엔 바람 불면 거시기가 날라가 불고 해골 돌아대니고 그랬지라. 고모님도 초분이었는디, 꿈에 고모님이 나타나 추와 죽겄다, 이불좀 주라, 추와 못 잔께로 나 느그집 왔다 그라믄서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디요, 내 어머니한테 그랬소. 고모 아직도 초분에 있는 거 아니요. 산소 욍기시오. 그래가지고 십멫 년 만에 이장을 해 부렀소."
--- p.215
옛빛 그득한 기와집에 대숲 바람 어리는 창호문 너머로 댕기머리 늘어뜨린 아이들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낭창낭창 천자문을 읽고 있다. 옛날 이야기 속에나 나올 법한 서당 풍경이다. 그러나 지금도 분명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남원시에서도 변두리나 다름없는 도통골에서 만날 수 있는, 4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남원 서당의 변함없는 풍경인 것이다. 도심 한편에 조선시대에나 있었을 법한 풍경이 존재하다니! 분명 우리들 눈에는 흥미있고, 이채로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 p.190
11월. 두메산골의 겨울은 빠르게 찾아온다. 강원도에서도 삼척, 삼척에서도 도계의 겨울은 쓸쓸한 폐광과 빈집이 많아서 더더욱 을씨년스럽다. 그 을씨년스러움을 이따금 영동선 기차가 덜커덩덜커덩 실어나르는 도계읍 심포리. 행정구역이 삼척이기는 해도 태백시 통리에서 더 가까운 마을. 정선에서 싸릿재를 넘고 태백을 거쳐 심포리를 지나는 사람이면 누구나 폐광 지역의 그 을씨년스러움을 만나게 될 것이지만, 그것이 심포리의 다는 아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심포리는 통리 협곡에 둘러쌓인 이른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협곡마을이다.
--- p.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