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열며. 묘목이 아니었던 거목은 없습니다?? p. 4-11 중에서
묘목이 아니었던 거목은 없습니다
[전략] 열린교회를 개척하고 10년 정도 흘렀을 때의 일입니다. 교인 수는 늘어나고 목회적 필요에 의해 교회의 기능들도 복잡해지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동역자들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선교적이고 목회적 상황은 유능한 교역자들과 헌신적인 평신도 지도자들을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평신도 지도자들과 교역자들 모두 헌신된 사람들이었으나, 제가 보기에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신의 일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감당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부교역자들의 경우, 인품이 진실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사역의 기술에서는 현저히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자연스럽게 목회 사역과 교회 운영에서 담임목사인 저의 사역 부담이 가중되었고, 기대에 못 미치는 부교역자들을 향해 꾸지람이 잦아지는 만큼 제 마음의 불평도 늘어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불현듯 제 마음에 생각되기를, 마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얘야, 너도 한때는 그렇게 목회 사역에 미숙한 사람이었단다. 네가 그들을 형제나 자식처럼 여기며, 목회 사역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 따뜻하게 가르쳐 줄 수는 없겠니? 내가 너에게 그리했던 것처럼, 너도 그들을 향해 좀더 오래 참고 기다려 줄 수는 없겠니?”
순간 제 마음이 눈 녹듯이 녹으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동역자들을 향한 원망과 불만이 사라지고, 안팎으로 많은 어려움 속에서 힘겹게 교회를 섬기는 그들의 아픔과 고통들이 가슴 저미도록 다가왔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그들이 동역자이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피붙이라는 사실을 잊고 지냈습니다. 수일 동안을, 동역자들을 교회에 고용된 일꾼처럼 생각했던 일과 사랑으로 그들의 허물을 덮고 오래 기다려 주지 못한 것을 반성하며 보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처음으로 부교역자와 그 아내들에게 목회자로서의 삶과 사역의 기술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역 분야별로 그리고 기혼과 독신 여부를 기준으로 동역자들을 몇 개 그룹으로 나눠 모이게 한 후, 책망이나 질책의 감정 없이 아비가 사랑하는 자식을 훈계하듯 바른 목회를 위한 사역의 실천이 무엇인지, 학문을 어떻게 탐구해야 하는지, 경건의 생활과 신앙의 인격을 어떻게 함양해야 하는지, 목회의 지도력을 기르는 일과 위기 상황에서 결단력 있게 대응하는 방법 등에 대해 가르쳐 주었습니다. [중략]
이 작은 책은 그때 제가 부교역자들을 향해 마음을 열고 가르쳐 주었던 내용들입니다. [후략]
§ ??Advice 4. 여성교구 사역 편?? p. 226-229 중에서
목회, 그 영원한 미완성
우리의 목회 사역의 앞길에 평탄하고 행복한 길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속의 정신을 따라 교인들에게 끌려가는 목회에는 고생이 기다리고 있고, 거룩한 목표를 따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는 목회에는 고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의 목회 사역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입니다. 나와 틀린 점이 많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용서받은 죄인 중 한 사람으로서 용서받지 못한 죄인들을 회심으로 인도하고 용서받은 죄인들을 더욱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하는 일이 목회입니다. 한 사람이 단지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알리는 존재의 울림을 지닌 온전한 성도가 되어 가도록, 그의 전인격적 삶을 돌아보는 일이 바로 목회입니다. 사회 개혁가는 사회를 고치고, 의사는 인간의 육체를 고치지만, 목회자는 사람의 영혼과 삶은 물론 그들의 변화된 존재와 생활로써 사회까지 바꾸도록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목회자가 특별한 사람이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탁월한 지식과 사상, 뜨거운 사랑과 선한 인격, 열렬한 기도와 불타는 헌신, 능력 있는 설교, 뛰어난 목회 기술 등은 모두 훌륭한 목회 사역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요소입니다. 그러나 그중 어느 하나도 훌륭한 목회를 위해 그것 하나만으로 충분한 것은 없습니다.
저는 교회를 개척하고 20여 년이 넘도록 지내 오며, 단 하루도 저 스스로를 목회 사역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게 설교는 언제나 이국의 언어이고, 목회는 날마다 원치 않는 가슴앓이였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많이 모일 때나 적게 모일 때나 우리 주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돌덩이처럼 변화되지 않는 영혼들을 뒤로 하고 예배당 문을 걸어 나올 때면, 초라한 저의 목회 사역에 가슴이 아파 눈물이 흐릅니다. ‘아아, 이 양떼들이 더 능력 있고 순전한 목회자, 더 뛰어난 말씀의 깊이를 가진 목회자를 만났더라면 이들의 인생이 얼마나 놀랍게 변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저는 스스로 실패한 목회자인 것 같은 부끄러움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때가 제가 가장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 주님께 눈물로 매달릴 때입니다.
깊은 밤 불 꺼진 예배당 한 구석에서, 이른 아침 서재의 한 모퉁이에서, 목회 사역에 적합하지 않은 저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좋으신 우리 주님께 간구하노라면, 주님은 마치 기다리고 계셨던 것처럼 저의 아픔보다 큰 위로를 주십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下).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