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선은 숙명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같은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프랑스 파리4대학에서 플로베르를 연구해 <플로베르와 공간>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살람보의 현대성>을 비롯해 플로베르의 작품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저서로 ≪프랑스 문화≫(공저)가 있고, 역서로 ≪부바르와 페퀴셰≫, ≪살람보≫, ≪성 앙투안의 유혹≫이 있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다.
혐오스럽고 자존심 상했지만 최고 집정관은 아이를 그 속에 넣고 노예 상인처럼 때 수건과 붉은 흙으로 문질러 가며 씻기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벽장에서 자줏빛 스카프 두 장을 꺼내 하나는 아이의 가슴에, 하나는 등에 두른 다음, 쇄골에서 두 개의 다이아몬드 버클로 이었다. 아이 머리에 향수를 들이붓고 목에 호박금 목걸이를 걸고 뒤축에 진주가 달린 샌들, 딸의 샌들을 신겼다! 그러면서도 그는 치욕스럽고 화가 나 발을 굴렀다. 열심히 돕고 있는 살람보도 핏기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이렇게 휘황찬란한 데 눈이 부신지 웃음을 지었고, 대담해지기까지 해 손뼉을 치고 펄쩍 뛰어오르기도 했는데 그때 하밀카르가 데리고 나갔다. 놓칠까 봐 걱정인지 그가 아이의 팔을 꽉 잡은 탓에 아이는 고통스러워 그의 곁에서 뛰어가면서도 조금 울먹거렸다. 지하 감옥 위, 종려나무 아래에서 처량하고도 애원하는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가 중얼거렸다. “주인님! 아! 주인님!” 하밀카르가 뒤 돌아보니 옆에 추레한 남자, 그의 집에서 닥치는 대로 일하며 먹고사는 한 가난뱅이가 보였다. “왜 그러나?” 최고 집정관이 말했다. 노예가 무섭도록 몸을 떨며 더듬거렸다. “제가 아이 아빕니다!” 하밀카르는 여전히 걸어가고, 남자는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굽히고 머리를 앞으로 내민 채 그를 따라갔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으로 인해 얼굴이 일그러져 있는 남자는 울음을 참느라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는 주인에게 물어보고 싶고 소리치고 싶었다. “제발!” 결국 남자가 감히 손가락 하나를 그의 팔꿈치에 살짝 갖다 댔다. “주인님 아이를…?” 말을 마칠 기운도 없는 남자의 이런 고통을 보고 하밀카르는 어안이 벙벙해져 멈추었다. 자신과 이 남자 사이에 공통점이 있을 수 있다고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을 만큼 그들 두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골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에게 일종의 모욕처럼, 자신의 특권에 대한 침해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가 더욱 차갑고 사형 집행인의 도끼보다 더욱 부담스러운 눈길로 대답을 하니 노예는 정신을 잃으며 그의 발밑, 먼지 속에 쓰러지고 말았다. 하밀카르가 그 위로 지나갔다. --- p.391∼393
그들은 이제 흉하도록 여위어 피부에 푸르스름한 버짐이 생겨나 있었다. 9일째 되는 날 저녁, 이베리아인 세 명이 죽었다. 질겁한 동료들이 그 자리를 떠났다. 누군가 죽은 이들의 옷을 벗겨 놓아 이 벌거벗은 허연 시체들이 햇빛 아래, 모래밭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자 가라만티아인들이 슬금슬금 그 근처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고립된 삶에 익숙한 이들은 어떤 신도 숭배하지 않았다. 마침내 무리 중에서 가장 연장자가 신호를 하자 시체로 몸을 숙이더니 칼을 들고 가죽끈을 잡아챘다. 이내 웅크리고 앉아 먹기 시작했다. 멀리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공포의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영혼 깊은 곳에서 그들의 용기를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한밤중에 그들 중 몇몇이 다가가 욕심을 숨기고 단지 맛만 보겠다며 한 입 요구하기도 했다. 좀 더 대담한 사람들이 합세하면서 수가 늘어나 곧 무리를 이루었다. 그래도 거의 전부는 이 차가운 살덩어리가 입가에 닿자마자 손을 도로 내렸지만 반대로 맛있게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걸 본보기로 삼아 그들은 서로 격려하게 되었다. 처음에 거절했던 사람도 가라만티아인들을 보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칼끝으로 숯불에서 조각을 익혔다. 가루를 뿌리고 가장 좋은 걸 차지하겠다고 서로 다투기도 했다. 세 구의 시체에서 더 이상 남은 게 없게 되자 다른 시체를 찾기 위해 평원 전체로 눈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