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의는 지위에 상관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30세가 될 때까지 지방에서 조용히 묻혀 지낸 경우를 예외로 할지라도 벼슬을 할 때 고향 선배가 하급자였으나 예의를 잃지 않았고 항상 주변 사람에게 따뜻한 대접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런 점을 종합해보면, 사마의는 조용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싶어 한 인물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은 큰소리치며 선두에 서서 무엇인가를 이루는 지도자형을 기억한다. 하지만 조용히 자기의 할 일을 하며 주위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자세는 높이 평가되기도 어렵고 곧 잊혀질 수 있다. 오히려 이런 자세가 긴 안목으로 볼 때는 교양과 덕목을 가진 인간의 진정한 처신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도리를 지킨 자는 외롭지 않으려니와 언젠가 진정성의 보답을 받고 빛을 발한다. ---「야망을 한편으로 미뤄두고 본질을 생각하다」중에서
사마의에게는 계책만 있었고, 제갈량에게는 계책과 스스로 집행할 권한이 있었다. 모든 방면에서 그랬다. 제갈량은 설령 국가 재정이 흔들릴 정도의 엄청난 낭비가 된다고 할지라도 정책으로 결정하여 집행할 권력이 있었고, 사마의는 군사 배치는커녕 소소한 낭비조차 불가능한 입장이었다. 개인과 개인의 기량을 비교할 때는 양측을 공평한 입장에 두고 비교해야 한다. 물론 제갈량이 뛰어난지 사마의가 뛰어난지 개인적인 면으로 경쟁을 붙일 필요도 없고 우위를 따질 필요도 없다. 제갈량은 제갈량 나름의 장기가 있었고 사마의는 사마의 나름의 장점이 있다. 또 한 인간이기에 이들 모두 단점이 있다. 하지만 제갈량을 띄우기 위해 불평등한 방식으로 우리가 본받을 만한 새로운 인물형을 매도하지는 말아야 한다. ---「사마의와 제갈량의 입장 차이」중에서
전쟁이란 진정으로 이기고 지는 것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기에 어떤 모든 경우보다 훨씬 냉정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아웃복싱처럼 게릴라전을 할 것인지 인파이터처럼 과감히 전군을 동원하여 승부를 걸 것인지, 이길 수 있다면 가장 쉬운 방법으로 이기는 방도를 택하는 것이 순리다. 사마의처럼 상대가 지칠 때까지 수비 작전으로 임하다가 군량이 떨어져 철수하면 뒤를 공격하는 전투 방식은 마치 아웃복서의 경기를 보는 사람처럼 다소 맥이 풀리고 흥미가 반감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목숨을 건 정도가 아니라 국가가 망하느냐 지켜지느냐 하는 전쟁이다. 싸움 자체나 어떤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제갈량과 정면 승부를 펼치다」중에서
권력이란 최고 통치자의 지근거리에 비례해서 나온다. 그러므로 권세를 필요로 하는 자는 그 곁으로 가서 손에 쥐려고 한다. 그렇다고 너무 가깝게 접근하다 보면 언제 역린(逆鱗)이라는 칼날에 다치게 될지 모른다. 사마의는 요동 정벌을 마치고 귀국할 때까지, 어떤 기록을 보아도, 최고 통치자의 신임을 원했을 뿐 권력자의 지근거리에 접근하려 하지 않았다. 요동에서 공손연의 반란을 진압하고 귀국길에 오른 사마의는 놀랄 정도로 느릿느릿 움직였다. 전쟁터로 갈 때는 서둘렀지만 승전한 이후 최고 권력자가 있는 수도로 올라갈 때는 철저히 거북이걸음을 했다. 낙양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그랬다. 병사들이 이틀을 행군하면 반드시 하루를 쉬게 했다. 조정이 있는 낙양으로 돌아가 암투와 모략 속에서 지새우는 것 자체가 싫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