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과학의 발전과 변화의 특징은 첫째, 실험실 과학에서 거대 과학(big science)으로의 변화. 둘째, 위용있는 물리학에서 실용성 강한 생명과학으로 무게 중심 이동. 셋째, 절대적 객관적 진리에서 상대적으로 확실한 지식 추구로의 변화. 넷째, 독자적인 과학자 사회에서 과학에 대한 공중의 개입으로의 변화이다. --- p.19
21세기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과학기술자들은 분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과학과 기술의 구분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예를 들어 가장 기초적인 나노 과학적 연구 성과는 그 자체로 엄청난 기술적 가치를 지니며, 로봇공학의 핵심기술들은 신경 과학을 바탕으로 한 인공지능 이론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가장 기초적인 과학이 기술의 최전선과 맞닿아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 p.29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기술을 ‘인간이 자연세계와 관계를 맺는 특정한 방식’ 혹은 ‘세상을 드러내는 양식’으로 정의했다. 기술의 본질은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보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인데, 하이데거는 기술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계산 가능성, 유용성, 효율성의 잣대로 평가해서 결국은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자원(리소스)으로 만드는 ‘의지’라고 간주한다. 존재들을 인간에게 유용한 자산으로 변형시키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데, 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과학이다. 하이데거의 입장에서 보면 기술이 과학을 낳았으며, 따라서 기술은 과학보다 선행한다. --- p.35
기술은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인간은 의지를 가진 살아 있는 주체이고 기술은 자체 생명력이 없는 기계 덩어리다. 인간은 자신의 뜻에 따라서 기술을 바꾸고 목적을 위해 기술을 사용한다. 그렇지만 하이데거가 간파했듯이 어떤 기술은 인간을 옥죄고 지배한다. 미국의 기술철학자 랭던 위너는 이렇게 자체 생명력을 가진 기술을 ‘자율적 기술’이라고 명명했다. --- p.42
과학기술과 사회는 어느 한편이 다른 한편을 전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사회를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거꾸로 사회 상황에 따라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도 있고 정체될 수도 있다. 과학기술과 사회는 서로 긴밀한 상호 보완의 관계에 있다. 중요한 점은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어떤 과학기술이 필요하며, 그것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어떤 사회적 조건이 필요한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 p.50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Urlich Beck)가 지적한 대로 기술세계의 불투명성이 ‘위험사회’로 이어진 것은 기술의 본질이 사악한 것이어서가 아니라 반성적 사유가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생태학적 명령은 더 이상 보전과 보호의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생태학적 위기 시대의 인간조건을 반성하고, 그 진정한 한계를 정하는 일이다. --- p.57
과학기술의 맹목성이란 인간다운 사회와 삶에 유익한지 아닌지를 묻지 않고 개발가능한 기술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실현시켜야 한다는 맹목성을 지칭한다. 즉 과학기술 발전의 기본적인 맥락이 ‘이것이 인간다운 삶에 유익하고 필요한가’를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이것이 기술적으로 실현가능한가’만을 따져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과학기술 발전의 맥락과 논리가 바로 ‘비판적 이성’을 도외시한 ‘정합적 이성’중심의 논리이다. --- p.65
우리는 과학기술자들의 헌신과 재능을 바탕으로 성취한 업적을 기뻐하면서도 스스로 지적, 도덕적 통제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기 때문에 과학기술의 통제 기능의 필요성이 강력히 제기된다. 즉, 과학기술의 위험 통제는 지식기반사회의 필수기능이다. --- p.82
과학자들의 선한 동기에서 출발했다고 하더라도 과학기술이 응용되었을 때 나타나는 결과를 충분히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이것이 이른바 과학기술의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한계이다. --- p.96
국의 원자탄 개발 계획을 살펴보면 거대 과학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이 계획에는 많은 일류 과학자들이 참여했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문제를 열심히 풀이하는 일을 했을 뿐 자기가 하는 일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오늘날 거대 과학에서도 과학자들은 자기가 하는 일의 궁극적 목적을 모르는 채 또는 알더라도 무관심한 채 주로 분업에 의해 자기에게 주어진 문제를 풀이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것이 거대 과학의 중요한 한 가지 성격이다. --- p.102
민한 사람도 있었다. 1945년 7월 최초의 원자탄 폭발 실험이 성공했을 때 오펜하이머는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오 하느님. 우리가 지옥을 만들었습니다.” --- p.103
일단 관성이 붙은 거대과학 연구는 중단하기도 쉽지 않다. 엄청난 재정·무역 적자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과학분야마저 세계의 주도권을 일본에 넘겨줄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에, 과거 성장하던 시절의 유물인 거대과학에 여전히 엄청난 연구비를 투자하고 있다. 탈냉전시대에 자신들이 만들어낸 거대과학분야에서 겪고 있는 진퇴양난의 딜레마인 셈이다. --- p.111
과학과 기술 발전에 대한 회의가 이제 일상생활 속으로 녹아들어가서 과학과 기술은 마침내 숨겨진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인간이 과학과 기술의 힘을 빌려 신이 될 수 있다는 꿈이 점차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스스로에 대한 공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인간 생활에 있어서 지식이 핵심적인 관심사일 수 있지만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넘는 순간에 생기는 윤리적인 또는 종교적인 차원의 자기반성은 따르기 마련이다. 이러한 갈등은 이미 괴테 「파우스트」의 주제였다. --- p.119
우주선에서 사람이 죽으면 캡슐관에 넣어 장사지내는데 이 캡슐관이 우주 속의 아득한 블랙홀로 빠져 들어가는 적막한 공포보다는, 대지에서 태어나 다시 대지로 돌아가는 인간숙명을 체념 속에서 인지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고인을 추모하는 장례식이 담고 있는 따뜻한 이별이 과학과 기술의 시대에도 사라질 수 없는 인간성 회복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 p.121
역사의 연속성이란 측면에서 볼 때 현재의 과학기술 문명을 전면적으로 부정한 사회를 구상하는 것은 현실적인 적합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반과학기술주의가 아니라 과학기술의 부작용을 최소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모색하는 것이다.
--- p.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