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천천히 올라가는 리호. 이제 남은건 마지막 계단뿐, 그때였다. 갑자기 휘청 하더니 온몸의 균형을 잃어버린 리호 발은 마지막 계단에 둔 채로 갸우뚱 머리가 뒤로 젖혀진다. 그대로 완전히 뒤집어 졌다. 몇 사람이 동시에 비명을 내지른다. 그러나 한 템포 늦었다. 여기저기 쿵쿵 부딪치며 바닥까지 굴러떨어지는 리호.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를 어머니가 껴안는다. 그때 우리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애야 항상 말했잖니. 계단을 오를때 꼭 주의하라고 말야. 이번 일은 리호가 잘못한 거야'
--- p.154
'저는 '장애인으로서의' 열심히는 필요 없어도, '인간으로서의' 열심히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거꾸로 말하면 '장애'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변명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81 p.
인터뷰 후 마츠다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정말 훌륭한 인터뷰였어. 장애가 없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파고들기 어려웠을 거야. 아무래도 도저히 물어보기 어려운 점이 있으니까 말야. 잠깐 여자분을 눈물짓게 했지만, 그 정도 묻지 않으면 그의 내면을 드러낼 수가 없지'
물론 인터뷰를 하면서 내 가슴도 매우 쓰라렸다. 내가 어렸을 적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때때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 p. 233-234
왠지 서글퍼졌다. 그러나 내 문제에 대해 이렇게까지 열심히 생각해주는 마츠바라의 모습에는 너무나 기뻤다. 사쿠라다가 지적한 대로 미디어는 분명히 나를 '소비'시키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성장'을 안겨주는 세계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성장을 촉진시켜주는 커다란 요소 가운데 하나인 '동료'라는 면이 있다.
--- p.147
앞으로 무엇을 할지 아직 나 자신조차 모른다. 흥미를 느끼는 일을 하고 싶기는 하지만 그것이 과연 무엇인가. 여러가지로 실험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말할 수 있다. 오체불만족이나 뉴스의 숲에서 이룬 나의 역할을 다른 세계에서 보내는 통신을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장애인과 정상안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데 조금이나마 공헌했다고 확신한다.
--- p.144
세상에. 무슨 선생이 저 모양이람. 히쿠치 카메라맨에게서 OK 사인이 떨어지고, 이윽고 촬영이 시작된다.
'다카바노바바 역에서 와세다 대학으로 이어지는, 이곳 와세다 거리. 여느 때와 달리 정장 차림의 학생들이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은 4월 1일. 와세다 대학의 입학식이 있는 날입니다.'
'우와, 굉장한데!! 그거 즉석에서 생각해 낸 건가?'
'당연하죠! 난생 처음으로 여기서 리포트 할 걸 하라는 말을 들었으니까요.'
아, 걱정된다! 그런데 이런 엄벙덤벙한 취재진으로 과연 괜찮을지 모르겠다.
--- p.85
물론 인터뷰를 하면서 내 가슴은 매우 쓰라렸다. 내가 어렸을 적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때때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나 나는 만족했다. 최후까지 정에 치우치지 않고, 인터뷰어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가 있었다. 이지메로 괴로워하는 아이들과의 좌담회에서 마츠바라 캐스터의 냉혹한 질문에 그저 허둥지둥만 하고 있던 나. 그 후 8개월 동안에 조금이나마 성장했는지도 모른다.
--- p. 234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지금부터 16년이나 전에 휠체어를 탄 아이가 일반 학교에 들어가기란 극히 힘든 일이었고, 운동회 같은 학교 행사에 참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길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준 선생님들, 학교 친구들, 그리고 부모님, 그땐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지금 리호를 통해서 내가 정말 훌륭한 환경 속에서 교육 박았음을 절감했다. 지금의 내가 있는 것도 모두 그러한 환경 속에서 자란 덕분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초등학교 시절의 나를 감싸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 넘쳐 흘렀다. 그 넘쳐 흐르는 생각이 끊이지 않는 눈물이 되어, 내 뺨을 적셨던 것이다.
--- p.159
그들이 흘린 눈물은 아마 대개가 '감동' 이나 '동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저런 몸으로 잘도 해내는구나, 하고. 그러나 지금 내 눈물은 다르다. 그건 말하자면 '감사' 의 눈물이다.
--- p.159
"하지만, 오토, 솔직히 말해 우리들은 어떤 것이 '배리어프리 리포트'인지 잘 모르겠고, 얼마 가지도 못해 다룰 주제가 바닥나 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거든."
"마츠바라 캐스터님, 그 문제라면 걱정 없습니다. 모두 각각의 일상생활을 떠올려 보세요. 보통 아침에 집에서 나와 회사나 학교로 갑니다. 그때 탄 전철이나 버스에 장애인이 있다면 어떤 곤란을 겪을까? 점심시간이나 업무가 끝난 후 어디론가 식사하러 갑니다. 그 식당은 휠체어로도 이용이 가능한가? 휴가를 맞아 여행을 갑니다. 장애가 있어도 자유로이 여행을 할 수 있는가? 생활이 이루어지는 모든 장면마다 그 수만큼의 '배리어프리'에 관한 문제가 반드시 있을 겁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 생활이 이루어지는 모든 장면마다 그 수만큼 할 말이 있다, 이 말인가? 그거 맞는 말인데."
마츠바라가 다시 한 번 입 속에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는 이미 내 의견을 수용한 것이다. 틀림없이 다음 번 계획안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다카하시도 이미 이해해 주었다. 여러 네트워크 담당자들이 필사적인 노력 끝에 제시한 주제들을 모두 폐기해 버린 격이 디어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만약 그가 권력 과시형 프로듀서였다면 자신의 뜻대로만 일을 진행시키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내 의견을 선뜻 받아들여 즉석에서 방향 전환을 수락했다. 정말 멋진 보스와 만난 것이다. 난 정말 운이 좋다!
--- pp.92-93
"하지만, 오토, 솔직히 말해 우리들은 어떤 것이 '배리어프리 리포트'인지 잘 모르겠고, 얼마 가지도 못해 다룰 주제가 바닥나 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거든."
"마츠바라 캐스터님, 그 문제라면 걱정 없습니다. 모두 각각의 일상생활을 떠올려 보세요. 보통 아침에 집에서 나와 회사나 학교로 갑니다. 그때 탄 전철이나 버스에 장애인이 있다면 어떤 곤란을 겪을까? 점심시간이나 업무가 끝난 후 어디론가 식사하러 갑니다. 그 식당은 휠체어로도 이용이 가능한가? 휴가를 맞아 여행을 갑니다. 장애가 있어도 자유로이 여행을 할 수 있는가? 생활이 이루어지는 모든 장면마다 그 수만큼의 '배리어프리'에 관한 문제가 반드시 있을 겁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 생활이 이루어지는 모든 장면마다 그 수만큼 할 말이 있다, 이 말인가? 그거 맞는 말인데."
마츠바라가 다시 한 번 입 속에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는 이미 내 의견을 수용한 것이다. 틀림없이 다음 번 계획안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다카하시도 이미 이해해 주었다. 여러 네트워크 담당자들이 필사적인 노력 끝에 제시한 주제들을 모두 폐기해 버린 격이 디어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만약 그가 권력 과시형 프로듀서였다면 자신의 뜻대로만 일을 진행시키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내 의견을 선뜻 받아들여 즉석에서 방향 전환을 수락했다. 정말 멋진 보스와 만난 것이다. 난 정말 운이 좋다!
--- pp.9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