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하늘 높은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높은 곳에서 나를 이 돌 비렁땅으로 무자비하게 밀어 떨어뜨려 놓고서 그저 나를 기다리고만 있었다. 내 이 고통과 울음은 아버지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아픔 속에 이제 혼자 버려졌다는 나의 끔찍한 두려움 또한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세상에 내가 넘어야 할 언덕이 바로 내 앞에 있다는 것만이 중요하였다. --- p.129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당신의 빈 왼손을 높이 들어 올리더니 부엌으로 통하는 문의 맨 위 나무 문틀에 손등을 그대로 붙여 대었다. 아버지의 하얀 손바닥이 앞으로 보였다. 아버지는 한순간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순간에 불과하였다. 아버지는 오른손의 그 날카로운 칼을 높이 들고 그대로 아버지의 왼 손바닥을 세차게 찍어 내렸다. --- p.155
교도관이란 자신의 주위에서 일어나고, 보이고, 또 들리는 그 어떤 것이라도 그것이 거기에서, 왜, 누구에게, 어떤 뜻으로 행해지는지 바로 알 수 있어야 한다. 자칫 부스럭거리는 작은 소리 하나가 얼마나 큰 문제를 가져올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도관은 눈을 뜨거나 감는 그 어떤 순간에도 절대로 자기 자신을 조금도 놓아서는 아니 된다. 그것이 교도관이다. --- p.163
아버지는 아버지의 높고 빛나는 천하를 찾았다. 아버지는 아버지가 맨 처음 찾았던 잿빛 교도소가 당신의 천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당연하였다. 아내와 애가 넷이나 딸린 남자가 어떻게 현실 세계를 버리고 전혜린의 그 자유를 찾아 떠나갈 수 있었겠는가! 아니, 겨우 중졸에 불과한 교도관이 남의 집 머슴을 조부로, 또 매일의 도락에 겨운 한량을 부친으로 둔 현실에서 어찌 감히 《대망》의 천하를 넘볼 수 있었겠는가! --- p.189
아버지는 당신 속에 잘 감추어 두었던 날카로운 비수를 들어 나의 이 작은 가슴속을 그대로 찔러 버렸다. 나는 그때부터 아버지의 잃어버린, 아니 어쩌면 또 잃어버리게 될지 모를 그 욕망을 좇아 당신의 길을 가야 할 어린 ‘아버지’가 되어야 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내 평생이 되어야 하였다. 그것은 그날부터 내 삶을 온통 옭아매 버렸다. --- p.201
아버지의 눈이 닿지 않는 세상, 그것은 집 밖의 세상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집에 안 들어가고 밖에서 시간을 보내려 하였다. 그것은 심리적인 가출이었다. --- p.204
대학은 내가 꿈꾸어 온 세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에서 시작된 내 비뚤어진 자유의 결과였다. 그러니까 그것은 아버지에게 등을 떠밀려 들어온 곳과 다름없었다. 아버지가 열여덟의 나이에 배움에 목말라 공군에 들어가 보냈던 시간 동안 나는 그저 나만의 자유를 끝없이 찾아다녔다. 나는 굶주리지 않았다. 나는 배움에 목마르지 않았다. 나는 대학을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다.
우리 문학에서 아버지는 영원한 화두이다. 엄마라는 존재가 모든 것을 품고 나아가는 강이라면 아버지는 언제나 내 존재의 변방에 서성이는 그림자요, 범접하기 어려운 산이다. 그런 아버지는 ‘나’에게 어쩌면 두려움이며 동시에 그리움인지도 모른다. 배중섭의 《아버지와 나》는 그런 아버지라는 존재가 지닌 원초적인 외로움과 고뇌를 보기 드물게 꼼꼼하게 그려내고 있다. 문학이 자기 시대의 기록이자 고백이라면 작가 배중섭은 아버지의 일생을 관통하는 잿빛의 모습을 흥미롭고 사실적인 문체로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에 있어 ‘아버지란 무엇인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