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영어 단어의 의미는 하나다.
문덕 선생님 사전 좀 펴 보세요. 어떻게 의미가 하나예요?
cell① 세포② 감방③ 전지
board① 판자② 게시판 ③ 위원회 ④ 식사
cover① 덮다② 보호하다 ③ 보도하다 ④ 보상하다 ⑤ 여행하다
혹시 제가 실언을 한 것은 아닐까요? 사전에 보면 이렇게 단어들의 뜻이 많이 실려 있는데, 어찌 의미가 하나라는 말입니까. 그런데 말이죠. 저는 정말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영어권 국가 사람들은 이 많은 단어의 의미들을 대체 어떻게 기억하는 걸까요? 영어를 모국어(mother tongue)로 사용하기 때문에 습관화(habitualization)된 것이라고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여러분은 이 가정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그 많은 단어들과 의미들을 반복 사용을 통해서 익힐 수 있단 말입니까? 영어권 국가 사람들은 하루 종일 말만 하고 사나요? 또, 어떻게 특정 단어가 가진 수많은 의미들을 하나하나 모두 빼놓지 않고 반복 학습할 수 있단 말입니까. 습관화가 언어 습득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절대로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어머, 선생님. 저 위의 단어들 의미도 몇 개 안 되는데 뭘 그렇게 힘들어 하세요. 그냥 반복해서 외우면 되지….’ 그러세요? 자, 그럼 이 단어는 어떠세요?
discharge ① 짐을 부리다 ② 발사하다 ③ 배출하다 ④ 해고하다
⑤ 퇴원시키다 ⑥ 해방하다 ⑦ 이행하다
그냥 반복해서 익히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일까요? 이 정도도 충분히 감당이 되신다고 자신만만해 하신다면, 엄청난 의미 수를 자랑하는 get, hold, take와 같은 기본 동사들은 어떠세요? 보통 20가지 이사의 의미가 실려 있는데, 무작정 반복해서 외운다고 암기가 되겠습니까.
여러분, 지금까지 속아 오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영어 사전이라는 녀석 이야기입니다. 사전에 실려 있는 영어 단어의 의미 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사전 편찬자(lexicographer)들이 심하게 말하면 조작해 낸 것들입니다. 기독교에서 성경의 십계명이나 우리나라 헌법의 조항처럼 불문율로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 증거는 의외로 아주 간단한데요. 지금 두 종류의 영어 사전을 준비해서 동일한 단어 하나를 찾아보세요. 동일한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사전마다 뜻의 개수가 조금씩 다르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술상의 관점에 따라 의미의 수가 좌지우지되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원한다면, 위에서 보여드린 discharge의 7가지 의미를, 14개로 만들어 보여드리겠습니다. 방법은 간단한데, 의미를 조금 더 세분화하여 표면적 의미를 상세히 나누어 주면 되는 거죠. 예를 들면, 위에서 ‘③ 배출하다’의 의미를 아래와 같이 세분화하면 의미를 더 추가할 수도 있습니다.
③ 배출하다 → (물 등을) 배출하다/ (오줌·똥을) 배설하다/ (고름을) 나오게 하다
자, 그렇다면 반대로 의미를 통합하여 가지 수를 줄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④ 해고하다/ ⑤ 퇴원시키다/ ⑥ 해방하다 → (사람을) 밖으로 내보내다
① 짐을 부리다 /② 발사하다 /③ 배출하다 → (사물을) 밖으로 내보내다
‘⑦ 이행하다’의 경우, 조금 다른 개념의 틀이 작용한 경우라서 따로 교재에서도 설명을 하겠지만(100페이지 참조), 간단히 말씀드리면 영어권 국가 사람들은 ‘밖으로(out)'의 이미지와 ‘이행’의 의미를 서로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discharge의 의미를 ‘밖으로 내보다’라는 하나의 의미로 간단히 정리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억되고 저장되는 기본 이미지인, 중심 의미(central meaning)인 것입니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는 자세를 조금만 갖추신다면, 영어에 대한 안목과 이해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여느 어휘 책들처럼 단순히 단어들을 열거한 뒤, 반복 학습을 유도하고 있지 않습니다. 개개의 단어들이 가진 하나의 중심 의미를 찾고, 그 중심 의미에서 파생 의미들로 나아가는 방법들을 스스로 이해하고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입니다. 이 책을 볼 때, 옆에 연습장을 놓고 써 가며 반복해서 외워야겠다는 생각은 버리시기 바랍니다. 대신 무작정 외워왔던 것들이 이렇게 하나의 커다란 의미로 묶일 수 있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고, 이에 따른 쾌감과 작은 황홀감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궁극적으로는 영어 단어에 대한 자신감은 물론 여러분의 영어 실력은 한 차원 높게 끌어올려 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 지은이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