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토: ''큰 도는 들어가는 문이 따로 있지 않고 수없이 많은 길이 있다.''고 하죠. 여기에 이미 선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인의 사고방식이 나타나 있죠.
야마다: 과연 그렇군요. 조금 안심이 되네요.
한 토: 그러나 무문이라고 하는 관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그와 같은 중국인의 사고방식은 여간해서 파악할 수가 없겠죠.
야마다: 관문을 통과한다고 했지만 실은 애초에 문이 없다고 하였는데…. 바로 거기에 불교에서 말하는 불성과 유교에서 말하는 도라든가 천, 또는 노장의 무의 라고 하는 것에는 공통성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그 점에 대한 상세한 검토는 뒤로미루기로 하겟습니다. 그런데 《논어》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더라도 거의 이 천년도 넘는 옛날부터 무수한 주석본이 첩첩이 성벽처럼 가로막혀 있어서 여간해서는 문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리라는 느낌이 듭니다만….
한 토: 《논어》의 경우 《논어》에 맞추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려면 전문가들에게 맡겨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전문가에게 맡긴다해도 어딘가 젠체하는 말은 할 수 있겠지만, 아마 선과 유교의 교섭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루지 못할 겁니다. 그 이유의 하나는 일본에는 중국의 학문을 할 수 있는 학자가….
야마다: 아하.
한 토: 그러한 학자들 중에는 불교라고 하는 것을 애초부터 어리석은 것으로 여긴다든가 스님을 우습게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교 그 자체는 어리석다거나 훌륭하다거나 해서 더하거나 뺄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불교를 공부하는 스님들의 학문이 얕다고 해서 불교를 하찮은 것으로 보는 풍토가 있습니다. 이른바 중공부라고 하면 한 단계 낮은 것이라고 보는 사고방식이 있지요.
야마다: 그것은 대체로 서양의 근세 혹은 근대 이후의 소위 계몽적·합리적인 성격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도 메이지 이후의 근대화 과정 중에 주지주의나 실증주의와 같은 과학적 입장이 대두되어 지와 행의 분열이라고 할까. 그러한 입장으로부터 《논어》든 무엇이든 철저히 객관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논어》의 그 생생함을 놓쳤다고 하는데…. 그 점은 불교도 같겠지만….
한 토: 네, 거기에 관해서는 재미나는 일화가 있죠.
---p. 22~23
한 토: ''큰 도는 들어가는 문이 따로 있지 않고 수없이 많은 길이 있다.''고 하죠. 여기에 이미 선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인의 사고방식이 나타나 있죠.
야마다: 과연 그렇군요. 조금 안심이 되네요.
한 토: 그러나 무문이라고 하는 관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그와 같은 중국인의 사고방식은 여간해서 파악할 수가 없겠죠.
야마다: 관문을 통과한다고 했지만 실은 애초에 문이 없다고 하였는데…. 바로 거기에 불교에서 말하는 불성과 유교에서 말하는 도라든가 천, 또는 노장의 무의 라고 하는 것에는 공통성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그 점에 대한 상세한 검토는 뒤로미루기로 하겟습니다. 그런데 《논어》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더라도 거의 이 천년도 넘는 옛날부터 무수한 주석본이 첩첩이 성벽처럼 가로막혀 있어서 여간해서는 문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리라는 느낌이 듭니다만….
한 토: 《논어》의 경우 《논어》에 맞추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려면 전문가들에게 맡겨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전문가에게 맡긴다해도 어딘가 젠체하는 말은 할 수 있겠지만, 아마 선과 유교의 교섭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루지 못할 겁니다. 그 이유의 하나는 일본에는 중국의 학문을 할 수 있는 학자가….
야마다: 아하.
한 토: 그러한 학자들 중에는 불교라고 하는 것을 애초부터 어리석은 것으로 여긴다든가 스님을 우습게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교 그 자체는 어리석다거나 훌륭하다거나 해서 더하거나 뺄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불교를 공부하는 스님들의 학문이 얕다고 해서 불교를 하찮은 것으로 보는 풍토가 있습니다. 이른바 중공부라고 하면 한 단계 낮은 것이라고 보는 사고방식이 있지요.
야마다: 그것은 대체로 서양의 근세 혹은 근대 이후의 소위 계몽적·합리적인 성격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도 메이지 이후의 근대화 과정 중에 주지주의나 실증주의와 같은 과학적 입장이 대두되어 지와 행의 분열이라고 할까. 그러한 입장으로부터 《논어》든 무엇이든 철저히 객관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논어》의 그 생생함을 놓쳤다고 하는데…. 그 점은 불교도 같겠지만….
한 토: 네, 거기에 관해서는 재미나는 일화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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