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날, 엄마는 카디건 차림에 자기가 가진 것 중 가장 예쁜 빛깔의 립스틱을 바르고,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 위에 스카프를 두르고 왔다. 그리고 다행히 틀니를 다시 끼우는 데도 성공했다. 이렇게 해서 간호사가 배에 주사를 세 대 놓고 노즐을 달아 액체가 방울방울 빠져나가도록 관에 연결하려고 세 번이나 시도할 때, 엄마는 입을 있는 대로 커다랗게 쩍 벌리고 고래고래 시원하게 소리를 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엄마의 배를 바라본다. 여기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어쩐지 구역질나는 싸움을 연상하게 했다. --- pp.12-13
부리나케 약국으로 달려가 임신 테스트를 한다. 내가 생각한 그대로다. 당연하다. 그리고 모든 게 바뀌었다는 것을, 내가 또 다른 일, 또 다른 모험에, 또 다른 삶에 뛰어들게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사랑해야 할 다른 누군가가 생기리라는 것을, 내가 나 자신보다 내 엄마보다 더 사랑하게 될 누군가가 생겨나리라는 것을 의미하는 그 작은 파란 십자표 앞에서 나는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기쁨의 흐느낌. 그러나 두려움과 수치심, 죄책감의 흐느낌이기도 하다. --- p.23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자였다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였다. 엄마가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교통 체증이 일어났고 남자들은 길에서 휘파람을 불어댔다. 그러면 엄마는 독특하면서도 우아하고 경쾌한 아름다움을 뽐내면서 아! 내 모자 때문인가 봐, 신발 때문인가 봐, 봄이라서 그런가 봐, 라고 말하곤 했다. --- p.30
그런데 사실 세상에 병원보다 더 불안한 장소가 있을까? 사랑하는 이들이 죽어가고, 환자들에게 나을 수 있다고 믿게 하면서도 모든 침대를 작은 무덤처럼 칸막이 속에 나란히 정렬해놓은 이곳. 이제 나는 이곳 구석구석을 눈 감고도 훤히 안다. 복도 스위치가 어디에 붙었는지, 제일 좋은 방과 시끄러운 방은 어디이고, 난방을 너무 세게 틀어놓는 방은 어디인지, 3층까지만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는 어떤 것이고, 열쇠로 작동되는 엘리베이터는 어떤 것인지, 몰래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구석진 장소는 어디에 있고, 절대 아무도 없어서 내가 볼펜이며 물병을 훔쳐 와도 전혀 상관없는 사무실이 어디인지를 꿰뚫고 있는 것이다. --- pp.59-60
나는 산 자들의 세상에서 온다. 속눈썹에 빗방울을 매단 채 엄마에게 입을 맞춘다. 엄마의 뺨이 불덩이처럼 뜨겁다. 나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건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초췌해진 얼굴이 아니라 냄새다. 전에 엄마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향기가 달라졌다. 그건 작은 비밀과도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냄새가 난다. 병실에 들어가니 엄마가 눈을 감고 있다. 끔찍하다. 처음에는 엄마가 나를 혼내려고, 나한테 벌을 주려고 일부러 눈을 감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넌 어제 안 왔어. 날 혼자 내버려뒀지. 게다가 거짓말을 했어. 나한테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잖아. 못된 것 같으니라고. 그러자 더 심한 생각이 든다. 엄마가 눈꺼풀 너머로 나를 보고 있다고,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고, 엄마는 모두 다 알고 있다고, 모두 다 알아차리고 자신을 바보 취급하는 이 한심한 딸을 놀리고 있다고. --- pp.69-70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엄마. 식사를 줄줄 흘리는 엄마. 의치를 삼켜버리는 엄마. 새하얀 시트에 똥을 싸는 엄마. 그래도 아직 살아 있는 엄마. 이제 엄마한테 살아 있다는 건 더 이상 사랑하는 게 아니다. 더 이상 거짓말하고 웃고 사랑을 나누고, 엄마의 꼬마 루이즈가 들려주는 이런저런 사소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게 아니라, 그저 숨을 쉬고 두 개의 관 사이에서, 두 번의 기침 발작 사이에서 공기를 찾으려고 애쓰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공기를 찾으려고 하지만 찾아내지 못하고, 도움을 받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이지만, 어쩌면 그렇게 하지도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얼마나 오랫동안 견뎌낼 수 있을까? 나는 엄마와 고통을 함께하려고 숨을 참아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다. --- p.77
어렸을 때, 내 친구들은 엄마가 내 엄마라서 너무나 신나겠다고, 하고 싶은 건 뭐든 다 할 수 있겠다고 말하곤 했다. 밤늦게 자러 가도 되고, 헐렁한 티셔츠와 뻣뻣하고 두꺼운 가죽 재킷을 입고 카우보이 스타일의 웨스턴 앵클부츠를 신어도 되고, 방 정리를 안 해도 되고, 원한다면 방이 전혀 없어도 되고, 거실에서 자도 되고, 기타 소리나 얘기 소리를 듣다가 스르르 잠이 들어도 되고, 내가 피곤하거나 엄마가 너무 피곤해서 데려다줄 수 없으면 학교를 땡땡이쳐도 된다니. 친구들은 그런 엄마가 있어서 얼마나 좋아, 라며 부러워했다. 학교에 데려다주는 걸 까맣게 잊어버리거나, 동네에서 길을 잃었는데도 걱정조차 하지 않는 엄마는 분명 재미있기는 하다. 괜찮아. 넌 다섯 살이나 됐잖니? 다 큰 데다 목에 늘 주소? 매달고 다니는데 무슨 걱정이야? --- pp.105-106
장례식 날, 엄마의 모습은 처참하기만 했다. 그날, 엄마의 아름다운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서 시트를 살짝 젖힌 나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장의사들은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에 나오는, 입은 귀까지 찢고 입술은 잘라버린 주인공처럼, 엄마의 미소를 귀 쪽으로 잡아당겨 늘려놓은 것이다. 그들은 엄마의 얼굴에 고통으로 흉하게 일그러진 표정과 상처처럼 툭 벌어진 입술을 붙여놓았다.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가! 그리고 그 위에 밤색 파운데이션을 덕지덕지 발라놓았다. 안색이 좋아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얼굴 하관에 생긴 혈종을 가리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여장 남자 같은 화장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이런 엄마의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그리고 나도 엄마의 이 끔찍한 이미지를 간직하지 않도록, 엄마의 뺨까지 시트를 끌어올린 다음 가운데를 약간 구겨 코끝만 보이게 했다. --- pp.112-113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돈이 다 떨어져 빈털터리 신세가 돼도 저 아래, 길에서 칼 가는 사람이 지나가면서 종이라도 딸랑딸랑 흔들어대면, 전혀 갈 필요도 없는 집 안의 칼이란 칼은 모조리 들고 계단을 후다닥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엄마의 마지막 50프랑짜리 지폐가 그의 손으로 전해졌다. 그저 그 사람이 분명히 엄마보다는 더 그 돈이 필요할 것 같아서, 그 사람이 하는 일이 너무 멋져서, 그 사람이 데리고 다니는 커다란 누렁이의 코가 차갑고 축축해서, 엄마가 스스로에게 벌을 주고 죄를 씻고 싶어서, 엄마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다. --- pp.129-130
이제 내 딸의 시선 속에 엄마의 시선이 있다. 엄마는 바로 거기에 있다. 나는 그 속에서, 그 몸짓에서, 두 배로 사랑받는 내 작은 딸의 초조하고, 약간은 충동적인 그 몸짓에서도 엄마의 모습을 발견한다. 들어가면 안 되는 잔디밭을 뛰어다니는 앙젤의 모습 속에 엄마가 살아 있다. 앙젤이 자기를 붙잡아 꾸짖는 어른들에게 해볼 테면 해보라며 쏘아볼 때 엄마가 내게 말하고 미소짓는다. 앙젤이 넘어져도 울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벌떡 일어날 때 엄마가 거기 있다. 엄마는 자신이 지르지 않은 고함 속에, 자신이 짓지 않는 저 씩씩한 아이의 찡그린 표정 속에 머문다. 내 아이의 곳곳에 엄마는 자신의 흔적을 남긴 것이다.
--- pp.185-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