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하며 피아노를 연주했던 사라 본은 아마추어 콘테스트에서 심사단의 눈에 들어 보컬리스트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 누구보다 청명한 목소리를 지녔던 당시 그녀의 나이는 18세. 그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주요 음악인들은 사라 본의 능력을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1920년대부터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의 곁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던 얼 하인즈(Earl Hines)의 밴드에서 보컬리스트 겸 보조 피아니스트로 첫 데뷔 무대를 장식했던 사라 본은, 20세 되던 해인 1944년 빌리 엑스타인(Billy Eckstine) 빅 밴드의 창설 멤버로 발탁되면서 본격적인 음악 생활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그 당시 빌리 엑스타인의 지명도는 우리에게 알려진 것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에, 갓 성인이 된 새로운 보컬리스트가 빌리 엑스타인의 곁에서 함께 노래한다는 사실은 사람들로 하여금 적잖은 감탄과 의구심을 동시에 불러 일으켰다. 사라 본의 스승이자 선배, 그리고 진정한 후원자였던 빌리 엑스타인은 당시 그녀가 보여준 보컬리스트로서의 재능에 대해 이렇게 회고하곤 했다. "사라는 내가 노래하는 것을 단 한 번만 듣고도 모두 따라부를 수 있을 만큼 감각이 뛰어났었다. 나보다 음악 경력은 10년이나 뒤져 있었지만 가까운 장래에 내가 평생토록 이루어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음악성을 보여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같은 보컬리스트로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다는 것은 바로 사라 본 같은 보컬리스트에게 어울리는 표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정확히 10년이 지난 1954년, 우리가 지금 만나고 있는 이 앨범, 『Sarah Vaughan』이 만들어졌다. 이미 사라 본은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초반을 거치며 적지 않은 히트곡들을 부른, 주요한 인기 음악인으로 발돋움해 있었고 단순히 노래 잘하는 가수로서가 아닌, 빌리 엑스타인이 예견한 것처럼 모든 연주자들이 함께 무대에 서고 싶어하는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성장해 있었다. 청명한 그녀의 목소리에는 어느새 원숙미가 깃들기 시작했고 뛰어난 호흡 조절과 섬세한 리듬감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테크닉을 보여줌으로써 그 어떤 스타일의 연주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 깊은 음악성을 획득하기에 이르러 있었다. 재즈비평가이자 역사가인 건더 슐러(Gunther Schuller)가 훗날 사라 본을 일컬어 '재즈 가수'라는 일반적인 표현 대신 '보컬 아티스트'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 만큼 다른 보컬리스트들과 차별되는 그녀만의 강한 개성과 음악적 카리스마가 바로 이 시기, 1950년대 중반을 전후하여 완성된 셈이다. 실제로 사라 본의 노래를 음악적으로 평가하는 자리에서는 누구든 그녀가 지닌 연주자로서의 역량을 간과하지 않는다. 사람의 목소리가 신이 내린 최고의 악기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어떤 보컬리스트도 음정 처리나 음역, 그리고 호흡의 조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제약을 생각한다면 노래하는 이들이 가진 고충은 매우 근본적인 문제점에서 비롯되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사라 본의 노래가 매우 강한 매력을 지닐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제약을 뛰어넘었다는 데 있다.
음악성을 이야기할 때 결코 테크닉만으로 모든 것을 결정지을 수는 없지만, 사라 본의 노래가 보여준 성과들은 우선 그 테크닉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비밥이 모던 재즈의 서막을 열었던 1940년대 초반의 상황을 생각할 때 매우 설득적으로 다가온다. 이에 대해 사라 본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적이 있다. "디지 길레스피와 찰리 파커가 현대 음악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입니다. 그런데 그 점은 보컬 영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라 본 스스로 비밥이라는 음악 스타일에 자신의 목소리를 대입시키기 위해 적잖이 노력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당시의 그녀가 보다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쉽지 않은 비밥 보컬리스트로서의 길을 선택했는가 하는 점을 의아하게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답은 지극히 명료하다. 사라 본은 빅 밴드의 풍부한 사운드 위에서 화려하게 노래하기를 즐겼던 일반적인 보컬리스트들의 희망을 과감히 버리고 진정한 의미의 재즈 연주자로 자리매김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러한 음악적 지향이 확고히 자리잡은 시기에 녹음된 이 앨범이 다시 한 번 크나큰 역사적 의미를 어필하는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이 작품에 담긴 노래들은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인상적이다. 사라 본의 대표곡처럼 인식된 조지 쉐어링(George Shearing)의 'Lullaby of Birdland'에서부터 보컬리스트의 감성을 가늠하는 잣대가 된 'April in Paris', 그리고 최고의 발라드인 'Embraceable You'와 'September Song'에 이르기까지.
재즈 음악인에게 30이라는 나이는 정말 많은 것을 시사한다. 자신의 음악성을 완성 단계에 올려 놓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는 시기인 동시에 비로소 젊은 시절 꿈꾸곤 했던 음악을 자신 있게 펼칠 수 있는 경험이 밑바탕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1990년, 이 앨범이 CD로 다시 발표되었을 때 사용된 『Sarah Vaughan With Clifford Brown』이라는 타이틀에 대해 최근 버브 사의 입장은 정확히 수정되었다. 즉, 이 앨범의 핵심은 사라 본의 탁월한 노래와 함께 그녀의 목소리를 보다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여러 선후배들의 노력에 있었다는 애초의 제작 의도가 바로 그것이다. 어니 윌킨스(Ernie Wilkins)의 편곡은 말할 것도 없고, 당대 최고의 트럼펫터 클리포드 브라운(Clifford Brown)이나 허비 맨(Herbie Mann)의 플룻 연주까지 사라 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 함께 할 이유가 없는 존재들이었다. 다시 한 번, 이 앨범이 사라 본의 진정한 대표작으로 군림할 수 있는 이유를 증명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