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절제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첫째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삶을 열망해야 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그리스의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이 편지에서 바울은 인생을 하나의 경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스는 고대 올림픽이 탄생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또 고린도라는 도시에서는 그 당시에 '이투미안'이라는 유명한 연례 체전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스 문화적 전통에 따르면 그 당시 사람들의 평생에 가장 큰 명예는 이투미안 체전에 선수로 나가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또 그 체전에서 선수 자격을 상실하는 것을 최대의 불명예로 여겼습니다. 바울은 이런 문화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본문을 쓰고 있습니다.
본문 마지막 절인 27절을 보십시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여기서 '버림'이라는 말은, 구원받았다가 다시 구원받지 못한 상태로 떨어진다는 의미라기보다 주님께 쓰임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주님이 쓰시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이 '버림'이란 단어를 'disqualify'(자격을 박탈하다)라는 말로 번역했습니다.
자격을 상실해서 더 이상 선수로 쓰임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불명예스러운 일입니까? 1988년 9월 27일 아침, 캐나다의 CBC 뉴스 시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도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100미터 세계 신기록 보유자인 우리의 국가적 영웅 벤 존슨이 약물 복용으로 선수 자격을 상실하고 모든 기록이 취소된 날입니다. 이것은 우리 국가의 수치입니다." 이어서 기자가 벤 존슨과 인터뷰한 내용이 보도되었습니다. 기자가 "당신은 왜 약물을 복용했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동안 나는 훈련을 등한히 여기고 꾀를 부렸습니다. 그렇지만 챔피언은 되고 싶었고, 그래서 할 수 없이 약물을 복용했습니다"
사람은 목표 혹은 소명이 분명하지 않을 때 훈련하고자 하는 의욕을 상실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더 이상 쓰임받을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께 쓰임받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우리는 훈련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문 27절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한다"는 말은 얼마나 의미심장한 단어입니까? 바울은 그렇게 자기 자신을 훈련하면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 요한복음 15장 16절을 보면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주님이 우리를 택하여 세운 이유는 우리로 항상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항상 열매를 맺는 삶, 그것은 유용한 삶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쓰임받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절제해야 합니다. 우리는 쓰임받기 원하는 만큼 절제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병행합니다.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우리가 절제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둘째로 목표 있는 삶을 열망해야 합니다. 바울은 본문 말씀을 기록하면서 아마도 두 가지 경기를 연상했을 것입니다. 우선 24절의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라는 표현으로 미루어보아 육상 경기를 생각한 것 같습니다. 또 26절의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라는 표현은 권투 경기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먼저 육상 경기에서, 모든 선수들은 출발 신호를 듣고 사력을 다해 결승선을 향해 달리고 있는데, 한 선수만 정반대 방향으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죽어라고 뛰어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그 선수가 아무리 빨리 뛴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는 패배자일 뿐입니다. 또 권투 경기를 하는 복서가 사각의 링 위에서 계속 무서운 펀치를 날리고 있는데 허공만 때린다고 해봅시다. 그의 열심이나 힘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분명하고 올바른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가정에서 혹은 직장에서 어떤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까? 신앙생활에서는 어떤 영적 목표를 세웠습니까? 인생 전반에 걸친 장기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분명한 목표가 있을 때 우린 스스로를 훈련하게 되며 절제의 삶을 살게 됩니다.
미국 대통령 가운데 린든 B. 존슨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먹는 것을 탐하는 습성이 있어서 점점 몸무게가 늘어갔습니다. 부인이 아무리 바가지를 긁고 호소를 하고 경고를 해도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한번은 부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립니까?" 이 말에 도전을 받은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좋은 대통령으로 일하기 위해 먼저 자신의 몸무게를 1년 내에 20파운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소식하고 운동도 하면서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결국 그는 1년 동안 23파운드를 줄였습니다. 그의 회고록에 보면, 몸무게를 줄이고 난 후로 정신이 맑아졌고 업무 능력도 많이 향상되었으며 모든 면에서 나아졌다고 했습니다.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나니 훈련이 가능했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결국은 목표를 달성하게 된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25절) 여기서 '다룬다'는 말은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는 말입니다. 이는 승리를 위해서 전력투구하는 모습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모든 일에', 즉 삶의 여러 영역에서 절제하게 됩니다. 사실 어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절제가 필요한 영역은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식욕도, 성욕도, 명예욕도, 심지어 우리 안의 갖가지 이기적 욕망과 감정까지도 절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무엇을 위해서 절제하고 있습니까? 그의 목표는 분명했습니다. 23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 이 복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내가 '세계 복음화'를 위해 모든 것을 절제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도 바울과 같이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만큼 절제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pp.166-171
먼저 육상 경기에서, 모든 선수들은 출발 신호를 듣고 사력을 다해 결승선을 향해 달리고 있는데, 한 선수만 정반대 방향으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죽어라고 뛰어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그 선수가 아무리 빨리 뛴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는 패배자일 뿐입니다. 또 권투 경기를 하는 복서가 사각의 링 위에서 계속 무서운 펀치를 날리고 있는데 허공만 때린다고 해봅시다. 그의 열심이나 힘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분명하고 올바른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가정에서 혹은 직장에서 어떤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까? 신앙생활에서는 어떤 영적 목표를 세웠습니까? 인생 전반에 걸친 장기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분명한 목표가 있을 때 우린 스스로를 훈련하게 되며 절제의 삶을 살게 됩니다. 미국 대통령 가운데 린든 B. 존슨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먹는 것을 탐하는 습성이 있어서 점점 몸무게가 늘어갔습니다. 부인이 아무리 바가지를 긁고 호소를 하고 경고를 해도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한번은 부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립니까?'
--- p.52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예수믿고 구원받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주님께 한 영혼의 아름다운 열매를 돌려드리는 일, 세상에 이 수고보다 더 아름다운 수고가 어디 있습니까? 당신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 수고를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 p.29, --- pp. 13-1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우리가 절제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첫째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삶을 열망해야 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그리스의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이 편지에서 바울은 인생을 하나의 경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스는 고대 올림픽이 탄생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또 고린도라는 도시에서는 그 당시에 '이투미안'이라는 유명한 연례 체전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스 문화적 전통에 따르면 그 당시 사람들의 평생에 가장 큰 명예는 이투미안 체전에 선수로 나가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또 그 체전에서 선수 자격을 상실하는 것을 최대의 불명예로 여겼습니다. 바울은 이런 문화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본문을 쓰고 있습니다. 본문 마지막 절인 27절을 보십시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여기서 '버림'이라는 말은, 구원받았다가 다시 구원받지 못한 상태로 떨어진다는 의미라기보다 주님께 쓰임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주님이 쓰시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이 '버림'이란 단어를 'disqualify'(자격을 박탈하다)라는 말로 번역했습니다. 자격을 상실해서 더 이상 선수로 쓰임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불명예스러운 일입니까?
--- p.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