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활발한 연주생활을 바탕으로 오스카 피터슨은 당시 냇 킹 콜의 연주 스타일을 받아들여 스윙폭을 늘려 가는 역동적인 연주기법으로 세인들의 이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그의 연주는 명 프로듀서 노먼 그랜츠에 의해 발굴되어졌고 1949년 JATP(Jazz at the Philharmonic) 공연에 게스트로 초빙 받기에 이른다. 이후 오스카 피터슨은 캐나다라는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어 재즈의 본고장인 미국무대를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하는데 베이시스트 레이 브라운과 메이저 홀리와 번갈아 가면서 피아노-베이스 듀엣 작품을 발표한다. 특히 이때 레코딩된 『Tenderly』 작품은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하여 그의 존재를 부각시켜주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Keyboard』, 『An Evening with Oscar Peterson』, 『Nostalgic Memories』 등의 듀엣 작품을 발표한 뒤에, 냇 킹 콜 트리오의 포맷에 영향받은 드럼리스 피아노 트리오(피아노-베이스-기타)를 결성하면서 재즈계에 있어 오스카 피터슨이란 이름을 선명하게 각인시키기에 이른다. 이런 그의 50년대 드럼리스 피아노 트리오는 레이 브라운(b)의 10여 년 간에 걸친 부동의 위치와 버니 케슬(g)과 허브 엘리스(g)로 이어지는 조화로운 라인업으로 대중들에게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콜 포터, 어빙 벌린, 조지 거쉰, 듀크 엘링턴, 제롬 컨 등 일련의 '송북 시리즈'를 10인치 EP로 발표했고 아울러 빌리 홀리데이의 반주자로서 뿐만 아니라 JATP의 멤버, 카운트 베이시와의 협연(1952년 『Basie Jazz』), 레스터 영(1952년 『The President Plays』), 베니 카터(『Alone Together』, 『Cosmopolite』), 로이 엘드리지, 벤 웹스터 등의 대가들의 작품에도 활발하게 참여한다. 특히 50년대 중반에는 라이오넬 햄튼(vib)의 작품에 고정적으로 출연하였고 아울러 중반 이후에는 엘라 피츠제랄드, 스탄 게츠, 콜맨 호킨스, 루이 암스트롱, 소니 스팃 등의 좀더 다양한 사이드맨 작업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며 절정기를 만끽한다. 하지만 이런 견고했던 그의 트리오 라인업은 기타리스트 허브 엘리스의 탈퇴로 인해 잠시 기로에 서게 된다. 그의 스윙감을 커버할 만한 대체 기타리스트가 전무했던 까닭에 오스카 피터슨은 중대 결단을 내리고 기타 대신에 드럼을 포함시킨 일반적인 피아노 트리오 포맷으로 전향하며 아울러 새로운 멤버 에드 씨그펜(ds)을 맞아들임으로서 전열을 가다듬는다. 소니 스팃과 함께한 『Sonny Stitt Sits in withe the Oscar Peterson』(59)을 기점으로 『A Jazz Portrait of Frank Sinatra』, 『The Jazz Soul of Oscar Peterson』과 더불어 1952년에 행해졌던 같은 주제로 새로운 라인업의 레코딩 작업을 다시 감행한다. 『Plays the Duke Ellington Song Book』, 『Plays the George Gershwin Song Book』, 『Plays the Richard Rodgers Song Book』, 『Plays the Jerome Kern Song Book』, 『Plays the Cole Porter Song Book』, 『Plays the Harry Warren and Vincent Youmans Song Book』, 『Plays the Irving Berlin Song Book』, 『Plays the Harold Arlen Song Book』 등 송북 작품집을 1959년 7월 14일부터 8월 9일까지 일거에 레코딩하는 왕성한 창작력을 과시한 오스카 피터슨은 이후 피터슨-브라운-씨그펜으로 이어지는 트리오 라인업으로 1965년까지 제2의 황금기를 구사하는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The Trio』(61)로부터 『Put on a Happy Face』(62)로 이어지는 시카고 런던하우스 클럽의 실황작품뿐만 아니라, 『West Side Story』(62), 『Night Trian』(62), 『Canadiana Suite』(64), 『We Get Requests』(64) 등의 명연을 들려준다. 하지만 1965년 6월 이후 에드 씨그펜이 탈퇴하고 그의 견고했던 트리오 라인업은 점차 흔들리며 루이 헤이즈(ds), 바비 더햄(ds), 샘 존스(b) 등의 잦은 멤버 교체로 혼돈의 60년대 말을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