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념자의 자기기만은 더 나아가 가장 일상적인 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도 강요당하기를, 즉 압박에 의한 것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것이 모든 생활 영역에 동시에 해당될 필요는 없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인간관계에 관련된 일에서는 결정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면서도 직장에서는 결정의 권한을 기꺼이 위임하고 싶어 한다. 유감스럽게도 사회에 체념이 점점 더 큰 영역을 차지하는 추세다. 마치 도미노 게임과 같다. 다시 말해 체념이 우선 인격을 잠식해 들어가면 뒤이어 의지력과 추진력을 점점 더 약화시킨다. 결정 회피자는 비가 오면 아주 좋아한다. 비가 오니까 조깅을 하러 나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결정 회피자는 독촉장이 와야 비로소 세금을 낸다. 결정 회피자는 상사가 독촉해서 일하게 되기를 바란다. --- p.99
나를 찾아오는 부모들이 대부분 전혀 알지 못하는 게 있다. 나는 소아청소년 정신과 의사지만 어린이와 청소년을 치료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사실이다. 나는 부모들을 치료한다. 아이들에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을 더 이상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부모들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발전을 위해서는 바로 부모의 역할이 절박하게 필요하다. 부모들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어야만 부부 및 자녀들과의 관계가 저절로 다시 건강해진다. (…) 6주나 8주 후에 부모는 다시 나를 찾아온다. 나는 그들이 약속을 지켰는지 아닌지를 바로 안다. 아이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부모가 만성 흥분 상태에서 벗어나는 즉시 아이들도 거기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는 아이들의 놀이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 p.276
“10가지/20가지/50가지 항목을 실천하면 충만한 생활을 누릴 수 있습니다.” 당신은 내가 이런 구체적인 실천 사항을 내놓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즉 개인이 각자 가진 자원을 잘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과도한 요구에 휘말려들지 않기 위한 고정된 프로그램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저마다 너무나도 다르기 마련이므로 무엇이 필요하다고 귀띔해줄 수 없다. 개인적으로 완수해야 할 목록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50가지 계획이 아닌 단 한 가지 능력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알아내는 능력이다. --- p.283
디지털 시대에 사회화된 많은 아이들은 오로지 부모의 자가용 뒷좌석에 앉아 세상을 배웠다. 이 아이들은 하루 종일 TV나 휴대전화에 매달려 있다. 그들에게 이런 상황은 모든 게 다 갖추어진 호텔에 장기 투숙을 예약한 것과 같기 때문에 깜짝 놀라거나 지치거나 목이 마를 때가 거의 없다. 또는 흥분하고 호기심이 들고 기대에 찬 상황도 겪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그들에게는 인생의 쓰고 단맛을 느끼게 해줄 믿음직한 감정의 팔레트가 허용되지 않는다. 편향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성인이 아니라 나이가 꽉 차기만 한 사람, 인생의 현실을 믿지 않는 사람이 된다. 자신의 흥미가 끌리지 않는 일을 강요당하면 바로 무릎을 꿇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후퇴를 참아본 적도 없거니와 시작한 일을 끝까지 해내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은 적도 없는 젊은이가 어디서 좌절에 대한 저항력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말 그대로 ‘만사가 귀찮다.’ --- p.294
당신이 어떤 사람을 한번 신뢰했다고 해서 그 신뢰가 영원한 것은 아니다. 안테나는 계속 작동한다. 어쩌면 오히려 다시 주도권을 쥐는 게 좋은 상황일 수도 있다. 또한 우리는 (한 시간 후, 일주일 후, 반년 후에) 안테나에서 기이한 신호를 받아 감정의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 (…) 기본적 느낌과 더 이상 맞지 않을 때 이성은 신뢰가 아직 의미가 있는지를 검사한다. 이런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신뢰하는 사람은 항상 자기 자신에 대한 주인의식을 유지한다. 성인이어야만 신뢰할 수 있다. 그리고 신뢰할 때만 우리는 성인이다. 신뢰를 주는 것, 그것이 성인이 지닌 최고의 규율이다. 그 규율이 바로 설 때 우리는 과도한 요구에서 빠져나올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과도한 요구가 우리를 덮치지 못하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