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와 배들이 보여요! 섬들도 보이구요! 비가 개면 더 잘 보일 거예요. 그리고 일출도 볼 수 있을 거구요! 오, 정말 기가 막힐 거예요, 엄마! 이 난간과 바닥은 말끔히 수리하고요. 저 계단 아래 화단에서는 온갖 꽃들이 활짝 핀다고 생각해 보세요!”(중략)
“우린 벌써 각자 방까지 결정한걸요.”
수잔이 거들었다.
로베타는 딸들을 빤히 살펴 보았다. 딸들을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세상 물정을 몰라 쓰레기통 같은 집인데도 좋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그들이 좋다면 못 살 것도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너희들이 있는데 누가 감히 엄마더러 가난뱅이라고 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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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영리한 딸이 셋이나 있고, 그들을 키울 집도 있고, 나를 기다리는 일도 있어. 이젠 나의 것을 빼앗거나 나를 속일 남편이란 작자도 없어. 그리고 앞으로는 언제라도 문설주에 기대고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햇빛을 즐길 수도 있겠지.’ 그녀는 새출발을 한 것이었다. 그녀의 세 딸들도 이제부터는 아주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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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팔리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진짜 그 여자 말을 아무렇게나 마구 하더군.”
“꾸밈새도 전혀 없지.”
“아이들의 외모에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아.”
“그런데도 남자를 끄는 묘한 매력이 있으니 그게 문제 아닌가, 가브리엘?”
가브리엘 팔리도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래서 나도 이렇게 헐레벌떡 달려오지 않았나. 이혼한 여자는 한번도 만나 본 적이 없거든. 은근히 호기심이 일더라니까.”
“그건 나도 마찬가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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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맙소사! 네가 아주 정신이 나갔구나. 내 말 잘 들어라, 로베타. 그런 짓을 하고 돌아다니다가는 아무도 너와는 친구가 되지 않으려고 할 게다. 왜 다른 여자들처럼 얌전히 공장에 들어가지 못하니? 아이들도 거기에 넣으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또 공장 얘기에요? 엄마, 우린 18년 전 내가 이곳을 떠날 때도 공장에 들어가는 문제로 다퉜다구요!”
“그래, 넌 너무 잘난 아이라 공장에서 썩긴 아깝다는 얘기겠지?”
“잘나고 못나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건 내 삶의 문제라구요. 난 내 인생을 그런 폐쇄된 방안에서 하루 10시간씩 천을 자르며 보내고 싶진 않다구요. 내 딸들한테도 그런 삶을 강요하긴 싫구요! 그 아이들은 창의력이 있고 생기발랄해요. 그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공장에 넣는다는 것은 그들의 창의력과 순수한 마음을 짓밟는 행위라구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글쎄다. 넌 어미 말이라면 무조건 반발부터 하는 아이니까. 그래서 잘된 거라고는 하나도 없으면서 말이다. 지금 네 꼴을 좀 보렴. 딸만 셋 딸린 이혼녀에다 가진 것이라곤 이 썩은 집 하나밖에 더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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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싫다고는 말하지 마. 난 이혼한 여자들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아. 다들 이게 그리워서 속으로는 미칠 지경이지. 기회만 있으면 뭇사내들을 흘끔거린다구. 넌 내 처제야. 난 내 처제가 이것에 굶주려서 뭇사내들을 흘끔거리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어. 그런 애로 사항쯤은 내가 해결해 줘야 할 책임이 있단 말이야. 안 그래, 버디?”
“미쳤어!”
로베타가 계속 앙탈하자,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 뒤로 왈칵 젖히고는 그녀의 입 속으로 자신의 혀를 밀어 넣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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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타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을 사람들의 비난과 경멸에 대한 반발이 강할수록, 가브리엘에 대한 호감이 오히려 높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에 대한 그녀의 혐오감이 갑자기 사라질 리는 없었고, 가브리엘 역시 죽은 자기 아내밖에는 모르는 사내였다.
이혼한 여자와 아내와 사별한 남자. 그들이 다시 활과 시위의 관계로 묶일 수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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