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도 검버섯도 인력으로 어찌 할 수 없지만 웃음은 시작할 수 있습니다. 거울 속의 나를 향해 스스로 웃으며 바라봐 주는 것입니다. ‘이야. 근사한 걸. 이 정도면 아직 꽤 괜찮잖아. 흠, 오른쪽보다는 왼쪽이 조금 더 나은걸?’마치 멋진 누군가를 바라보듯 그렇게 거울 속의 나를 봅니다. 거울을 보고 있노라면 정성스레 쓸어주고 싶은 부분이 생깁니다.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귀 옆으로 단정히 붙이고, 그렇게 길게 삐져나왔는지 몰랐던 코털도 정리를 하고요, 그러다 보면 슬며시 미소도 짓게 될 것입니다. 어쩐지 기분이 좋아지면 2년 전 어버이날 선물 받은 향수를 꺼내 한번 슬쩍 뿌려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섹시함은 이렇게 개발되기 시작합니다. 나를 향한 나의 시선이 바뀌면, 남을 향한 나의 시선이 바뀌고, 마침내 나를 향한 남의 시선이 바뀝니다. 그렇게 부지런히 유심한 시선을 주고받노라면 시선 속에서 의미를 만나게 됩니다. ‘아, 저 사람은 참 예쁘게 걷는구나.’‘아, 저 사람은 계절에 맞는 옷을 입었구나.’‘어머, 저 사람이 나를 향해 웃네.’그러면, 어쩌면 3초 이상 나를 바라보는 가족을 향해 뭐가 필요하냐고 묻는 대신 이렇게 말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너 같이 멋진 사람이 내 딸이라서 즐거워.”
“오늘 입은 스웨터 색깔이 당신 피부에 제일 잘 어울린다고 내가 말했던가?” --- 「세 종류의 거울을 세 곳에 걸어두기」 중에서
“2천만 원 정도밖에 없는데 괜찮겠냐?”평생 아프리카에서 의사로 봉사하느라 고등학교 때부터 학비 한 번을 제대로 대주지 못한 아들에게 마지막 병상의 아버지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사진작가인 그 아들은 아버지의 그 마지막 소유가, 그 마음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아버지를 꼭 끌어안고 임종까지 한 달 동안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했습니다. 2천만 원이 적은 돈은 아니겠지만 ‘의사’라는 직업으로 집 한 칸 남겨주지 못한 아버지의 미안함이 자랑스러운 아들. 병들고 굶주린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재능과 재물을 다 써버리고 남긴 돈 2천만 원은 그 절대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씨앗이 되어 아들에게 이어질 것이라 쉽게 예견할 수 있습니다.
돈으로 씨앗을 삼으십시오.
인생에 대한 나의 섹시한 자세가 그 씨앗 속에 담겨 누군가를 통해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유산(遺産)’입니다.” --- 「주고, 주고 또 주기」 중에서
가능하다면, 살아있는 동안, 자식들이 더 늙어 후회하지 않도록 조금 빨리 그 깨달음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서운함’의 시작점이었던 부모의 ‘바람’부터 없애보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불쑥 이런 역정이 나기도 합니다.
“바라긴 내가 뭘 바래?! 나를 아무 짝에 쓸모없는 뒷방 늙은이 취급을 하니까 그러지!”
여전히 뭔가 주고 싶은데, 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내가 주는 것을 자식이 쓸모없다 하니 그것이 서운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사실은 부모가 그렇게 키운 것입니다. 엄마의 손을 놓고 혼자서 걷고, 밥 먹고, 뛸 수 있게 되었을 때 잘한다, 기특하다 박수치며 키웠습니다. 알아서 척척척 공부하는 자식 자랑하며 살았습니다. 부모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온전한 사람 구실’하며 살게 만들려고 그 많은 시간과 돈과 정성을 들였던 것입니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내 도움 같은 거 필요 없다 말하는 자식이 서운하다면 그것은 부모 쪽의 반칙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자식한테 끝까지 ‘멋진 부모’가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부모는 서운하지 않고, 자식들은 부담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요?
--- 「누구나 젊은 시절이 있었듯, 누구나 늙는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