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누가 내 노래를 듣고 싶어 할까?’ 주저하는 것처럼 청중에 대한 소심한 태도 같은 것입니다. …… 빌리는 그런 태도를 보였습니다. 분명히 그녀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청해 주기를 바라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근본적으로 소심한 성격이었고, 친구를 잘못 사귄 점도 있겠지만, 그런 성격 때문에 그녀가 그릇된 용기를 주는 마약에 빠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공격적으로 노래하고 청중 앞에서 위세 당당한 레나 혼 같지 않았습니다. 엘라도 소심했지만 자기가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난공불락이었습니다…… 절대적인 확신이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레이디 데이는 자신이 보여 줘야 하는 것에서도 조금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p.151. 빌리 홀리데이의 이러한 수줍음과 자신감 상실은 여러 증언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으로서 그녀의 인생을 해명하는 중요한 열쇠의 하나이다.
확실히 빌리는 거장이다. 그녀 때문에 미국 대중음악에서 보컬 음악의 질이 향상되었다. ---p.174
아주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면, 그녀가 활동하던 시기의 미국의 중요한 팝 가수들은 모두 어떻게든 그녀의 천재성에 영향을 받았다. 나에게 단 하나, 지대한 음악적 영향을 주었고 여전히 그러한 사람이 바로 빌리 홀리데이이다. 레이디 데이는 분명히 지난 20년간 미국 팝 보컬 역사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프랭크 시내트라가 1958년에 한 말. 176
무명의 실력파 가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라 본, 디나 워싱턴, 페기 리, 딕 헤임스, 페리 코모 등이 모두 빌리의 영향을 받았다. 시내트라가 ‘세계 최고의 살롱 가수’라고 평가한 실비아 심스는 빌리를 우상으로 숭배했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독특하고 색다른 재능의 소유자인 대 가수 엘라 피츠제럴드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조차도 틀림없이 빌리의 노래는 열심히 들었을 것이다.
---p.177
그녀는 곡을 신청해도 내키지 않는 곡이면 부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게 그녀 방식이었죠.
---p.비어 콜트의 증언. 191
빌리는 섹스를 통해서 사랑을 찾으려 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그녀에게 흔히 말하는 콤플렉스는 없었지만, 유년 시절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아낌없이 사랑을 주었지만 받지는 못했다. 그녀의 취약점이 거기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속내를 드러내는 걸 겁냈기 때문에 그 깊은 상처를 헤아릴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해가 갈수록 그녀는 파행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p.207
빌리는 초창기에 할렘에서 일할 때부터 종종 레이디로 불리고 있었다. 테이블 아래로 떨어진 팁을 줍기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p.216
그[레스터 영]는 빌리가 퍼스트레이디여야 한다고 생각해, 그녀를 레이디 데이(Lady Day)라고 불렀는데...... 이런 별명들은 죽을 때까지 따라다녔다.
그 이후로도 옛 친구들은 계속해서 그녀를 빌리라고 불렀지만, 그녀는 점차 레스터가 붙여 준, 레이디로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클럽 손님이 그녀를 빌리라고 부르면 괜히 친한 척한다고 욕먹기 십상이었다. 그녀는 진정 레이디였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이 책에서 그녀를 레이디라 지칭할 것이다. ---p.217
최대 문제점은 레이디가 브런즈윅과의 계약에 묶여 있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사안이었다. 베이시 밴드에는 지미 러싱이라는 걸출한 남성 보컬리스트가 있었지만, 당시에는 여자 가수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 베이시 밴드에는 최고의 여자 가수[레이디]가 있었지만, 그때 그 레코드 회사는 그녀가 베이시 밴드와 음반 취입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정설은 레이디가 작은 밴드나, 심지어 아주 작은 클럽에서 그저 피아노 반주만으로 노래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그녀의 음반들을 전체적으로 살펴보아도, 대규모 앙상블과 녹음한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레이디가 빅 밴드 시대를 거역한 것이 아니라, 빅 밴드 시대가 레이디를 거부한 것이었다.
---p.232. 빅밴드 시절 레이디가 남긴 성과는 적다. 이것은 그녀가 겪은 불운들 중 그녀가 책임질 수 없는 것들 중 하나였다.
그녀를 해고한 것은 존 해먼드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만큼 배짱이 두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가 백인 거물이었으니까요. 그를 볼 때마다 거짓말 말라고 얘기합니다. 그는 아니라고, 자기가 해고한 게 아니라고 잡아떼고요. 난 그에게 새빨간 거짓말쟁이라고 퍼부어 댑니다. 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제대로 기록하세요…… 그녀에게 블루스를 노래하라고 주문했지만 자기 뜻대로 따르지 않아서 해고한 겁니다. 그녀가 전형적인 흑인 아줌마가 되길 바랐던 거지요.
......사람들은 흑인이면 당연히 블루스를 불러야 한다고만 생각합니다. 그것도 남부인도 아니고, 북부에서 자유를 누리던 사람들이 말입니다. 나도 겪고 있습니다. 매일 밤마다 시달립니다. (조 존스의 증언. p.236. 레이디의 <발견자>라고 칭해지는 이른바 미국 흑인음악의 대부인 존 해먼드에 관해 도널드 클라크는 다면적인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다. 그가 레이디를 세상에 알리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한 것 - 그조차 독점적인 기여는 아니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 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습적으로 꽉 막힌 태도, 그리고 레이디에게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그의 시도는 그녀를 분노하게 했다.)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 보면, 해먼드가 베이시와 빌리 사이에서 간섭을 하면서 틀림없이 그 시대 최고의 협력 관계가 되었을 법한 것을 좌초시킨 것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자기 충고만 받아들이면 자신이 관리하는 아티스트들은 최고의 작품만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지만, 아무도 감히 레이디에게 어떤 곡을 노래하라고 말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때 그가 알았어야 했다. ---p.242-243
갑자기 유명해지면서 그들[레이디와 아티 쇼 밴드]은 곧바로 뉴욕 링컨 호텔의 블루 룸---p.Blue Room)으로 진출했다. 그들은 1938년 10월 26일에 그곳에 데뷔했고, 그것이 레이디에게는 결별의 출발점이었다. 호텔 매니저 마리아 크레이머는 쇼에게 고객들이 호텔에 흑인들이 돌아다닌다고 생각하지 않게끔 레이디한테 화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라 일러 달라고 했다. 남부의 시골도 아닌 나라 제일의 도시에서, 그것도 노예를 해방한 대통령의 이름을 딴 호텔에서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난 것이다. 보수적인 성향의 칼럼니스트 월터 윈첼조차 이처럼 논평했다. 로빈슨이 그녀가 북부에서 몹시 화가 났다고 한 것은 이 사건을 두고 한 말이다. ---p.254. 그녀가 활동한 시대가 어떤 때였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
레이디의 시간 약속은 줄곧 예측 불허였지만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졌다. 자기 내키는 시간에 여러 클럽에서 친구들을 만나 노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러 사람의 증언대로 항상 자신감이 없었던 것도 이유였다. 아마 술과 마리화나, 혹은 그 둘 중 하나의 힘을 빌려 무대 공포증을 이겨 냈던 것 같다. 클럽 안에 있으면서도 출연 예정 시간이 지난 뒤까지 분장실에서 꾸물댈 정도였다. 정신을 가다듬고 무대 위에 올랐다 해도, 한마디로 자신의 천재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그녀는 모두들 자신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면 왜 뉴욕 밖에서도 더 크게 성공하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그녀의 자신감은 좋아지지 않았다. 그녀의 성장 환경에서는 시간 엄수가 중요하다는 근거를 제시해 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p.294. 레이디는 출연 예정 시간에서 두세 시간 뒤에나 나타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녀는 자신의 속마음을 열 열쇠를 전혀 찾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녀가 누군가를 사랑했거나 사랑이 뭔지 알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고통을 받았을 뿐이었습니다. 사랑이 뭔지도 몰랐기 때문에 사랑하게 될 상황에서도 고통만 느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은 몇 번 사랑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건 없었습니다. 완벽한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분명히 세상사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녀가 그런 부적응자였습니다. 마릴린 먼로가 그랬고, 조 가이, 존 시몬스, 범프스 마이어스, 레스터 영이 그랬습니다. 아, 레스터. 빌리와 내가 레스터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세상을 이해 못 했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지만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순수했고 진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머지 세상이 그렇지 않았던 거지요. 그들은 그걸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마리 브라이언트의 증언. p.341
레이디는 숨겨져 있던 보배였습니다. 진짜 물건이었지요. 52번가의 여왕이라 할 만했습니다. 레이디는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운 얼굴이었습니다. 갑자기 나타나 매력 덩어리가 된 겁니다…… 그러면서도 늘 밴드의 일원으로 성실하게 임했습니다. 밴드 가수로 다른 뮤지션들과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었지요.
무대에서 퇴장할 때 그녀는 우측으로 돌며 인사를 끄덕하고 나갔습니다.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인사했지요. 걸음걸이도 기품이 있었습니다. 여배우 로잘린드 러셀의 걸음걸이는 레이디를 모방한 겁니다. 빨리 걷지도 않았습니다. 늘 음악 템포에 맞춰 걸어 나갔습니다. ---빅 스텀프의 증언. p.346-347
빌리는 책은 읽지 않았지만, 깨어 있는 시간은 늘 즐겁게 보냈습니다. 11시나 12시에 일어났는데, 새벽 4시에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6시나 7시까지 집안 청소를 했으니까, 너덧 시간밖에 잠을 안 잤습니다. 그녀는 매일 밤, 일을 끝내고 돌아오면 청소를 했습니다. 그 때가 그녀에게는 생각할 시간이었습니다. 집안 청소하고 요리하면서 말입니다. 그러고는 앉아서 맛있게 실컷 먹었습니다. ---p.368
그녀는 어지간한 남자 열 사람보다 많은 양을 소비하면서도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그녀는 아편을 피웠고, 마리화나도 한 대 피웠습니다. 10파운드짜리 캔디 상자에 아편이 가득 있었는데, 그걸 한 움큼씩 집어 피웠습니다. 게다가 큰 잔 가득 흑맥주까지 곁들였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스카치위스키까지 마셨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화장실에 가서 주삿바늘까지 찔러 댔습니다. 거의 속삭이기도 힘든 지경까지 갔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녀처럼 했으면 6개월 안에 죽었을 겁니다. 그녀는 몸에 탈도 안 났고 목소리 같은 것에 문제도 없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면 목이 쉬었지만 한잔 마시면 정상적인 목소리로 돌아왔습니다…….
---존 시몬스의 증언. p.370. 이 지점부터 이 전기는 마약 이야기로 가득 찬다.
나는 그녀가 노래 연습을 한다거나 작곡가, 편곡자와 가까이 지내는 걸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건 듣도 보도 못했죠. 곡을 익히려고 음반을 듣는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스튜디오에서 작업할 때는 곡을 알고 있었습니다. 언제 시간을 냈는지 몰라요. (웃음). 그녀는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런데도 가사를 익히고 멜로디 연주를 두세 번 들으면 곡을 익혔습니다. 그녀는 이런 방식에 만족했던 것 같습니다. 천부적인 목소리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만의 가사 전달력이 있었고,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가슴과 영혼으로부터 울려 퍼지는 가창력이 있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노래했던 겁니다. ---존 시몬스의 증언. p.371
그녀는 대담한 성격이었고, 취하는 건 뭐든 좋아했습니다. 한마디로 봉이었지요. 그렇게 마약에 빠졌습니다. 위스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거지요. 그녀는 헤로인과 코카인을 동시에 사용했습니다. 한동안은 문제가 없었지만, 이내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 푼도 없어서 늘 마약을 살 돈을 구해야만 했습니다. 그 전에는 원하기만 하면 언제라도 2,000달러, 3,000달러는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마약에 중독된 뒤에는 1달러를 찾기 위해 서랍을 뒤져야 했습니다. ---존 시몬스의 증언. p.371
클럽에서 그녀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청중들을 기쁘게 했고, 그들과 어울려 한잔 마시며, 그들이 무엇에 대해 얘기하는지도 모르면서, 앉아서 웃고 떠들었습니다. 그녀의 교육 수준은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눌 정도가 못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묻는 거라곤 거의 그녀의 삶에 대한 거였습니다. 마치 인터뷰 같았지요. 언제 노래를 시작했나, 노래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같은 거 말입니다. 그러다 지치면 그녀는 분장실로 올라가 주삿바늘을 꽂았습니다. 그렇게 초조함을 떨쳐 냈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붙들고 있는 게 그녀에겐 정말 고통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직접 목격한 겁니다……. ---존 시몬스의 증언. p.373
“레이디, 당신은 상업성이 없어요.”---p.프랭크 시내트라가 한 말. 374
[레이디의 노래는] 사운드가 너무 약하고, 단조롭게 들린다고 했더니, 토니 스콧이 “그럼 누굴 좋아하는데?” 하고 물었습니다. 내가 엘라와 다른 가수 몇 사람 이름을 댔더니,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엘라 같은 가수가 ‘내 남자가 나를 떠났다(my man has left me)’라는 가사를 노래하면, 그 남자가 먹을 것을 구하러 길을 따라가는 모습이 떠오를 거야. 그러나 레이디가 그런 가사를 노래로 부르면 어떤 모습이 보이냐 하면, 가방에 짐을 잔뜩 챙긴 남자가 길을 가는데 그가 절대 돌아오지 않을 사람이라는 거야.” 다음 공연부터 나는 레이디의 노래 가사 내용과 그녀가 그 가사를 어떻게 토해 내는지 귀 기울여 듣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녀가 팬들을 매혹시킨 것은 그녀가 가사를 통해 전달하는 의미였습니다. 그녀에게 가사는 거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바비 터커의 말. p.458
레이디는 어떤 중독에서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어떤 것도 끊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게 자주 “칼, 마약 없이 인생을 살아야 한다면, 살맛 안 날 거야”라고 했습니다. 레이디는 이해하기 매우 간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가 원하는 건 아침에 기분 좋게 일어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레이디에게 기분이 좋다는 것은 일어나면서 그녀에게 기분을 좋게 할 마약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걸 말합니다. 그녀는 수중에 마약이 있고 없고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칼 드링카드의 말 p.521
마약과 현금 외에도, 레이디는 스타킹에 작은 양날 면도날을 감추어 놓았다. 그녀의 드센 면을 내비치는 모습이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날 때 휘두르려고 가까운 곳에 둔 것이었지만, 그녀는 그 면도날을 한 번도 휘두르지 않았다. 레비에게 칼을 휘두르기는 했다. 한번은 유리 조각으로 가슴을 그어 버리기도 했다(드링카드에 따르면, 그의 목을 따려고 했던 것인데 빗나간 것이라 한다). ---p.530
그녀 모습이 내가 본 것 중 최악의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내가 늘 얘기하던 대로 그녀의 최악의 모습은 다른 사람의 제일 나은 상태 정도는 됐습니다. 그녀가 내게 아는 척을 했고, 나도 그녀에게 “안녕, 레이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실비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다 죽었어. 너도 죽고 나도 죽을 거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렇지 않아요, 레이디.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당신은 살아 있고 나도 이렇게 살아 있어요”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녀가 “진심이야?”라고 하기에, “그럼요, 레이디” 했더니, 그녀가 “전화해, 실비아”라고 했습니다.
---실비아 심스의 증언. 레이디가 죽기 몇 달 전. p.690-691
그녀는 나한테는 절대 비극적인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장난을 좋아하는 여자였습니다.
---p.론 레비의 증언. 708
처음 들은 소식은 그녀가 병원에 실려 갔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했으며 병원에서 아주 잘 처신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뉴저지에서 공연하고 있을 때였는데, 근처를 서성이다가 확성기에서 “재즈 가수 빌리 홀리데이가 입원하고 있던 뉴욕의 한 병실에서 마약 소지 혐의로 구속됐다”는 방송이 들렸습니다. 그때 비밥 샘이라는 트럼펫 주자를 쳐다보며 “레이디가 죽을 거야”라고 했습니다. 불을 보듯 뻔했습니다. 나는 레이디가 간경변증과 싸우면서 동시에 마약까지 끊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칼 드링카드의 증언. p.710-711
레이디의 곡들은 우리가 서로를 조금이라도 존중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p.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