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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홀리데이

빌리 홀리데이

: 세상에서 가장 슬픈 목소리

[ 양장 ] 현대 예술의 거장-15이동
리뷰 총점8.0 리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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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12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760쪽 | 1074g | 155*218*40mm
ISBN13 9788932431208
ISBN10 893243120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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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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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한종현
한종현은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는 요아힘 베렌트의 『재즈북』이 있다.
주인공 : 빌리 홀리데이
1915년 4월 7일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에서 출생. 태어났을 때의 이름은 엘리노라 페이건(Eleanora Fagan). 어머니는 세이디 페이건. 아버지는 클레런스 홀리데이. 즉 어머니의 성을 따른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부모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상태였음. 아버지는 기타 연주자로서, 모녀를 돌보지 않았음. 뒷날 예명 홀리데이는 아버지의 성을 따른 것임. 외가의 성인 페이건은 아일랜드 성으로서 그녀의 외할아버지는 흑백 혼혈이었는데, 이것은 그녀의 외모와 그녀가 평생 간직했던 가톨릭 신앙 등 결코 작지 않은 영향을 끼친 요소였다.

1918년 (3세) 어머니 세이디와 아버지 클레런스 결혼. 이들은 곧 이혼함. 세이디는 친정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홀로 딸을 키움.

1926년 (11세) 12월 26일 윌버트 리치에게 강간당함. ‘선한 목자의 집’에 수용됨.

1930년 (15세) 여러 업소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 그녀가 정말 매춘을 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어느 지인의 증언. ‘돈을 안 받는 것보다 받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1933년 (18세) 존 해먼드가 그녀를 발견. 베니 굿맨과 레코딩함.

1937년 (22세) 색소포니스트 레스터 영이 그녀에게 ‘레이디 데이’라는 별명을 수여. 그녀는 답례로 레스터를 프레즈(Prez: 대통령)라고 부름.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와 공연.

1938년 (23세) 아티 쇼와 한 팀이 됨.

1939년 (24세) 카페 소사이어티에서 공연. ‘Strange Fruit'를 부름. 남부의 흑인 린치를 묘사한 정치색이 짙은 노래로 그녀의 대표곡 중 하나가 됨. (그러나 그녀는 이 노래말의 저항성에 주목하기보다는 노래를 개인적으로 받아들였음.) 코모도 레코드사와 계약.

1941년 (26세) 8월 25일 지미 먼로와 결혼.

1944년 (29세) 『에스콰이어』지의 평론가 투표에서 재즈 여성 보컬리스트 부문 1위. 데카 레코드사와 계약.

1945년 (30세) 10월 6일 어머니 세이디 사망. 49세.

1946년 (31세) 영화 <뉴올리언스>에 출연. (‘역사상 최악의 영화’)

1947년 (32세) 2월 3주간 마약 중독 치료를 받음. 효과 없음. 먼로와 이혼. 5월 마약 소지로 체포. 웨스트버지니아 주 앨더슨의 연방 여성 교도소에서 복역.

1948년 (33세) 3월 석방됨. 카네기 홀 공연. 뉴욕시 카바레 카드 발급이 거절됨.

1952년 (37세) 봄 노먼 그란츠와 레코딩하기 시작. 11월 듀크 엘링턴 데뷔 25주년 기념 콘서트(카네기 홀)에 출연.

1953년 (38세) 처음 실시된 『다운비트』 평론가 투표에서 사라 본과 공동 2위를 차지. 독자 투표에서는 7위(양 부문 모두 엘라 피츠제럴드가 1위).

1954년 (39세) 유럽 공연.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 출연.

1956년 (41세) 마약 소지로 루이 매케이와 함께 체포됨. 매우 부정확한 자서전 『레이디 싱스 더 블루스』가 출간됨. 고스트라이터는 빌 더프티. 첫 해 판매량은 1만 2천 권 정도. 윌리엄 포크너와 만남. (‘그는 그녀를 완전히 이해했습니다.’)

1958년 (43세) 2월 앨범 . 10월 두 번째 유럽 공연.

1959년 (44세) 2월 영국 TV에 출연. 3월 앨범 . 3월 15일 레스터 영 사망. 레이디는 충격을 받음. 5월 31일 간경변으로 쓰러짐. 뉴욕 메트로폴리탄 병원에 입원. 6월 12일 병상에서 마약 소지죄로 구속됨. 경찰이 병실을 감시. 작가 제임스 볼드윈 등 1천 명이 구속 취소를 탄원. 7월 17일 새벽 3시 병실에서 사망. 은행 잔고는 0.7달러. 타블로이드 신문사에서 받은 750달러를 소지하고 있었음.

1972년 그녀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 영화 <레이디 싱스 더 블루스>가 개봉됨. 주연한 다이애나 로스는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배에 오름. (‘사상 최악의 영화 중 하나’)

1987년 그래미상 평생 공로상.

1994년 미국 체신부가 기념 우표 발행.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이를테면 ‘누가 내 노래를 듣고 싶어 할까?’ 주저하는 것처럼 청중에 대한 소심한 태도 같은 것입니다. …… 빌리는 그런 태도를 보였습니다. 분명히 그녀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청해 주기를 바라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근본적으로 소심한 성격이었고, 친구를 잘못 사귄 점도 있겠지만, 그런 성격 때문에 그녀가 그릇된 용기를 주는 마약에 빠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공격적으로 노래하고 청중 앞에서 위세 당당한 레나 혼 같지 않았습니다. 엘라도 소심했지만 자기가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난공불락이었습니다…… 절대적인 확신이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레이디 데이는 자신이 보여 줘야 하는 것에서도 조금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p.151. 빌리 홀리데이의 이러한 수줍음과 자신감 상실은 여러 증언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으로서 그녀의 인생을 해명하는 중요한 열쇠의 하나이다.

확실히 빌리는 거장이다. 그녀 때문에 미국 대중음악에서 보컬 음악의 질이 향상되었다. ---p.174

아주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면, 그녀가 활동하던 시기의 미국의 중요한 팝 가수들은 모두 어떻게든 그녀의 천재성에 영향을 받았다. 나에게 단 하나, 지대한 음악적 영향을 주었고 여전히 그러한 사람이 바로 빌리 홀리데이이다. 레이디 데이는 분명히 지난 20년간 미국 팝 보컬 역사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프랭크 시내트라가 1958년에 한 말. 176

무명의 실력파 가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라 본, 디나 워싱턴, 페기 리, 딕 헤임스, 페리 코모 등이 모두 빌리의 영향을 받았다. 시내트라가 ‘세계 최고의 살롱 가수’라고 평가한 실비아 심스는 빌리를 우상으로 숭배했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독특하고 색다른 재능의 소유자인 대 가수 엘라 피츠제럴드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조차도 틀림없이 빌리의 노래는 열심히 들었을 것이다.
---p.177

그녀는 곡을 신청해도 내키지 않는 곡이면 부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게 그녀 방식이었죠.
---p.비어 콜트의 증언. 191

빌리는 섹스를 통해서 사랑을 찾으려 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그녀에게 흔히 말하는 콤플렉스는 없었지만, 유년 시절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아낌없이 사랑을 주었지만 받지는 못했다. 그녀의 취약점이 거기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속내를 드러내는 걸 겁냈기 때문에 그 깊은 상처를 헤아릴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해가 갈수록 그녀는 파행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p.207

빌리는 초창기에 할렘에서 일할 때부터 종종 레이디로 불리고 있었다. 테이블 아래로 떨어진 팁을 줍기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p.216

그[레스터 영]는 빌리가 퍼스트레이디여야 한다고 생각해, 그녀를 레이디 데이(Lady Day)라고 불렀는데...... 이런 별명들은 죽을 때까지 따라다녔다.
그 이후로도 옛 친구들은 계속해서 그녀를 빌리라고 불렀지만, 그녀는 점차 레스터가 붙여 준, 레이디로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클럽 손님이 그녀를 빌리라고 부르면 괜히 친한 척한다고 욕먹기 십상이었다. 그녀는 진정 레이디였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이 책에서 그녀를 레이디라 지칭할 것이다. ---p.217

최대 문제점은 레이디가 브런즈윅과의 계약에 묶여 있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사안이었다. 베이시 밴드에는 지미 러싱이라는 걸출한 남성 보컬리스트가 있었지만, 당시에는 여자 가수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 베이시 밴드에는 최고의 여자 가수[레이디]가 있었지만, 그때 그 레코드 회사는 그녀가 베이시 밴드와 음반 취입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정설은 레이디가 작은 밴드나, 심지어 아주 작은 클럽에서 그저 피아노 반주만으로 노래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그녀의 음반들을 전체적으로 살펴보아도, 대규모 앙상블과 녹음한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레이디가 빅 밴드 시대를 거역한 것이 아니라, 빅 밴드 시대가 레이디를 거부한 것이었다.
---p.232. 빅밴드 시절 레이디가 남긴 성과는 적다. 이것은 그녀가 겪은 불운들 중 그녀가 책임질 수 없는 것들 중 하나였다.

그녀를 해고한 것은 존 해먼드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만큼 배짱이 두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가 백인 거물이었으니까요. 그를 볼 때마다 거짓말 말라고 얘기합니다. 그는 아니라고, 자기가 해고한 게 아니라고 잡아떼고요. 난 그에게 새빨간 거짓말쟁이라고 퍼부어 댑니다. 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제대로 기록하세요…… 그녀에게 블루스를 노래하라고 주문했지만 자기 뜻대로 따르지 않아서 해고한 겁니다. 그녀가 전형적인 흑인 아줌마가 되길 바랐던 거지요.
......사람들은 흑인이면 당연히 블루스를 불러야 한다고만 생각합니다. 그것도 남부인도 아니고, 북부에서 자유를 누리던 사람들이 말입니다. 나도 겪고 있습니다. 매일 밤마다 시달립니다. (조 존스의 증언. p.236. 레이디의 <발견자>라고 칭해지는 이른바 미국 흑인음악의 대부인 존 해먼드에 관해 도널드 클라크는 다면적인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다. 그가 레이디를 세상에 알리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한 것 - 그조차 독점적인 기여는 아니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 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습적으로 꽉 막힌 태도, 그리고 레이디에게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그의 시도는 그녀를 분노하게 했다.)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 보면, 해먼드가 베이시와 빌리 사이에서 간섭을 하면서 틀림없이 그 시대 최고의 협력 관계가 되었을 법한 것을 좌초시킨 것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자기 충고만 받아들이면 자신이 관리하는 아티스트들은 최고의 작품만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지만, 아무도 감히 레이디에게 어떤 곡을 노래하라고 말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때 그가 알았어야 했다. ---p.242-243

갑자기 유명해지면서 그들[레이디와 아티 쇼 밴드]은 곧바로 뉴욕 링컨 호텔의 블루 룸---p.Blue Room)으로 진출했다. 그들은 1938년 10월 26일에 그곳에 데뷔했고, 그것이 레이디에게는 결별의 출발점이었다. 호텔 매니저 마리아 크레이머는 쇼에게 고객들이 호텔에 흑인들이 돌아다닌다고 생각하지 않게끔 레이디한테 화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라 일러 달라고 했다. 남부의 시골도 아닌 나라 제일의 도시에서, 그것도 노예를 해방한 대통령의 이름을 딴 호텔에서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난 것이다. 보수적인 성향의 칼럼니스트 월터 윈첼조차 이처럼 논평했다. 로빈슨이 그녀가 북부에서 몹시 화가 났다고 한 것은 이 사건을 두고 한 말이다. ---p.254. 그녀가 활동한 시대가 어떤 때였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

레이디의 시간 약속은 줄곧 예측 불허였지만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졌다. 자기 내키는 시간에 여러 클럽에서 친구들을 만나 노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러 사람의 증언대로 항상 자신감이 없었던 것도 이유였다. 아마 술과 마리화나, 혹은 그 둘 중 하나의 힘을 빌려 무대 공포증을 이겨 냈던 것 같다. 클럽 안에 있으면서도 출연 예정 시간이 지난 뒤까지 분장실에서 꾸물댈 정도였다. 정신을 가다듬고 무대 위에 올랐다 해도, 한마디로 자신의 천재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그녀는 모두들 자신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면 왜 뉴욕 밖에서도 더 크게 성공하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그녀의 자신감은 좋아지지 않았다. 그녀의 성장 환경에서는 시간 엄수가 중요하다는 근거를 제시해 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p.294. 레이디는 출연 예정 시간에서 두세 시간 뒤에나 나타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녀는 자신의 속마음을 열 열쇠를 전혀 찾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녀가 누군가를 사랑했거나 사랑이 뭔지 알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고통을 받았을 뿐이었습니다. 사랑이 뭔지도 몰랐기 때문에 사랑하게 될 상황에서도 고통만 느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은 몇 번 사랑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건 없었습니다. 완벽한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분명히 세상사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녀가 그런 부적응자였습니다. 마릴린 먼로가 그랬고, 조 가이, 존 시몬스, 범프스 마이어스, 레스터 영이 그랬습니다. 아, 레스터. 빌리와 내가 레스터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세상을 이해 못 했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지만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순수했고 진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머지 세상이 그렇지 않았던 거지요. 그들은 그걸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마리 브라이언트의 증언. p.341

레이디는 숨겨져 있던 보배였습니다. 진짜 물건이었지요. 52번가의 여왕이라 할 만했습니다. 레이디는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운 얼굴이었습니다. 갑자기 나타나 매력 덩어리가 된 겁니다…… 그러면서도 늘 밴드의 일원으로 성실하게 임했습니다. 밴드 가수로 다른 뮤지션들과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었지요.
무대에서 퇴장할 때 그녀는 우측으로 돌며 인사를 끄덕하고 나갔습니다.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인사했지요. 걸음걸이도 기품이 있었습니다. 여배우 로잘린드 러셀의 걸음걸이는 레이디를 모방한 겁니다. 빨리 걷지도 않았습니다. 늘 음악 템포에 맞춰 걸어 나갔습니다. ---빅 스텀프의 증언. p.346-347

빌리는 책은 읽지 않았지만, 깨어 있는 시간은 늘 즐겁게 보냈습니다. 11시나 12시에 일어났는데, 새벽 4시에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6시나 7시까지 집안 청소를 했으니까, 너덧 시간밖에 잠을 안 잤습니다. 그녀는 매일 밤, 일을 끝내고 돌아오면 청소를 했습니다. 그 때가 그녀에게는 생각할 시간이었습니다. 집안 청소하고 요리하면서 말입니다. 그러고는 앉아서 맛있게 실컷 먹었습니다. ---p.368

그녀는 어지간한 남자 열 사람보다 많은 양을 소비하면서도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그녀는 아편을 피웠고, 마리화나도 한 대 피웠습니다. 10파운드짜리 캔디 상자에 아편이 가득 있었는데, 그걸 한 움큼씩 집어 피웠습니다. 게다가 큰 잔 가득 흑맥주까지 곁들였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스카치위스키까지 마셨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화장실에 가서 주삿바늘까지 찔러 댔습니다. 거의 속삭이기도 힘든 지경까지 갔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녀처럼 했으면 6개월 안에 죽었을 겁니다. 그녀는 몸에 탈도 안 났고 목소리 같은 것에 문제도 없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면 목이 쉬었지만 한잔 마시면 정상적인 목소리로 돌아왔습니다…….
---존 시몬스의 증언. p.370. 이 지점부터 이 전기는 마약 이야기로 가득 찬다.

나는 그녀가 노래 연습을 한다거나 작곡가, 편곡자와 가까이 지내는 걸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건 듣도 보도 못했죠. 곡을 익히려고 음반을 듣는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스튜디오에서 작업할 때는 곡을 알고 있었습니다. 언제 시간을 냈는지 몰라요. (웃음). 그녀는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런데도 가사를 익히고 멜로디 연주를 두세 번 들으면 곡을 익혔습니다. 그녀는 이런 방식에 만족했던 것 같습니다. 천부적인 목소리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만의 가사 전달력이 있었고,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가슴과 영혼으로부터 울려 퍼지는 가창력이 있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노래했던 겁니다. ---존 시몬스의 증언. p.371

그녀는 대담한 성격이었고, 취하는 건 뭐든 좋아했습니다. 한마디로 봉이었지요. 그렇게 마약에 빠졌습니다. 위스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거지요. 그녀는 헤로인과 코카인을 동시에 사용했습니다. 한동안은 문제가 없었지만, 이내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 푼도 없어서 늘 마약을 살 돈을 구해야만 했습니다. 그 전에는 원하기만 하면 언제라도 2,000달러, 3,000달러는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마약에 중독된 뒤에는 1달러를 찾기 위해 서랍을 뒤져야 했습니다. ---존 시몬스의 증언. p.371

클럽에서 그녀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청중들을 기쁘게 했고, 그들과 어울려 한잔 마시며, 그들이 무엇에 대해 얘기하는지도 모르면서, 앉아서 웃고 떠들었습니다. 그녀의 교육 수준은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눌 정도가 못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묻는 거라곤 거의 그녀의 삶에 대한 거였습니다. 마치 인터뷰 같았지요. 언제 노래를 시작했나, 노래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같은 거 말입니다. 그러다 지치면 그녀는 분장실로 올라가 주삿바늘을 꽂았습니다. 그렇게 초조함을 떨쳐 냈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붙들고 있는 게 그녀에겐 정말 고통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직접 목격한 겁니다……. ---존 시몬스의 증언. p.373

“레이디, 당신은 상업성이 없어요.”---p.프랭크 시내트라가 한 말. 374

[레이디의 노래는] 사운드가 너무 약하고, 단조롭게 들린다고 했더니, 토니 스콧이 “그럼 누굴 좋아하는데?” 하고 물었습니다. 내가 엘라와 다른 가수 몇 사람 이름을 댔더니,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엘라 같은 가수가 ‘내 남자가 나를 떠났다(my man has left me)’라는 가사를 노래하면, 그 남자가 먹을 것을 구하러 길을 따라가는 모습이 떠오를 거야. 그러나 레이디가 그런 가사를 노래로 부르면 어떤 모습이 보이냐 하면, 가방에 짐을 잔뜩 챙긴 남자가 길을 가는데 그가 절대 돌아오지 않을 사람이라는 거야.” 다음 공연부터 나는 레이디의 노래 가사 내용과 그녀가 그 가사를 어떻게 토해 내는지 귀 기울여 듣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녀가 팬들을 매혹시킨 것은 그녀가 가사를 통해 전달하는 의미였습니다. 그녀에게 가사는 거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바비 터커의 말. p.458

레이디는 어떤 중독에서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어떤 것도 끊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게 자주 “칼, 마약 없이 인생을 살아야 한다면, 살맛 안 날 거야”라고 했습니다. 레이디는 이해하기 매우 간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가 원하는 건 아침에 기분 좋게 일어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레이디에게 기분이 좋다는 것은 일어나면서 그녀에게 기분을 좋게 할 마약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걸 말합니다. 그녀는 수중에 마약이 있고 없고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칼 드링카드의 말 p.521

마약과 현금 외에도, 레이디는 스타킹에 작은 양날 면도날을 감추어 놓았다. 그녀의 드센 면을 내비치는 모습이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날 때 휘두르려고 가까운 곳에 둔 것이었지만, 그녀는 그 면도날을 한 번도 휘두르지 않았다. 레비에게 칼을 휘두르기는 했다. 한번은 유리 조각으로 가슴을 그어 버리기도 했다(드링카드에 따르면, 그의 목을 따려고 했던 것인데 빗나간 것이라 한다). ---p.530

그녀 모습이 내가 본 것 중 최악의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내가 늘 얘기하던 대로 그녀의 최악의 모습은 다른 사람의 제일 나은 상태 정도는 됐습니다. 그녀가 내게 아는 척을 했고, 나도 그녀에게 “안녕, 레이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실비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다 죽었어. 너도 죽고 나도 죽을 거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렇지 않아요, 레이디.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당신은 살아 있고 나도 이렇게 살아 있어요”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녀가 “진심이야?”라고 하기에, “그럼요, 레이디” 했더니, 그녀가 “전화해, 실비아”라고 했습니다.
---실비아 심스의 증언. 레이디가 죽기 몇 달 전. p.690-691

그녀는 나한테는 절대 비극적인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장난을 좋아하는 여자였습니다.
---p.론 레비의 증언. 708

처음 들은 소식은 그녀가 병원에 실려 갔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했으며 병원에서 아주 잘 처신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뉴저지에서 공연하고 있을 때였는데, 근처를 서성이다가 확성기에서 “재즈 가수 빌리 홀리데이가 입원하고 있던 뉴욕의 한 병실에서 마약 소지 혐의로 구속됐다”는 방송이 들렸습니다. 그때 비밥 샘이라는 트럼펫 주자를 쳐다보며 “레이디가 죽을 거야”라고 했습니다. 불을 보듯 뻔했습니다. 나는 레이디가 간경변증과 싸우면서 동시에 마약까지 끊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칼 드링카드의 증언. p.710-711

레이디의 곡들은 우리가 서로를 조금이라도 존중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p.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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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현) 인터뷰

편집부: 빌리 홀리데이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녀의 생애를 간단하게 요약해 주십시오.
옮긴이: 위대한 재즈 가수였습니다.

1915년에 태어나서 1959년에 마약과 알코올 중독 후유증으로 4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미 10대 때 강간을 당했고 소년원 생활과 매춘까지 경험한 빌리는 우연한 기회에서 클럽에서 노래를 하게 됐고, 1933년에는 레코드 데뷔를 했습니다. 베니 굿맨, 테디 윌슨, 카운트 베이시, 아티 쇼, 듀크 엘링턴, 루이 암스트롱 등과 같이 활동했고 1939년에는 남부에서의 흑인에 대한 잔혹한 린치를 고발한 프로테스트 송 ‘Strange Fruit(이상한 열매)’를 발표했습니다. [1999년 『타임』은 ‘Strange Fruit(이상한 열매)’를 20세기 최고의 노래로 선정했습니다.] 40년대 이후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그 이후 마약과 알코올, 남자는 심적으로 취약한 그녀를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었지만 그녀를 파탄으로 몰고 간 주범이기도 했습니다. 마약으로 인해 몇 차례 검거되고 병원 신세까지 졌지만 중독성 강한 그녀는 어떤 것에서도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한 채 시들어 갔습니다. 하지만 마약과 술에 절어 지치고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한 50년대에도 유럽 투어와 카네기홀 공연을 성공시켰고, 전성기 때의 그림자에 불과한 목소리를 가지고 영적인 흡인력을 가진 말년의 역작 앨범도 발표했습니다.

그녀의 불행한 삶은 그녀 자신의 책임이 아니었을까요?
결국은 책임을 지지 않았나요? 그 대가로 고독하게 요절했으니까요. 하지만 불행한 삶의 책임을 당사자에게만 돌린다는 건 너무 가혹한 것 같은데요. 인간이 그렇게 자유로운 존재인가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그녀가 처한 환경은 파행적인 삶을 살게 될 법한 매우 불리한 여건이었습니다. 흑인 여성에 사생아인데다가 초등교육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고, 일찌감치 더럽고 위험한 거리로 내몰린 삶이었습니다.

40년 전에 죽은 빌리 홀리데이를 오늘날의 한국인이 알아야 할 - 더구나 <현대 예술의 거장>의 한 명으로서 - 필요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아주 소박한 수준의 무관심에 대해 어떤 답이 가능할까요?
재즈를 현대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한다면 당연히 빌리 홀리데이를 알아야 합니다. 그녀는 분명 재즈에 있어 중요한 거장이니까요. 거의 모든 재즈 가수들이 그녀의 영향을 받았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U2같은 록 밴드까지 1988년에 그녀를 기리는 헌정 곡 ‘Angel of Harlem’을 발표했습니다.

저자는 빌리 홀리데이에 대한 잘못된 고정 관념이나 오류를 자료로써 타파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저자가 바로잡고 있는 오류와 그 진실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들인가요?
대표적인 것 한 가지만 들겠습니다. 빌리 홀리데이가 결혼을 세 번 했느니, 네 번 했느니 하는 말들이 있는데, 저자는 자료를 근거로 그녀가 평생 딱 두 번 결혼했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법적인 결혼을 말하는 겁니다.

이 책은 빌리 홀리데이에 대한 본격적인 정보로서 국내 최초로 출간되는 것입니다. 이미 빌리 홀리데이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는 미국의 독자들이 이 책을 읽는 것과 한국 독자가 읽는 것은 다른 의미를 띤다고 생각되는데 우리 독자들이 주의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특별히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다만 미국 사회에 대해 좀 더 심층적으로 이해할 필요는 있습니다. 특히 인종차별 문제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21세기를 사는 한국인 입장에서, 말하자면 30, 40년대 미국 술집, 클럽 이야기가 그렇게 익숙하지는 않을 겁니다. 영화에 나왔던 장면을 떠올리면서 이해한다든가 해야 합니다. 그리고 책의 상당 부분이 마약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마약을 투약하는 과정이라든가 마약 사범을 검거하는 디테일 같은 것은 흥미로운 면도 있지만 약간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리화나에 대한 시각도 한국인의 평균적인 잣대와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한마디로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빌리 홀리데이라는 위대한 재즈 가수의 음악(예술)과 인생은 이러했다.

저자의 에고보다는 빌리 홀리데이라는 인물의 진실을 부각하는 데 노력한 사심 없는 전기라는 말씀이군요. 번역을 하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일반론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번역이란 결국 문화의 번역이지 않습니까? 1920년대부터 50년대까지의 미국 흑인들의 일상, 뒷골목 술집, 클럽 이야기를 전하는 증언자들의 인터뷰 내용도 이해 안 가는 것이 있어 고심했고, 그들 중 일부의, 어법에 어긋난 듯한 발언을 해석하는 일은 사투리 심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말을 알아듣는 일처럼 곤혹스러웠습니다. 필자 입장에서야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서 손보지 않고 그대로 인용했겠지만 말입니다.

그런 어려움이 번역자에게 불가피한 취사선택을 강요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번역을 하실 때 원칙으로 삼으셨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번역 과정에서 살려내려고 특히 애쓰신 것이 있다면?
위에 밝힌 대로, 말하자면 사투리 심한 할아버지의 말이라면 사투리 심한 할아버지라는 느낌이 나게, 쌍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이의 말이라면 그런 쌈마이 느낌이 살게 번역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심한 비속어는 약간 완곡하게 처리했습니다.

빌리의 목소리는 90년대 광고 음악에 사용되면서 우리 대중에게 알려졌는데요. 그 이전의 수용은 어떻습니까?
재즈 보급과 민주화는 비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녀가 죽은 지 30년만인 80년대 말에 컬럼비아 레이블의 이 지구레코드에서, 버브 레이블의 가 성음레코드에서 발매됐습니다. 그리고 80년대 중반에 한국의 빌리 홀리데이라 불리는 박성연 씨의 첫 앨범 <박성연과 Jazz at the Janus>이 나왔는데, 거기에서 박성연 씨가 멋지게 부른 빌리 홀리데이의 ‘I'm a Fool to Want You’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본격적인 CD 시대도 아닌데다가 LP판 수입이 원활하던 때도 아니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재즈 음반을 구한다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빌리 홀리데이가 우리나라 재즈(또는 대중음악 전반)에 끼친 영향이 있을까요?
글쎄요. 굳이 빌리 홀리데이라고 특정지어서 말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빌리 홀리데이나 엘라 피츠제럴드 같은 대가들이 현재 활동하고 있는 재즈 가수들에게는 큰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빌리 홀리데이가 각별히 호소하는 음악 수용자의 타입이 있을까요?
특별히 그런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을 너무 세세하게 구획하는 일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불가피할 때 최소한의 갈래 나누기만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입문자들이 재즈에 접근하기에는 빌리 홀리데이뿐만 아니라 (주로 여성인) 재즈 보컬 거장들의 노래가 나름대로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개의 연주곡들에 비해 보컬곡들이 멜로디에 익숙해지기 편합니다. 역사적인 재즈 명곡들이 결국은 스탠더드로 통하는 원곡을 임프로바이즈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빌리 홀리데이 하면 뭔가 불행하고 어두운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그게 그녀의 음악에 접근하는 데 올바른 길인지요? 그 외의 다른 접근 방법은 없을까요?
빌리 홀리데이의 삶에 불행하고 어두운 면이 많았던 건 사실이고 그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그렇습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그녀 음악을 접하기 전에 그런 이미지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익히 알려진 사실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사람이라도 한번 그녀의 노래를 듣게 되면 (가사에 대한 이해가 없더라도) 그 목소리 속에서 그녀의 신산한 삶과 한을 절절하게 느낄 겁니다.

엘라 피츠제럴드가 죽었을 때 『타임』은 그녀를 ‘Voice of America’라는 칭호로 요약했는데요. 빌리 홀리데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목소리’입니다. 흔히들 재즈의 3대 디바를 빌리 홀리데이, 엘라 피츠제럴드, 사라 본이라고 합니다. 엘라의 가창력, 사라의 천부적인 음색은 정말 대단합니다. 하지만 빌리의 목소리는 영감이 넘치고 곡 해석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재즈 보컬에서도 임프로비제이션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여가수가 바로 빌리 홀리데이입니다. 게다가 마이크로폰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인식한 가수도 그녀였습니다. 빌리는 마이크를 사용할 때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노래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최초의 보컬리스트였습니다. 그래서 요하임 베렌트는 역저 『재즈북』에 “빌리 홀리데이 때문에, 모던 재즈는 다른 악기보다는 보컬 쪽에서 더 일찍 시작되었다”라고 했습니다. 1996년에 79세의 나이로 타계한 엘라 피츠제럴드는 분명히 ‘Voice of America’라는 호칭을 받고도 남을 만한 아티스트입니다. 빌리 홀리데이가 죽었을 때 『타임』은 “허스키하고 우울한 목소리로 자신의 비극적인 삶을 노래한 니그로 블루스 싱어, 빌리 홀리데이가 맨해튼에서 4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는 간략한 기사만 실었습니다. 미국에서조차 50년대와 90년대는 재즈의 위상이 달랐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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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홀리데이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감성으로 우리를 매혹시킨다. 그녀는 차별과 핍박으로 가득한 세월을 살았고, 더없이 처절한 아름다움을 남겼다. 역설적으로 그녀가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던들 이처럼 심오한 음악을 남길 수 있었을까. 유행이 아닌, 불멸의 존재로 남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 재즈 보컬리스트 박성연

올해 최고의 책. - 다운비트

빌리 홀리데이 전기로서 도널드 클라크의 업적을 능가하는 책이 나오려면 아마도 오래 기다려야 할 것이다. - 재즈 타임스

마침내 빌리 홀리데이에 대한 제대로 된 전기를 가지게 되었다. 그녀의 불안, 그녀의 승리, 그녀의 마력, 그녀의 아이러니를 완벽하게 재현해 주는 책.- 시애틀 타임스

빌리 홀리데이에 대한 책은 많았으나 아직까지 이보다 가치 있는 책은 나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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