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라 공주가 탈 만한 좋은 말이오. 이런 말일수록 잘 보살펴 주어야 하오.”
파라랑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제가 누군지 알고 계셨군요, 왕자님.”
“아비틴이라 불러 주시오, 파라랑 공주,”
아비틴의 목소리에서 경쾌함이 묻어났다.
“이 서라벌 땅을 처음 밟던 날 보았던, 이를 앙다물고 말달리던 소녀의 눈빛을 어찌 잊겠소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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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틴이 황궁의 흔적이 남아 있는 암석 위에 올라섰다. 황궁은 화산암들을 매끄럽고 단단하게 다듬은 다음, 정확한 위치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 모양이었다.
이어 황궁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궁을 경비하는 거대한 조각상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사람 얼굴에 날개가 달린 황소 라마수와, 사자 몸통에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를 가진 그리핀의 조각장이었다.
“페르시아 황궁 중에서도 가장 크고 아름다운 궁이라오. 먼 옛날 마케도니아 왕국 알렉산더가 도시를 정복했을 때, 승자가 그렇듯 궁전을 불태우고 많은 무기와 보물들을 몽땅 싣고 가 버렸소.”
아비틴은 돌조각 하나하나 애정을 담아 바라봤다. 고대 역사가 살아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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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게르, 세공사 버게르다!”
그렇다면 호더, 호더가 세작이란 말인가. 파라랑은 눈앞이 아찔해졌다. 쿠쉬군이 죽였다던 버게르가 파라랑 일행 앞에 나타났다. 버게르의 한쪽 뺨은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로 뒤덮여 있었고, 늘 자랑하던 검은 턱수염은 볼품없이 뒤엉켜 딴 사람처럼 보였다.
말에서 뛰어내린 버게르가 숨이 넘어갈 듯 황급하게 말했다. 버게르의 몸은 부들부들 떨렸고 눈동자 역시 몹시 흔들렸다.
“폐하, 폐하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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