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는 현존하는 최고의 포저입니다. 나라 전체에 그 여자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요. 마땅히 본보기로 처형해야 합니다.”
“아니요, 그녀는 쓸모가 있습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여자를 이용해야만 합니다.”
최고 심판관 프라바가 비음 섞인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유가 뭘까? 가오토나는 다시금 생각했다. 이런 예술적 재능과 위엄을 갖춘 자가 어째서 포저의 길로 들어섰을까? 왜 자기 작품을 만드는 진정한 예술가가 되지 않았을까? 이유를 알아봐야겠군.
프라바가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그 여자는 도둑이고 끔찍한 마법을 사용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 여자를 다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여자의 솜씨를 이용해서 우리에게 닥친 위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 p.10
“완샤이루, 네 이름으로 된 범죄 목록이 아주 길구나.”
이 여자는 무슨 게임을 하자는 거지? 한 가지는 확실해. 내게 뭔가 원하는 게 있는 거야.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나를 데려올 이유가 없지. 기회가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프라바는 샤이의 죄명을 읽어 내려갔다.
“귀족 여인으로 가장한 죄, 황실 갤러리에 침입한 죄, 너 자신의 영혼을 위조한 죄, 물론 황제의 홀을 훔치려고 시도한 죄도 있지. 그렇게 중요한 황실의 물건을 허술하게 위조해 놓고 너는 정말 우리가 알아채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느냐?”
아무래도 그런 것 같네요. 궁정의 어릿광대가 진품을 가지고 도망친 걸 보면요. 샤이는 속으로 대답했다. 자신이 만든 위조품이 황실 갤러리에서 홀의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했다고 생각하니 짜릿한 기쁨이 느껴졌다.
--- p.19
“핵심은 이거예요. 물체가 한 덩이로 오래 존재할수록, 오랫동안 그 상태로 인지될수록, 하나로서의 정체성이 강력해져요. 저 탁자는 여러 종류의 나무가 서로 맞물려 만들어졌지만 우리가 탁자를 그런 식으로 생각할까요? 아니요, 우리는 탁자를 전체로서 봐요. 그래서 탁자에 포저리를 쓰려면 나는 저 탁자를 전체로서 이해해야 해요. 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죠. 이 벽은 하나의 물질로 여겨질 만큼 오랜 시간 동안 존재했어요. 물론 벽돌을 각각 따로 처리할 수도 있을 거예요. 여전히 벽돌 하나하나가 구분되니까요. 하지만 이 벽이 벽돌 하나하나가 아닌 전체로서 취급되기를 원한다면 그 저항을 극복하기는 굉장히 어렵죠.”
(……)
“너는 벽에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모든 것에는 영혼이 있어요. 모든 사물은 그 자신을 무엇인가라고 생각하죠. 관계와 의도가 무엇보다 중요해요. 내가 당신의 폐하를 위해 인격을 써 내려가고 그분께 도장을 찍는다고 해도 모든 일이 끝나는 건 아닌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
--- p. 55~56
“나는 황제 폐하의 영혼에 부합되도록 당신의 영혼을 다시 쓴 거예요. 마치 창문이 새 스테인드글라스를 받아들이도록 창문의 역사를 다시 쓴 것과 같죠. 양쪽 모두 도장이 효과를 발휘한 건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에요. 창틀은 스테인드글라스를 끼우려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 알고 있어요. 예전에 스테인드글라스를 끼워 본 적이 있으니까요. 새 창틀이 예전 창틀과 완전히 같지 않더라도, 스테인드글라스 창이라는 일반적인 개념이 들어맞았기 때문에 도장은 효력을 발휘하는 거예요.”
(……)
“스테인드글라스 창의 ‘개념’을 이해하는 창틀이라고? 다른 영혼의 개념을 이해하는 영혼?”
샤이는 다른 도장을 준비하며 말했다.
“이해를 초월하는 그 무엇이죠. 나는 창문이 영적 영역에서 뭘 받아들이고 뭘 받아들이지 않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어요. ‘삶의 영역에서’라고 말해도 아주 틀리지는 않아요. 이 도장을 당신에게 시험했을 때 일 분 이상 효과가 있었다는 건 내가 뭔가를 제대로 맞혔다는 아주 훌륭한 증거예요. 도장을 황제 폐하께 직접 시험해 보면 더욱 좋겠지만, 현재 그분의 상태로는 내 질문에 대답하실 수 없잖아요. 나는 이 도장 하나하나의 효력을 검증해야 할 뿐 아니라 여러 도장이 함께 작용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당신이 느낀 것에 대한 설명을 들어 봐야 해요. 그래야 도장 전체의 설계를 올바른 방향으로 조금씩 수정할 수 있죠.”
--- p. 81~82
각각의 사람은 퍼즐과도 같다.
샤이에게 처음 포저리를 가르친 교관 타오의 설명에 따르면, 포저는 단순한 사기꾼이 아니라 인간의 감각으로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였다.
얼굴에 검댕을 칠한 길거리 부랑자도 남을 속일 수는 있다. 사기꾼의 수법은 일반적으로 희생자의 눈을 속이고 상대가 알아차리기 전에 달아나는 식이다. 하지만 포저는 남을 속이려 하지 않는다. 포저는 너무도 완벽하고 너무도 아름답고 너무도 진실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어, 상대가 아예 의심도 품지 못하게 만든다.
사람은 온갖 덤불과 잡초와 관목과 묘목과 꽃이 뒤얽힌 무성한 덤불과 같았다. 어떤 사람도 단 하나의 감정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어느 누구도 단 하나의 욕망만 품고 있지는 않았다. 사람은 수많은 욕망을 품고 있으며, 마치 두 개의 장미 덤불이 하나의 땅덩어리를 놓고 싸우듯이 그 욕망들은 종종 서로 부딪쳤다.
타오는 그녀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네게 속게 될 사람들을 존중해라. 충분히 오랜 기간 그들을 속이기 위해서는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
--- p. 90~91
이제 끝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황제를 이해하고, 퍼즐을 하나로 모으는 데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림이든 조각이든 대대적인 영혼 복제 작업이든, 막바지에 다가설 때면 아직 많은 과정이 남아 있더라도 전체 결과물을 조망할 수 있는 순간이 존재했다. 그 순간이 오면 마음의 눈에서 이미 그 작품은 완성된 상태였다. 그 이후의 마무리는 거의 형식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번 작업에서 마침내 그 순간이 다가왔다. 황제의 영혼이 그녀 앞에 펼쳐졌으며, 아직도 어둠에 가려진 부분은 아주 조금뿐이었다. 그 작은 부분도 남김없이 확인하고 싶었다. 샤이는 자신이 황제를 다시 살려 낼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황제에 관해 너무도 많은 기록을 읽었기 때문에 황제가 마치 오래된 지인처럼 느껴졌고,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물론 탈출도 그 이후로 미룰 생각이었다.
--- p. 11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