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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하지 않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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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하지 않는 희망

[ EPU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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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6년 06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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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0.73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7.4만자, 약 4.6만 단어, A4 약 109쪽?
ISBN13 9791186430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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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1844~1900)는 『교육자 쇼펜하워Schopenhauer als Erzieher』(1874)에서 두 가지 명랑성을 구별한다. 그 중 하나는 ‘끔찍한 것들을 비극적으로 대면하는 심성을 분발시키는 명랑성’인데, 이것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명랑성’으로서 예시된다. 다른 하나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자각하는 의식意識을 희생하여 낙천적 기분을 구매하는, 심성에 찍히는 피상적 낙인’ 같은 명랑성이다. --- p.23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의 목적은 불만스러운 현실을 초래한 중대한 실책들을 교정하는 것이었다. 영어소설은 계급이나 인간관계나 사회질서를 존중할 뿐 아니라 낙관적 결말들을 지독하게 고집하는 식으로 현상유지status quo의 버팀목을 제공했다.--- p.40

그래서 우리는 현재와 미래뿐 아니라 과거마저 다소 모호하게나마 책임질 수 있다. 사망자들은 소생할 수 없다. 그러나 희망의 비극적 형식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사망자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고 그들을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으며 ‘그들 스스로는 예언할 수 없었던 서사’에 그들을 엮어 넣어서 그들 중 가장 평범한 자의 이름마저, 예컨대, 최후심판일에 구원될 자들의 인명록 같은 것에 등재시킬 수도 있다. 그들과 우리 사이에 현실적 연속성이 전혀 있을 수 없을지라도 그들의 해방투쟁들은 우리의 해방투쟁들에 통합될 수 있는데, 그러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어떻게든 수확할 수 있을 어떤 정치적 결실이든 ‘그들의 실패한 기획들이 지녔던 정당성’을 입증하는 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다. --- p.70

홀로 집을 지키는 개는 주인의 귀가를 막연하게 기대할 수는 있어도, 예컨대 수요일이나 오후3시 같은 것의 개념을 모르는 비언어적 동물이라서, 주인의 귀가일시를 정확하게 예상하지 못한다. 이런 관점에서 ‘오직 언어를 습득한 동물들만이 희망을 품을 수 있다’고 말해질 수 있다. 언어는 창대한 미래의 가능성들을 열어젖힌다. --- p.114

대체로 희망은 욕망과 예상을 겸비한다. 인간은 욕망하지 않으면서 예상할 수는 있어도 욕망하지 않으면서 희망할 수는 없다. 훌륭하면서도 탐탁찮은 것(예컨대, 자신이 응원하는 최우수선수가 승리할지라도 그 승리가 분명히 응원하는 자신의 것은 아닌 것)을 희망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유쾌하면서도 불쾌한 것(예컨대, 범죄자들에게 부과되는 형벌)을 희망할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욕망을 결여한 희망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절망은 희망을 부정해도 욕망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제인 워터워스가 강조하다시피, 절망에 휩싸인 사람은 먼저 죽은 벗을 재회하고파서 현생을 포기하고 죽기를 열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p.125

‘희망은 현재와 미래를 상상력으로 접합시키는 과정으로 보이는 줄거리설정이나 계획 같은 것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런 것들이 희망의 합리적 측면들이다’는 사실도 알았다. --- p.127

최악상황은 다소 왜곡된 의미를 띠는 희망의 원천이다. 왜냐면 최악상황에 처한 사람은 그것보다 더 나쁜 상황으로는 내몰릴 수 없다고 생각하며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처지를 바꿀 수 없으므로 차라리 편안해질 수 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상황이 더 악화될 수는 없어”라고 단호히 주장하면 다른 사람은 “오 맞아, 그럴 수는 없지”라고 응답하는 뜬금없는 문답도 있을 수 있다.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낙관주의자이고 누가 비관주의일까? 에스파냐의 소설가 엔리케 빌라-마타스Enrique Vila-Matas(1948~)가 소설 『더블린 사람Dublinesque』에도 썼다시피, “인간은 최악처지에 내몰려도, 가장 비참해지고 가장 철저히 망각되어야 할 운명에 휘말려도, 언제나 희망을 품을 수 있고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다.” 막스 호르크하이머는 『도구적 이성비판Critique of Instrumental Reason』이라는 저서에서 ‘쇼펜하워는 정확히 완전한 희망부재상황希望不在狀況을 직면하므로 희망에 관해서 다른 어느 사상가보다 더 많이 안다’고 논평한다.블레즈 파스칼의 관점에서는 인류의 지독한 참상이 바로 희망의 아이러니한 원천으로 보이는데, 왜냐면 그런 참상을 개선할 수 있는 손에 인도되어야 할 ‘신의 은총에 쓰일 재료들의 종류’를 암시하는 것도 바로 그런 참상이기 때문이다. 잉글랜드의 예술역사학자 맬컴 불Malcolm Bull은 ‘나치 강제수용소에서도 워낙 굶주리고 탈진하여 살아있는 송장처럼 보인다고 무젤말Muselmann으로 지칭되던 재소자들은 희망을 아예 품지 못하므로 상처받을 수도 없는 “그들의 희망부재상황 때문에 구제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권력은 권력술책들을 감지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한다. 에드거가 변장할 인물로 선택하는 부랑아처럼, 혹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법에 대항하는 법』에 나오는 정신병자 같은 악당 바너딘Barnadine 처럼, 잃을 것을 전혀 소유하지 않은 남녀들은 전혀 두려워하지도 상처받지도 않으므로 위험하지도 않는 개인들로 판명될 수 있다. 자기박탈은 극한으로 내몰리면 거꾸로 뒤집혀서 기묘한 종류의 자유로 변할 수 있는데, 왜냐면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태어나는 귀중하고 희귀한 것도 있기 때문이다.
--- p.24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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