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래도 적은 용돈을 더 줄인다니, 성적이 떨어졌을 때보다 괴롭고, 게임 점수가 안 오를 때보다 괴로울 수밖에 없었지요.
꼽사리에게 용돈은 그만큼 중요하고, 꼭 필요하고, 아주 아쉬운 것이었거든요.
홧김에 덩굴손을 잡고 이어진 담쟁이 잎을 담장에서 북북 뜯어내는데 누군가 말했어요.
“얘, 띨띨아, 잎 한 장 더 피우려고 그 담쟁이가 얼마나 고생했겠니?”
띨띨이란 말에 발끈했지만 꼽사리는 당장 손을 거뒀어요.
바짝 깎아 버린 손톱이 더디 자라서 고생한 게 퍼뜩 생각났거든요. 담쟁이 잎이나 손톱이나 자라는 건 다 힘들 것 같았어요.
고개를 들자 눈앞에 귀여운 아줌마가 방글방글 웃으며 서 있었어요.
길고 뾰족한 마녀 모자를 쓰고, 짤막한 반짝이 지팡이를 들고, 치렁치렁한 검은 옷을 입었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 낯설지 않았어요.
“저, 띨띨이 아닌데요?”
“알아, 알아. 너, 용돈 깎여서 화났지?”
“헐, 어떻게 아셨어요?”
“아까 네가 그랬잖아.”
“아줌마, 마녀 아니죠?”
“헐, 티 났니? 나, 아줌마 마녀 아니고 순악질 마녀야.”
그때였어요. 옷을 입고 안경을 낀 곰이 헐레벌떡 달려왔어요.
“헉헉, 아이고 힘들데이. 방송하다 어디 가셨어요? 호띨이랑 용띨이가 나보고 순악질 누님 찾아오라잖아요. 내가 말을 안 끊고 너무 길게 해서 누님이 삐졌다고요. 에이, 내가 무슨 말을 많이 했다고 그래.”
“에헤이, 곰띨이 네가 말은 좀 길게 하잖아. 그건 그렇고, 우리 방송이 재미없을까 봐 내가 띨띨이 한 명 더 초대하려는 중이야.”
꼽사리가 고개를 바짝 들며 대들었어요.
“저, 띨띨이 아니라니까요!”
“아, 그래그래. 우리 귀여운 친구는 이름이 뭐야?”
“꼽사리요, 나꼽살.”
순악질 마녀가 대뜸 꼽사리의 손을 잡아 아래위로 막 흔들었어요.
“우아아, 꼽살아. 이름도 딱이네. 우리 방송 제목이 바로 나는 꼽사리다’
야. 너 제대로 한 번 꼽사리 껴 봐.”
“꼽사리는 내 이름인데, 무슨 방송이에요?”
꼽사리는 방송이라고 해서 좋아하는 미녀시대와 싸위와 슈퍼스타콩과 시크리뜨와 캬라를 줄줄이 떠올렸어요. 생각만 해도 몸이 움찔거리며 춤 본능이 막 솟구쳤어요. 하지만 꼽사리의 기대는 바로 이어진 마녀의 말에 와장창 무너져 내리고 말았어요.
“경제 방송인데 말이야, 아주아주 건강한 경제 방송이야. 99퍼센트의 보통 사람들을 위한 아주 중요한 방송이지.”
용띨 : 아파트가 왜? 아파트가 돈 잡아먹는 돼지라도 돼?
곰띨 : 바로 그거야. 돈 잡아먹는 돼지. 아파트는 월급을 왕창 잡아먹는 돼지야.
꼽사리 : 아, 좀 알아듣게 말해 주세요. 아파트가 왜 돼지예요?
꼽사리는 높은 의자 때문에 발이 땅에 닿지 않아서 흔들흔들하며 물었어요.
마녀가 지팡이를 챙 흔들자 의자가 쑥 내려앉았어요.
꼽사리 발도 땅에 사뿐 닿았고요. 꼽사리는 발은 안 흔들었지만 발가락은 마녀 몰래 꼼지락거렸어요.
호띨 : 그러니까, 야홍. 꼽사리 너희 집을 살 때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샀을 거야. 은행에서는 집값의 60퍼센트까지 빌려 주거든. 그 빚을 아빠 월급에서 갚으니 월급 먹는 돼지지.
곰띨 : 대강 너희 집이 3억쯤 한다고 쳐. 3억에서 60퍼센트 대출을 얻었다면 빚이 1억 8천만 원(3억× 60/100)쯤 될 거야. 1억 8천만 원에 대한 이자를 대충 낮게 잡아서 연간 6퍼센트 정도의 이자를 낸다면 1년에 1천80만 원쯤 되거든. 그걸 12개월로 나누면 한 달에 약 90만 원쯤 이자를 내야 해.
순악질 마녀 : 그런데 그 자영업을 왜 해?
호띨 : 다른 방법이 없는 거죠. 회사를 그만 뒀는데 나이가 많아서 다른 곳에 취업을 할 데는 없고, 퇴직금 조금 가진 걸로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조그마한 가게뿐이거든. 결국 너도나도 가게를 내니, 모두 힘들어지는 거지 뭐.
꼽사리는 누리 기분이 나빠진 건 아닐까 걱정됐지만 누리는 똘망똘망 열심히 듣고 있었어요.
용띨 : 더 웃기는 건 큰 재벌 기업들이 망해가는 그 작은 골목의 상점들까지 넘본다는 거야.
순악질 마녀 : 에휴, 벼룩의 간을 빼먹지.
곰띨 : 그것 때문에 말이 많았잖아. 은퇴하고 작은 빵집을 차렸어. 몇 년 힘들게 고생해서 돈이 좀 벌리기 시작해. 그런데 그 옆에 엄청난 자본을 가진 재벌 기업이 화려한 빵집을 턱 세운단 말이야. 재벌 기업은 돈이 많으니까 시설도 고급스럽게 꾸미고, 할인도 팍팍 하고, 이벤트도 많이 하면서 돈으로 밀어붙이잖아. 그럼 그 작은 빵집은 어떻게 되겠어. 곧장 망하는 거야. 심지어 작은 빵집 주인이 대기업 빵집 때문에 자살한 경우도 있어. 이건 싸움이 안 되는 일이거든. 거인과 꼬맹이처럼.
호띨 : 동네마다 있던 구멍가게들이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어. 전부 다 대기업이 하는 편의점 체인으로 바뀌어 있지. 그렇다고 편의점이 모두 잘 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야. 한 집 건너 한 집씩 편의점이 있으니 잘될 리가 없지, 이야홍.
곰띨 : 에헤이, 그렇다니까요. 서민들이 주로 가던 시장도 이제는 망해가잖아요. 다 대형 할인 마트 때문에 말이에요. 시장 가던 손님들이 모두 대형마트로 가니 시장은 망할 수밖에요.
호띨 : 시장하고 대형 마트는 아예 경쟁이 안 돼요. 대형 마트는 시설도 잘 만들었지, 물건을 대량으로 들여오기 때문에 싸게 들여올 수 있지. 그런데 시장은 시설이 그리 좋지 않은데다 작은 가게들이 모여 있으니 기업에서 공산품을 싸게 들여올 수도 없거든, 야홍.
꼽사리 : 그런데 왜 전통 시장을 이용해야 해요?
곰띨 : 에헤이, 그러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하나만 얘기할게.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사면 그 돈이 대부분 서울의 본사로 가서 지역 경제에 도움이 안 되지. 하지만 동네 시장이나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사면 그 돈이 기업에 가기도 하지만 일부는 다시 그 시장에서, 또 그 지역에서 돌고 돌기 때문에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거든.
꼽사리 : 그러니까 시장에서 물건을 사면 우리 같은 서민들에게 다시 쓰인다는 말이구나.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