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절박한 질문,
“왜 누구는 돕고, 누구는 돕지 않는가”
2014년 4월 16일 전라남도 진도에서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건은 대한민국 전체를 거대한 슬픔 속에 빠뜨렸다. 이 사건에서 무엇보다도 충격적이고 불가해했던 점은 승객들을 버려둔 채 배를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의 행동이었다. 왜 그들은 자신의 등 뒤에 있는 수백 명의 승객을 까맣게 잊은 채 탈출했을까, 어떻게 자식 같고 손자 같은 아이들을 외면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온 나라에 퍼져나갔고, 그 의문은 급기야 격렬한 분노로 이어졌다. 그런가 하면, 그 급박한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 있었다. 당시 배에 탔던 325명의 학생들을 인솔한 교사 대부분이 학생들을 구조하다 희생되었고, 아르바이트생과 몇몇 승무원이 승객을 구하기 위해 사투하다 세상을 떠났다. 그 모든 이름을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재난 한가운데서 자기 생명보다 타인의 생명을 우선했던 사람들에 대해 누구나 깊은 인상을 받는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뉜 인간 행동에 대해 우리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상황에서 왜 누구는 타인을 돕고, 누구는 돕지 않을까? ‘사람은 왜 도울까’라는 물음, 나아가 ‘사람은 왜 돕지 않을까’라는 의문은 이 시대가 요청받는 가장 절박하고도 간절한 질문이다. 사람이 타인을 돕는 행위는 우리가 살면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정신을 일깨우는 한편, 돕지 않는 행위는 절망적인 분노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이 양극단의 감정들이야말로 ‘돕는다는 행위’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표징이다. 낮은산 [사람은 왜] 시리즈 네 번째 권인 『사람은 왜 서로 도울까』는 돕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왜 인간은 서로 도울 수밖에 없는지 따지고 파고들어감으로써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탐구한 책이다. 이기적인 본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왜 이타성에 대해 완전히 외면할 수 없는가, 정말 순수하게 타인을 돕는 일이 가능할까, 사람이 사람을 돕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올까 등등 오늘날 우리가 반드시 답해야 할 질문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동안 독자들은 사람이 어떤 존재이며 나아가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주목받는 젊은 인문학자의 대담하고도 섬세한 접근
진화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의 메스로 해부하는 인간의 진실
전작 『분노사회』를 통해 현대인과 현대 사회의 기저에 자리한 분노의 근원을 경제학과 심리학적 담론을 넘어 철학적으로 파헤친 바 있는 인문 저자 정지우가 이번엔 “사람은 왜 서로 도울까”라는 질문에 주목했다. 사실 이 책은 2010년 초 기획된 이래 몇 차례에 걸쳐 다양한 분야의 저자에게 청탁되었으나, 교훈이나 당위로 빠져버리기 쉬운 주제의 미묘함, 논리적 전개의 어려움, 적절한 자료 및 사례 부족 등등의 한계에 부딪쳐 번번이 결실을 맺는 데 실패하곤 했다. 실로 ‘사람은 왜 서로 도울까?’라는 질문은 오랫동안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관심을 기울여 왔으나, 작정하고 파 들어가기엔 분명한 제약과 어려움을 안고 있는 주제였다.
“과연 돕는다는 건 무엇을 뜻할까요? 내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돕고 싶어서 도왔는데 상대방에게 피해만 주는 결과를 가져왔다면, 그건 도운 걸까요? 혹은 한 나라의 독재자가 국민을 핍박하여 경제가 발전했다면, 그래서 이후 세대가 발전한 경제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면, 독재자는 먼 미래의 국민을 도운 걸까요? 이처럼 ‘돕는다’는 문제는 그 정의에서부터 원인을 찾기까지 쉬운 일이 아닙니다. (……)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쨌든 모든 사람이 누군가를 도우며 살아간다는 점이고, 그것만큼 인간의 특징을 드러내는 사실은 없다는 점입니다.” -「들어가며」에서
정지우는 만만치 않은 이 주제를 매우 대담하고도 예리하게 돌파해냈다. 저자는 진화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이라는 두 거대한 담론이 앞세우는 ‘본능’과 ‘마음’이라는 개념을 사유의 정교한 메스로 삼았다. 먼저, 본능이라는 메스로는 생존과 번식이라는 대전제를 바탕으로 인간을 이기적인 동물이라 주장하는 진화심리학을 통해, 이 담론이 인간의 이타성을 바라보는 매력적인 관점과 동시에 인간의 이타성을 설명하는 데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조목조목 해부한다. 다른 하나 ‘마음’이라는 메스로는 우주상에서 오직 인간만을 정교한 언어 체계를 가진 존재로 보는 정신분석학을 들어 우리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고 또 조종당하는지 여러 각도로 파헤친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은 우리와 협력하는 내부의 본능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며, 우리 안의 낯선 존재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책 1, 2부에서 독자들은 현대의 가장 뜨거운 두 학문을 명쾌하게 관통하는 지적 충만감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나와 당신 사이에 놓인 “돕는다”는 이 단어!
“당신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눈부신 성찰
9.11 테러 직후 소설가 이언 매큐언은 '가디언'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비행기 납치범들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승객들의 생각과 느낌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면, 이런 일을 계획했더라도 끝까지 진행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의 마음에는 본능과 정신이라는 두 가지 커다란 영역이 존재한다. 인간은 때론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때론 자기 정신을 통해 행동한다. 보다 많은 경우에는, 그 두 가지가 매우 미묘하게 섞여 있어 구분하기 어렵다. 실제로 남을 돕는 행위에도 본능과 정신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얽혀 있을 때가 많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 두 가지 요소를 아울러 ‘공감적 상상력’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여기에서 공감은 본능적 요소이며 상상력은 정신적 요소로, 매큐언의 지적과 일맥상통하는 통찰이다. 진화심리학과 정신분석학으로 생각의 도구를 마련했다면, 마지막 부에서 저자는 철학적 접근으로 “사람이 돕는다”는 현상에 대한 사유의 폭을 확장해 나간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람이 돕는 이유를 ‘나 자신’에게서 찾았습니다. 그러나 ‘돕는다’라는 행위 속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행위에는 반드시 ‘누군가’라는 대상이 필요합니다. 나를 요청하는 그 누군가, 바로 타인이 없다면 ‘돕는다’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지요. (……) 나와 당신 사이에 놓인 ‘돕는다’라는 이 단어는 우리 삶의 정수를 말해 줍니다. 이 단어는 ‘나’라는 주어와 ‘당신’이라는 목적어가 있어야만 완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당신들이 ‘돕는다’라는 단어 저편에서 ‘나’를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이성과 상상력이 연합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상상력이 우리를 배반할 때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 평판이라는 세속의 기준이 우리를 어떻게 좌지우지하는지, 개개인의 정체성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완성되는지 저자는 풍부한 철학적 개념들과 함께 강력한 사례들을 제시함으로써 진화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의 주장을 넘어선다. 나아가 ‘타인’을 우리의 존재 조건이자 삶의 조건으로 규정함으로써, ‘돕는다’는 행위가 선택이 아닌 생존의 필수적인 기술임을 설득력 있게 펼쳐낸다. 독자들은 “사람은 왜 서로 도울까?”라는 질문을 탐구하는 여정에 동참하면서 ‘나’라는 존재, ‘살아간다’는 것이 ‘돕는다’는 것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 새롭게 깨닫는 한편, 책 말미의 에필로그를 통해 ‘개인’과 ‘사회’라는 개념을 저자만의 독창적인 해석으로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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