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미술사를 가르쳤다. 현재 시카고 뉴베리 도서관의 상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중세와 라파엘전파를 포함해 빅토리아 시대의 예술과 문화이다. 많은 미술 잡지와 일간지에 글을 썼으며, 유럽과 미국의 예술과 문화를 주제로 다양한 책을 펴냈다.
역자 : 김잔디
책과 씨름하면서 또 평생을 놀이하듯 즐겁게 살고 싶어 번역가의 길을 선택했다. 정확하면서도 따뜻한 여운이 남는 번역을 목표로 삼고 있다. 서울시립대학교 경영학부를 졸업하고, 글밥아카데미를 수료한 후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정원을 가꾸면서 그의 작품 세계도 발전했다. 모네는 지베르니에 정착하고 처음 몇 년은 화폭에 담아낼 장소를 찾아 노르망디 해안과 루앙, 리비에라 등으로 여행을 다녔다. 하지만 정원이 무르익어갈수록 자신이 찾던 것을 집에서 발견했다. 그는 화단을 색과 높이에 따라 분류한 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대규모의 정물화처럼 꾸몄다. 강렬한 자연광 아래에서 꽃을 관찰하여 싱그러운 색채의 향연을 표현했다. 무성한 풀과 나무, 꽃을 심고 굽이치는 둑을 만들었으며 구불구불한 길을 내어 물의 정원을 조성했다. - p. 14, '프롤로그' 중에서 모네는 점차 지베르니에서 그림 소재를 찾기 시작했다. 봄꽃의 아름다움에 푹 빠진 그는 과일 나무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할 때면 과수원에 이젤을 설치했다. 1887년에는 습지 근처에서 자라는 야생 아이리스에 관심을 돌렸다. 모네는 제한된 색조와 순수한 물감, 짧은 붓놀림 등 튤립 들판의 아름다움을 포착할 때 사용했던 방법을 다시 동원했다. 아이리스 들판을 그린 작품을 보면 안개 낀 보랏빛 언덕과 구름이 흩뿌려진 하늘을 배경으로 따뜻한 색감을 지닌 노란색 꽃이 차가운 느낌의 초록색 이파리 위에 솟아나 자연스럽게 밝은 색상의 띠를 이룬다. --- p.63
만년에 모네는 연못을 그리지 못하고 망설이던 때를 돌아보았다. 그는 “수련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인정했다. 모네는 수련을 심은 동기를 이렇게 말했다. “단순히 관상용으로 수련을 심었을 뿐이다. 전혀 그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는 벤치에 앉아 연못을 바라보며 조용하게 명상하면서 이 풍경을 단 하루 만에 습득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시간이 흘러 풍경에 친숙해지고 나서야 연못을 이해하게 되었고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을 포착해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연못에서 황홀한 광경을 보았다. 나는 바로 팔레트를 집어들었다. --- p.92
비평가 아르센 알렉상드르는 일반적으로 원예식물은 일주일이면 꽃이 지지만 “지베르니 정원의 꽃은 시들지 않는다”라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방에서 꽃의 축제가 새롭게 벌어지고 끊임없이 교체되도록 완벽하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화단이 특정 계절에 사그라질라 치면 갑자기 가장자리와 울타리가 환해진다.” --- p.164
모네가 젊었을 때 에밀 졸라는 그에게 눈으로 본 그대로 삶을 묘사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찬사를 보냈고, 주변 사물에 대한 강한 공감 능력이 앞으로도 작품 활동을 하는 데 기준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세월이 흐르고 모네는 자기 정원의 은신처에서 영감을 얻으면서 졸라의 예측을 실현했다. 그는 예술이란 자연 앞에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간단히 정의했으며 말보다는 자신의 작품에서 경이로운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 그는 자연 현상을 관찰함으로써 자신의 감각과 세계를 조화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우주가 내 앞에 펼쳐 보이는 광경을 보고 붓이 그것을 증언하도록 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