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혜숙 ruru100@yes24.com
노암 촘스키가 국내에 알려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현대 언어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촘스키는 변형생성 문법으로 이미 언어학계에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96년 번역 출간된 정치비평서『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통해 그의 비판적 면모가 부각되며 일반인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치학, 철학, 언어학 등 다방면에 걸쳐 왕성한 지적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단호한 그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당신은 언어학자이면서 어떻게 강력한 사회비평가가 될 수 있었나요?"
"그런 질문이 왜 필요하지요? 그럼 목수일을 하는 사람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가요? 그건 목수냐 인간이냐, 라는 질문과 같은 이치입니다. 목수는 목수일만 해야 하고 인권에 관심을 기울이면 안 되는 건가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정치적 훈련을 받은 사람만이 정치적 언급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흔히 미국인이면서도 미국의 패권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지식인으로서, '미국의 양심', '미국의 골치 덩어리'라는 극단적 닉네임을 얻고 있는 촘스키는 현학적이고, 거시적인 표현보다는 직선적이고 강렬한 표현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를 '천성적 은둔자'라고 할만큼 일반인 앞에 나서길 꺼리는 촘스키는 그 동안 미국의 제국주의적 대외정책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을 해 왔고, 그 바탕에 미국의 보수적인 언론과 다수의 이익에 반하는 소수의 지식인 사회가 있다고 폭로한다. 그렇기에 그는 미국 내의 진보적인 젊은이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는 한편, 미국정부나 언론 매체, 심지어 출판사로부터도 철저히 외면을 당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출연하는 강연장은 늘 만원을 이루고 있고, 그는 전세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물론 그의 인기의 상당 부분을 세계적인 언어학자로서의 명성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쓴소리가 많은 공감을 일으키는 것은 강대자의 지배논리를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대변해 주기 때문이다.
촘스키의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는 콜롬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지 500년이 된 다음해인 1993년, 미국에서 『year 501』로 출간된 책의 국내 번역판이다. 이 제목은 포루투갈과 스페인에서 시작되어 네덜란드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어지는 식민 정복의 역사를 의미하며 그것은 500년으로 끝나지 않고 『year 501』로 계속 이어져 오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다시 촘스키가 책을 출간한 이후에도 전혀 변하지 않은 세월을 더해 '507년'이란 이름으로 국내 출판되었다.
이 책에서 홈스키는 허울좋은 수사 아래 미국이 풍요한 자원과 잠재력을 지닌 중남미 대륙과 아프리카, 아시아를 경제·정치적으로 어떻게 식민지화 했는지 보여주며 "도덕이란 총구로부터 나온다"는 미국의 오만한 역사의식을 비판한다.
또한 촘스키는 제 3세대 민중뿐만 아니라 강대국의 민중들도 서구 제국주의의 피해자이며, 기업-정치-언론-문화계 등으로 이뤄진 기득권층의 교묘한 선전으로 국민 대다수의 인권이 억압당하며 진실이 은폐되었다고 설파한다.
"시장원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선택적으로 적용될 뿐 초국적 기업은 그 원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부유한 특권층은 공적 자금의 지원을 받고, 그에 따른 비용과 위험 부담은 모두 사회로 이전된다. ……IMF는 외환위기에 처한 나라들을 구제한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투자가들을 구제한 것이고, 해당 국가의 국민에게 극심한 비용을 전가함으로써 은행가와 투자가들만 이익을 보게 했다. ……결국 경제 세계화는 국민 대다수가 소수 특권층의 부를 위해 일하는 이중의 사회 구조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촘스키는 매우 직설적인 표현을 쓰고 있으며 또한 냉소적인 반어법도 그의 독특한 어투이다.
"기득권층은 비천한 대중의 마음으로부터 그들 '스스로 운명을 지배'하겠다는 발상을 확실하게 내쫓아야 할 임무를 지니고 있다. 개인 한 사람 한사람은 고립된 선전 공세의 대상으로서, 정부와 사기업이라는 외부적, 적대적 두 세력에 맞서지 못하도록 무력화해야 한다. 정부와 사기업은 사회적 삶의 기본 성격을 결정할 신성한 권리를 지닌다. 게다가 두 세력 중 후자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사기업의 권리와 권력은 일반 대중이 도전할 수 있는 영역밖에 존재해야 할뿐만 아니라 자연 질서의 한 부분으로써 눈에 띄지도 않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방향으로 꽤 멀리 여행해온 것이다. "
촘스키의 이러한 주장이 단순히 과격한 반미·반제국주의에 그치지 않고, 강한 설득력을 갖는 것은 철저한 자료조사 결과를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촘스키는 방대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주장의 근거를 마련하고 있으며 한국 상황에도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이 책에서도 인도주의를 내세웠던 카터 행정부가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한국 국민들의 요청을 거부하고 전두환 정권에 경제 원조를 아끼지 않았던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 또한 한국이 중남미와 달리 나름대로 경제 기적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서구가 강요하는 자유주의 경제 원칙이 아니라 국가 중심의 강력한 계획 경제 덕분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결국 촘스키가 제시하는 해결대안은 무엇인가. 그는 개인의 중요성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인간을 도구가 아닌 목적으로 받아들이자고 호소한다. 희생자의 운명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연대'에 기대를 걸며 '민중의 행동주의'를 강하게 역설한다. 그러나 소련 공산주의 체제에도 찬성하지 않는 촘스키의 정치·실천적 입장은, 그의 명확한 비판만큼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편이다. 그것이 무정부주의자로 불리우는 촘스키가 오늘날 받고 있는 비판이며 사회적 실천력을 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이다.
추상적 거대 담론이 아닌 명확한 현실 비판과 근거를 통해 뱉어 내는 촘스키의 거침없는 쓴소리는 자못 속시원한 느낌마저 들지만 우리가 주의할 것은 그의 담론이 제시하는 틀에 한정되어 미국과 강대국을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진보적 지성이 주는 담론에 힘입어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아야 하고, 우리의 행동을 이끌어 내야 한다. 촘스키가 제시하는 '제 3의 시각'은 바로 '우리의 시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