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감독이 집중한 이미지 중에 시신에 파리가 들끓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김 노인이 생전에 홀로 밥을 떠먹는 장면에 더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김 노인이 밥상을 차리고 대접에 담긴 갱죽을 떠먹으려 할 때 밥상으로 날아드는 파리 한 마리가 클로즈업됐다. 김 노인은 갱죽을 먹다 말고 떨리는 손으로 파리채를 쥐고 허공을 갈랐다. 파리는 김 노인의 손짓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밥상을 맴돌았다. 그러더니 김 노인 몰래 앞발을 반찬 그릇 테두리에 걸치고 고꾸라질 듯 머리를 숙여 멸치볶음의 당분을 빨아먹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파리가 김 노인의 친구 같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 친구가 김 노인의 임종을 지켰다. --- p.17
요리사는 빠르게 움직였다. 숨을 헐떡이는 요리 재료를 스테인리스 조리대에 단단히 묶었다. 요리사는 활처럼 휜 4인치 길이의 칼로 요리의 재료를 목부터 하복부까지 한 번에 그었다. 맑은 로즈핑크빛 피가 스테인리스 조리대 홈을 타고 흘러내렸다. 피는 조리대 아래 받쳐둔 하얀 플라스틱 쓰레기통으로 떨어졌다. 요리사는 피가 어느 정도 빠지기를 기다렸다. 별장 정원에서 유리잔 부딪치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하얀 플라스틱 쓰레기통에 순식간에 피가 가득 찼다. 바람이 불었다. 벚꽃잎이 어지럽게 날리면서 향긋한 냄새가 퍼졌다. 사내들이 접시에 떨어진 벚꽃잎을 입으로 불어댔다. 유리잔 부딪치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줄곧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