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소개 >
잉마르 베르히만 Ingmar Bergman
스웨덴 웁살라의 목사 집안에서 태어나 엄격한 규율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이같은 환경으로 부모님과의 다툼과 오해는 그를 종교적 신념에 대한 회의로 몰아갔다. 청년기를 연극무대에서 보낸 베리만은 1946년 <위기>를 통해 감독에 데뷔했다. <모니카와의 그 여름>, <한 여름밤의 미소> 등 그의 초기작들은 주로 각양각색의 남녀들이 벌이는 연애담이었다. 19세기 실내극의 영향을 받은 이 작품들은 베리만에게는 일종의 상업적 타협과도 같은 것이었다. <한 여름밤의 미소>가 칸영화제 '시적 유머상'을 수상한 뒤, 베리만은 여러 번 거절당했던 시나리오 <제7의 봉인>의 제작비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57년, 유럽 영화계는 신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며 죽음과 맞대결을 선언한 이 전대미문의 작품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스웨덴에서 온 이 젊은 감독은 영화가 철학적 사유의 매체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같은해 말 등장한 <산딸기>는 베리만을 모더니즘 영화의 선구자로 자리매김시켰다. 펠리니, 안토니오니, 그리고 프랑스 누벨 바그 감독들과 함께 유럽 영화계가 변화를 꾀하고 있던 때였다. <제7의 봉인>에서 신학적 주제에 몰두했던 베리만은 <산딸기>에서 좀더 본격적으로 죽음의 문제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 환상과 실재를 부드럽게 넘나드는 이 영화의 스타일은 베리만 후기작들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60년대 초반, 베리만은 ‘신의 침묵’ 3부작(<어두운 유리를 통해>, <겨울빛>, <침묵>)을 통해 자신의 영화 세계를 집약해냈다. 양차대전을 겪은 유럽의 불안한 사회적, 역사적 상황 속에서 신은 그저 침묵하고 있을 뿐이었다. 신앙은 붕괴됐으며 삶은 부조리와 고통으로 가득 찬 것에 불과했다. 놀랍게도 베리만은 96년 출간한 회고록 <잉그마르 베르이만의 창작노트 Bilder>에서 이 3부작을 "술 취했을 때 떠올린 생각일 뿐 맨정신일 때도 계속 유지되지는 않는 아무런 근거 없는 개념"이라고 단정지었다. 그러나 개인의 삶과 신앙의 역학관계를 집요하게 추적했던 당시 베리만의 작품들은 실존주의 철학과 맞물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60년대 후반부터 베리만은 자신의 영화적 주제에 여성을 끌어들였다. 연극 공연중 침묵에 빠진 한 여배우와 간호사의 만남을 통해 모성과 어머니의 역할, 여성의 자기 정체성에 물음을 던진 <페르소나>(66)가 바로 그런 작품. 2년 뒤, 유럽은 68년 혁명과 베트남전을 경험하면서 더욱 광포한 공간으로 변모해갔다. 러시아와 스웨덴 사이에 있는 포뢰섬을 배경으로 한 ‘악마의 삼부작’(<늑대의 시간> <수치> <정열>)은 그런 상황을 목격한 베리만의 심리적 분열을 반영한다. 이후 베리만은 다시 초기의 실내극으로 돌아갔다. 72년작 <외침과 속삭임>은 죽어가는 한 여성을 둘러싼 세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치밀한 심리극이다. <제7의 봉인> 이후 그가 끈질기게 매달려왔던 ‘죽음’에 대한 실존적 고민이 비로소 여성들의 삶을 포용해낸 것이다. 잉그리드 버그먼의 유작인 <가을 소나타>(78) 역시 어머니와 딸의 뼈아픈 재회를 소재로 예술가에 대한 베리만의 자기 성찰을 담아낸 작품이다. 잉마르 베리만은 83년 <화니와 알렉산더>를 끝으로 영화계를 공식 은퇴했다. 96년 국내 개봉된 바 있는 이 영화는 유례 없이 낭만적이고 화사한 톤으로 어느 대가족의 희로애락과 한 소년의 통과의례를 다룬다. 베리만은 74년부터 탈세 혐의로 구설수에 올랐는데, 사건이 잠잠해진 78년 경 어떤 안도감과 해방감에서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베리만은 청년기에 매료되었던 스트린드베리와 입센의 희곡을 무대에 올리며 지금까지 연극 연출에 몰두하고 있다. 40여 년 간 영화계에 몸담으면서 폭력과 고통에 얼룩진 세상을 염려했던 베리만은 신으로부터 구원을 갈망했으나 번번이 좌절하는 듯했다. 현대 영화사에 새로운 좌표를 그린 그의 작품들은 스크린 위에 쓴 형이상학이라 할 만했다. 물론 그의 형이상학은 언제나 인간의 삶에 밀착해 있었다. 리브 울만의 <불신>을 통해 그가 까마득한 젊은 날의 쓰라린 흉터를 어루만지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지. 98년 <불신>의 영화화와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베리만은 "카메라 옆으로 물러서는 것도 괜찮다. 연출은 그만뒀지만 글쓰기는 재미있고, 내가 살아있는 한 이 일은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 7월 30일, 발틱해 연안의 파로섬의 자택에서 편안한 모습으로 숨을 거뒀다. 향년 89세. 수상경력 1955년 칸느 영화제 시적 유머상(한 여름밤의 미소) 1956년 칸느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제7의 봉인) 1957년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산딸기) 1958년 칸느 영화제 감독상, 여우주연상(생명에 가까이) 1960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칸느 영화제 비평가 연맹상(처녀의 샘) 1961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어두운 거울에 비치듯이) 1972년 아카데미 촬영상, 칸느 영화제 고등기술 위원회상(외침과 속삭임) 1983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촬영상, 미술상, 의상상(화니와 알렉산더)
< 줄거리 >
■제7의봉인 The Seventh Seal
감독 : 잉마르 베르히만
주연 : 거너 본스트랜드
언어 : Swedish, English
자막 : Korean, English
런닝타임 : 96분
관람등급 : 12세 이용가
제작노트 :
페스트가 창궐했던 14세기를 배경으로 죽음의 사자와 대결하는 기사의 여정을 통해 신의 존재와 인간 구원을 고통스럽게 되묻는 작품. '제7의 봉인'은 요한계시록의 이야기에서 따온 것으로 종말을 상징하는 7개의 봉인 중 마지막 봉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칸느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
페스트가 유행하는 종말적 세상을 근거로 한 중세에서, 현대에도 통하는 죽음의 문제를 더듬는다. 원정에 실패한 십자군의 기사가 인생에 회의를 품고 여러 나라를 편력한다. 종교에서 해답을 구하는 기사의 비장한 모습을 고전 양식의 화면에 드라마틱하게 묘사한 수작. 이 영화 이후로 베르히만은 인간의 실존적 위기를 정면에서 다뤄낸 일련의 작품들로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 묻지 않는 세대에 대한 탄식같은 이 영화는 발표 당시 핵전쟁과 인류의 멸망을 상징하는 우화로 해석되기도 했다.
베르히만은 이 영화의 영감을 루터교 교회의 벽면에 표현된 죽음의 기억들에서 얻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이 영화는 중세의 프레스코 벽화에 나타난 이미지를 밖으로 끌어내어 강하고 힘있는 이미지로 채워져있다. 죽음과 기사가 해변가에 앉아 체스를 두는 이미지나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죽음의 사자가 중세의 토텐탓츠(죽음의 춤)을 추는 죽은 자들을 이끌고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 가는 모습 등은 이미 전설적인 영화의 명장면이 되었다. 베르히만은 캐스팅에도 대단한 공을 들임으로써 극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키가 크고 마른 체격의 젊은 막스 폰 시도우는 수척하고 지쳐 보이며 흑백의 카메라 워크 아래서 그의 금발은 눈처럼 하얗게 보인다. 기사의 종자로 등장하는 거너 비욘스트란드 역시 베르히만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배우로 그가 주는 귀족적인 느낌에서 벗어나 무례하고 냉소적인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죽음'의 역을 맡은 벵크트 에커롯 역시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는데 베르히만은 차분함이 돋보이는 그의 얼굴이 마음에 들어 캐스팅했다고 한다
- 칸느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
줄거리 :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다가 돌아온 안토니우스 블로크는 흑사병이 만연하여 죽음의 땅이 되어 있는 고향 스웨덴의 해변에서 죽음의 방문을 받는다. 자신을 `죽음`이라고 소개한 그에게 안토니우스 블로크는 체스 내기를 하고, 죽음은 그에 동의한다. 만일 죽음이 이긴다면 그를 따라 나설 것이요, 기사가 이긴다면 죽음이 물러가야 한다. 승산이 없는 내기에서 정말로 블로크가 원하는 것은 체스가 진행되는 동안을 말미암아 신으로부터 구원에의 확신을 얻는 것이다. 죽음으로 끝나게 될 삶의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기사는 교회를 찾아가기도 하고 마녀로 낙인이 된 소녀 옆을 지키기도 하지만 어디에도 죽음만이 보일 뿐, 신의 구원을 찾을 수 없다. 기사는 광대부부와 미카엘이라는 아이를 보며 잠시 충만한 평화를 느낀다. 그들을 지키기 위해 동행을 자처한 기사는 자신의 시종 옌스와 그를 따라나선 여인과 일행을 이루어 길을 떠난다.
■산딸기 Wild Strawberries
감독 : 잉마르 베르히만
주연 : 빅터 소스트롬
언어 : Swedish, English
자막 : Korean, English
장르 : 드라마
상영시간 : 91분
관람등급 : 12세 이용가
제작노트 :
한 평생을 의사로 살아온 노교수가 몇일간의 여행을 통해서 인생을 조감해 보는 내용의 작품. 전작 <제7의 봉인>에서는 신의 부재를 물었던 베르히만이 이 작품에서는 인간의 사랑과 증오, 삶과 죽음이라는 테마에 날카롭게 파고 들었다. 유작이 된 세스트렘의 명연기도 잊을 수 없다. 제목인 '산딸기'는 스웨덴 사람들에게 봄의 시작, 생명의 부활을 의미한다고. 58년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 수상. 명우 막스 본 시도가 단역으로 출연한다.
이 영화는 베르히만 영화의 주요 모티브인 꿈이 등장, 계속되는 플래시백 효과를 차용함으로써 연극과 초현실주의적 양식 사이에 걸친 그만의 영화적 실험이 시도된 작품이다. 현실보다 더 생생한 과거와 과거라 믿기 어려운 현실 장면이 오버랩되며 꿈과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이 기록된다. 꿈에서 시작된 아이작의 여행은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이며 동시에 다가오는 죽음을 벗어나려는 도망의 길이다. 베르히만은 이 영화를 통해 죽음에 대한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을 안고 있는 인간과 그것을 구원해줄 수 없는 신의 무기력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의 부재를 확인한 순간 긴 여행을 떠난 인간은 자신의 죽음과 마주하게 된다. <산딸기>에서 베르히만 감독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는 인상적인 표현방식을 선보인다. 초침도 없는 시계가 나오고 늙은 교수는 자신의 유년시절로 직접 들어간다. 베르히만은 여기서 영화가 시제와 공간을 얼마나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예술인가를 실험하고, 또 증명한다. 현실보다 더 생생한 회상 장면 속에는 현실과 과거 시제가 절묘하게 겹친다. 이 작품은 가야 할 길은 멀고 어둡기만한 한 인간의 비극적 존재론이다
- 58년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 수상 -
줄거리 :
이삭은 명예학위를 받으러 룬드로 여행을 떠난다. 남편 에발트와 떨어져 이삭의 집에 있던 며느리 마리안은 남편을 만나러 가기 위해 여행에 동행하고 이탈리아로 떠나는 3명의 젊은이가 합승을 한다. 그 여정의 와중에 이삭은 마리안을 통해 자기 아들과의 관계를 돌아보게 되고 그가 사랑했던 여자와 이름이 같은 여자 아이, 사라를 통해 과거를 회상한다. 사실 그의 이 여행은 죽음을 향한 여정이며 동시에 죽음에서 도망치기 위한 여정인데…
■한 여름 밤의 미소 Smiles Of A Summer Night, Sommarnattens Leende
감독 : 잉마를 베르히만
주연 : 울라 제이콥슨, 에바 달벡
언어 : Swedish
자막 : Korean
장르 : 멜로, 코메디
관람등급 : 전체관람가
상영시간 : 104분
제작노트 :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 밤의 꿈'을 바탕으로 일시적이면서도 로맨틱한 사랑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알면서도 즐거운 그 분위기를 거부하지 못하는 부르주아들의 습성을 고상한 풍자와 번득이는 재치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웨딩>, 이다미 주조 감독의 <장례식> 등의 군상극에 큰 영향을 미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변호사, 19세의 신부, 옛애인, 전처의 소생 등 이들 넷이 사랑의 원무곡을 펼친다.
줄거리 :
한 세기가 시작된, 어느 작은 마을. 중년의 변호사, 프레데릭 에게르만(군나르 비요른스트란트 분)은 자신보다 훨씬 어린 아내이자 두 번째 부인, 앤(울라 야콥손 분)이 자신을 남자가 아닌 아버지처럼 좋아한다는 사실로 인해 결혼 생활이 불만족스럽기만 하다. 결국, 프레데릭은 아내 몰래, 옛 연인이자, 배우인 데지레 아름펠트(에바 달벡 분)를 찾아가지만, 그곳에서 그녀의 현재 애인인 말콤 백작(야를 큘레 분)과 만나게 된다. 두 남자가 논쟁을 벌이는 중에, 데지레가 낳은 사생아의 아버지가 프레데릭임이 밝혀지고, 당황한 프레데릭은 데지레에게 아이를 키우기에 적합치 않다고 말했다가 따귀를 얻어맞고 만다. 프레데릭이 가고 난 후, 데지레는 말콤 백작과 말다툼 끝에 자유분방한 어머니를 찾아간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결혼 한 후,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말해준다.
데지레는 모든 문제를 풀기 위해, 하지 축제 이브에 친구들을 초대해 달라고 부탁한다. 데지레의 어머니는 마지못해 딸의 요청을 수락하고, 프레데릭과 아내 앤, 말콤 백작과 그의 부인 샬롯데, 그리고 프레데릭의 장성한 아들 헨릭과 하녀 페트라 등이 저택에 모인다. 저택에 도착한 손님들은 저녁 식사를 대접받는데, 음식 속에는 자극적인 사랑의 묘약이 섞여있다. 프레데릭은 아들 헨릭과 앤이 묘한 분위기라는 사실을 감지하고, 백작부인은 자신이 프레데릭을 유혹할 수 있다면서 남편과 여러 사람들 앞에서 내기를 건다. 그렇게 얽히고 설킨 관계들 속에서 에로틱한 저녁 식사가 진행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