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그대에게 왕관을 씌우기도 하지만 십자가를 지우기도 한다. 사랑은 그대를 성장시키기도 하지만 그대를 베기도 한다. 사랑은 저 높은 곳에서 햇빛을 받아 떨고 있는 연약한 그대의 가지를 어루만지기도 하지만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와 땅속에 들러붙은 뿌리를 흔들어놓기도 한다. 사랑은 곡식단을 거둬들이듯 그대를 거둬들일 것이며, 사랑은 그대를 타작해 벌거벗게 할 것이며, 사랑은 그대를 체로 걸러 껍질을 털어버릴 것이며, 사랑은 그대를 갈아 순백의 가루로 만들 것이며, 사랑은 그대를 부드러워질 때까지 반죽할 것이다. 그런 뒤 사랑은 그대를 성스러운 불꽃 위에 놓을 것이다. 신神 의 신성한 향연을 위한 빵이 될 수 있도록. --- p.16~18
서로 사랑하라. 허나 사랑으로 속박하지는 말라. 사랑이 두 영혼의 해안 사이에 일렁이는 바다가 되게 하라. 서로의 잔을 채우되 한쪽 잔만 마시지 말라. 서로에게 빵을 주되 한쪽 빵만 먹지는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되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라. 비록 류트의 줄들이 함께 울려 하모니를 이루더라도 각기 줄이 다르듯이. 서로에게 마음을 주어라. 그러나 그 마음을 소유하려 들지는 말라. 오직 생명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마음을 간직하리니. 함께 서 있으라. 허나 너무 가까이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사이프러스도 서로의 그늘 아래서는 자랄 수 없듯이. --- p. 21~22
그대들 중 어떤 이는 말한다. “기쁨은 슬픔보다 더 위대하다”고. 또 어떤 이는 말한다. “아니다, 슬픔이야말로 위대하기 그지없다”고. 허나 내 그대들에게 말하노니, 그 둘은 서로 분리할 수 없다. 그 둘은 함께 오며, 한쪽이 그대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면, 다른 한쪽은 그대의 침실에서 잠들어 있음을 기억하라. 진실로 그대는 기쁨과 슬픔 사이에서 저울추처럼 매달려 있나니, 그대들은 오직 비어 있을 때만이 균형을 이루게 된다. 보물지기가 금과 은의 무게를 달듯이 그대를 들어 올리면, 그대들의 기쁨과 슬픔은 쉼없이 오르내릴 것이다. --- p. 40
춤추는 이를 시기하는 저 절름발이에게 뭐라고 말하겠는가. 자신의 멍에는 사랑하면서 숲속의 사슴이며 순록들을 길 잃은 떠돌이로 여기는 황소에게 무어라 하겠는가. 제 허물은 벗지 못하면서 세상의 모든 뱀들에게 벌거벗은 채 부끄럼도 모르고 다닌다고 하는 늙은 뱀에게 무어라 하겠는가. (중략) 내 이들에게 무어라 말하겠는가. 이들도 햇빛 아래 서 있지만 태양을 등지고 서 있다는 것 외에. 이들은 자기 그림자만 볼 뿐이며 그 그림자가 이들에겐 법인 것을. 이들에게 태양이란 단지 그림자를 드리우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을. 이들이 법을 따른다는 것은 몸을 웅크려 자신의 그림자를 쫓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