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그곳을 만나다
고등학교 1학년 국어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당시 국어를 가르쳐 주시던 시인, 황명 선생님의 수업 시간을 잊을 수 없다. 수업 시간마다 저음의 운치 있는 목소리로 들려주시던 선생님의 문학 이야기는 한 소년이 문학을 꿈꾸게 하는 힘이 되었고, 교단에 서서 아이들에게 문학 이야기를 들려주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두툼한 뿔테 안경 너머로 창가에 서서 문단의 뒷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신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면 소재지의 작은 시골 학교에서 처음 교단에 서고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학교의 동료 국어 교사들과 문학 기행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답사를 시작한 것도 그새 15년이 넘었다. 지도 한 장에 몸을 의지하고 길을 찾아 나섰던 일이나, 생가의 안마당에 텐트를 치고 밤하늘을 이불 삼아 잠을 청하던 일이나, 산길을 향해 차를 몰고 두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곳이 처음 출발점이었던 황당한 기억들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진다.
이제는 여행의 개념도 바뀌어 여행 이상의 가치가 있는 테마가 있는 여행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 책에서는 여행의 테마를 ‘문학 교육’으로 삼았다. 문학은 모방이라고 했던가. 문학은 아름다운 자연을 모방하고, 사람들이 순박하게 살아가는 삶을 모방하면서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거울과 같은 것이다. 문학의 향기가 묻어나는 작가의 고향을 따라 여행하면서 그 속에 담긴 작품 속의 이야기를 만나려 한다. 이 책은 시조와 한시, 가사 문학으로 대표되는 고전 문학과 현대 시와 소설, 수필로 대표되는 현대 문학까지 다양한 작가와 작품을 다뤄 단순한 여행서가 아닌 문학 교육의 지침서가 되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최근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이 되어 지역 문화 알리기의 일환으로 많은 문학 관련 유적들이 조성되거나 복원되고 있다. 지자체의 노력으로 비교적 성공적인 결실을 얻은 지역으로는 제1호 문화마을로 지정된 메밀꽃의 고장 이효석의 봉평, 실개천이 흐르는 정지용의 옥천, 선운사의 동백꽃이 아름다운 서정주의 고창, 충절의 고장인 한용운의 홍천 등을 들 수가 있다. 그 외에 기억에 남는 답사지로는 김삿갓의 은거지였던 영월, 송강가사의 산실이 된 담양, 채만식의 탁류 속에 흐르는 군산, 백마강가에 자리 잡은 신동엽의 부여, 상록수의 배경과 집필 장소가 된 심훈의 당진, 자연에 은둔하며 오우가와 어부사시사를 지었다는 윤선도의 해남과 보길도, 난초 향기 은은한 이병기의 익산, 미완의 대작 임꺽정의 저자인 홍명희의 괴산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책은 모두 21곳을 골라 작가의 고향 이야기를 담아냈다. 수록할 작가를 선정하는 데에는 비교적 작가와 작품에 대한 흔적이 많은 시와 군을 선정하였다. 그리고 중·고등학교의 국어 교과서와 18종 문학 교과서에 작품이 수록된 작가를 선정하여 작품의 배경이 된 곳, 작가의 생가나 문학비, 문학관, 묘소 등이 있는 곳을 수록하였다. 또한 문학 교과서를 중심으로 작가의 작품을 분석하여 대표작을 소개하였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작가의 고향에서 만난 소박한 고향 사람들을 비롯하여 작가에 대한 뒷이야기와 소중한 정보를 친절하게 제공해 준 각 문화원의 원장님과 사무국장님, 귀중한 자료를 건네주며 사진 촬영에 협조해 주신 각 문학관의 간사님과 해설사님, 바쁜 중에도 시간을 허락해 주신 작가의 유족과 후손, 각 시청과 군청에 근무하는 문화관광 담당자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이 분들의 귀중한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면 이 책의 제작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울러 원고를 쓸 때마다 최초의 독자가 되어 준 아내와 가족들, 책의 기획에서 편집, 제작에 이르기까지 정성을 다해 준 북케어 서민철 실장님과 마로니에북스 담당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