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의심하는 주체’가 되어야 해. ‘의심하는 주체’는 끊임없이 정답을 요구하는 세상 자체를 거대한 문제로 괄호 치는 사람이지. 가령 ‘취업 9종 세트’ 같은 것들을 말이야. ‘취업 9종 세트’에는 학벌, 학점, 외국어(여기까지 3종), 어학연수, 자격증(여기까지 5종), 공모전, 인턴 경험(여기까지 7종), 봉사활동, 성형수술 등이 포함되지. 이 모두에 대해서 질문해 볼 수 있을 거야. 과연 학벌이 경쟁력일까? 설사 그렇다 해도, 지나친 학벌 경쟁으로 인해 오히려 경쟁력이 떨어지는 측면은 없을까? 더 나아가, 경쟁력은 무조건 경쟁할수록 올라갈까? 혹은, 현재의 경쟁 체제는 누구에게 이롭고 누구에게 해로울까? 다수에게 불리한 경쟁 체제는 왜 유지될까? 질문은 끝없이 이어지지.
--- p.17~18
사람들은 뭐든 얼굴과 관련지어 생각하고 판단해. 거지도 잘생기면 얼짱 거지이고, 심지어 강도가 예뻐도 얼짱 강도가 되지. 도둑질은 분명 나쁜 행동일 텐데, 도둑질은 잊히고 얼굴만 기억되는 거야. 얼짱, 몸짱, 동안, S라인, V라인, 꿀벅지, 베이글, 개미허리, 명품 다리, 착한 몸매, 미친 몸매 등의 말들이 세상을 휩쓸고 성형 열풍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지. 그야말로 한국 사회는 외모지상주의에 포위당했어. 소설가 박민규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자본주의의 바퀴는 부끄러움이고, 자본주의의 동력은 부러움”(308쪽)이라고 말했지. 그 말을 빌리자면, 외모지상주의의 바퀴는 자기 얼굴에 대한 부끄러움이고, 외모지상주의의 동력은 남의 얼굴에 대한 부러움이지.
--- p.31~32
강자는 약자를 통제하기 위해 감금과 억압에 보호의 가면을 씌우지. 그러나 약자를 위한 진정한 보호가 아니기 때문에 그 보호는 허술하고 가변적일 따름이야. 즉, 약자는 강자의 변덕에 자신의 안전을 맡겨야 할 운명이지. 약자에게 필요한 것은 형식이나 이름뿐인 보호가 아니라 자유와 권리의 보장이야. 너희도 마찬가지겠지. 어른들은 너희를 미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여기면서 보호의 울타리를 치곤 하지. 그러나 보호를 내세우기 전에 자유와 권리부터 확실히 보장해야 해. 그것이 진정한 보호의 시작이지.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않는 보호는 진짜 보호가 아니야. 그런 보호는 강자가 약자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어른들은 어른들의 입장에서 청소년을 미숙한 존재로 재단하기 앞서, 청소년의 입장에서 자기들이 가진 비非청소년적 시각의 한계를 돌아봐야 해.
--- p.226
학교에서건 사회에서건 너희가 하인이 아니라 주인이 되려면, 당연히 어른들도 생각을 바꿔서 적극적으로 거들어야겠지.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너희의 태도와 의지야. 어른들이 해 주기만을 기다려선 안 돼. 뒷짐 지고 앉아서 기다린다고 달라지는 건 없지. ‘울어야 젖을 준다’는 말이 있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거저 오지 않아. 공짜는 없어. 권리는 맞서 싸울 때 내 것이 될 수 있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말처럼, 뒷짐만 지고 있어선 안 되고 적극적으로 맞서 싸워야 해. 너희가 너희 권리를 침해한 행위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런 행위를 용인하고 부추기는 결과를 낳게 돼. 잘못된 행위가 저지되지 않는다면 그 행위는 계속될 거야. 즉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너희의 후배들이 너희와 똑같이 권리를 침해당하겠지. 너희의 싸움이 너희만을 위한 싸움이 아닌 이유야. 그 싸움은 현재를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미래를 향한 것이야.
--- p.231~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