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이번 여행에서 정조 임금을 만나게 될 거란 생각이 들자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가는 길이 이틀, 오는 길이 다시 이틀, 무려 천팔백 명의 사람이 한꺼번에 열을 지어 창덕궁에서 화성행궁까지 걸어가게 되지.”
은솔이는 행차에 동원된 사람이 무려 천팔백 명이나 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어요. 운동회나 학교 축제 때 전교생이 모인 걸 떠올려 봐도 그만큼은 되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 p.17
“까마귀처럼 본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지오가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습니다.
“저 아래는 임금님 행차를 한 치라도 더 가까이서 보겠다며 며칠 전부터 진을 친 구경꾼들로 북새통이지. 그런 사람들은 벼룩처럼 보려는 사람들이다.”
선비님 대답이 갈수록 알쏭달쏭 알 수가 없습니다.
“벼룩처럼 본다는 건 또 무슨 뜻인가요?”
은솔이도 물었습니다.
--- p.26
‘맞아, 이 시대 백성들에게 임금님과 직접 만날 일은 한평생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을 거야.’
가끔 광장이나 국회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텔레비전에서 본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현대에는 억울한 일이 생기면 인터넷으로 자기 사연을 올릴 수도 있고, 일인 시위를 하거나, SNS를 사용해 널리 퍼뜨릴 수도 있지요. 조선시대에 힘없는 백성이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만약에 포도청이나 고을 관청에서도 나 몰라라 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정말 억울한 사람일지도 몰라.’
찬이는 한 번 더 깊게 생각하게 된 자신이 어쩐지 뿌듯했습니다.
--- pp.44-45
잠시 후, 임금님이 직접 어머니를 모시고 나왔습니다. 혜경궁 마마의 얼굴은 백짓장처럼 새하얬습니다. 32년간 참아 왔던 눈물을 폭포처럼 쏟아 내고는 모든 감정이 메말라 버린 듯했습니다. 가면을 쓴 사람처럼 얼굴에서 아무런 표정도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커다란 슬픔이 밀려 왔다 사라진 그때 이후로, 혜경궁 마마는 웃지 않았습니다.
--- p.76
그런데 갑자기 학이 이상해졌습니다! 무슨 몹쓸 병이 들었는지, 미친 듯이 날개를 푸드덕대다가 몸서리치며 부리를 흔들고, 새 발을 본 따 만든 신이 벗겨질 정도로 발을 동동 구르다가는, 앞으로 고꾸라지고, 뒤로 나동그라지고, 다시 일어나 빙글빙글 돌고… 브레이크댄스도 아니고, 풍선인형도 아니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 모습은 정말이지 세상에서 처음 보는 춤이었습니다.
--- pp.99-101
“전하, 아비를 살려 주시옵소서!”
어디선가 가슴을 후벼 파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임금님은 순간, 환청이 들리는가 싶어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러나 틀림없었어요.
“전하, 아비를 살려 주시옵소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지요. 그건 돌복이가 엎드려 통곡 하는 소리였습니다.
임금님의 얼굴은 백짓장처럼 새하얗게 질렸습니다.
전하, 아비를 살려 주시옵소서!
아주 오래 전, 자신 또한 그렇게 빌며 울었던 것입니다. 뒤주에 갇힌 아버지를 살려 달라 할아버지께 빌었던 그때, 불과 열한 살의 소년이었던 임금님도 똑같이 울부짖었습니다.
--- pp.113-114